조조 258

하후패(夏侯覇)의 인생궤적

글: 흑미애여행(黑米愛旅行) 삼국시대 여러 명장들 중에서, 하후패는 비교적 특별한 존재이다. 먼저, 그는 하후연(夏侯淵)의 차남이고, 조씨(曹氏)와 하후씨(夏侯氏)의 관계 및 하후연이 전장에서 사망하여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공로로 인하여, 하후패는 조조(曹操), 조비(曹丕), 조예(曹叡)시기에는 비록 크게 뜨지도 않았지만, 조상(曹爽)이 집권한 기간동안에는 점차 중용되게 된다. 다음으로, 장비(張飛)의 처는 하후패의 당매(堂妹)이다. 그래서 그는 촉한의 후주인 유선(劉禪)의 외숙이 된다. 고평릉사변후 사마의(司馬懿)가 군대내의 조씨세력을 몰아낼 때, 하후씨는 가장 먼저 제거대상이 된다. 우장군(右將軍) 하후패는 그리하여 전선에서 촉한으로 도망친다. 하후패의 이런 인생경력은 삼국시대에 유일무이한 경우..

삼국연의의 5대 궁술고수는...?

글: 초급칠품소지마관(超級七品小芝麻官) 사실상, 삼국연의의 적지 않은 무장들은 모두 활을 사용하는데 아주 능했다. 예를 들어 위연(魏延)은 일찌기 한중전투(漢中之戰)때 화살 하나로 조조(曹操)의 앞이빨을 맞춘 적이 있으며, 강유(姜維)는 위나라군대와 전투를 하는 과정에서 맨손으로 화살을 붙잡은 다음, 자신의 활로 쏘아서 적을 맞추어 죽인 바 있다. 태사자(太史慈)는 성밖에 서서 활을 쏘아 성을 지키는 병사의 손이 나무에 박히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이들은 모두 궁술이 아주 뛰어난 인물들이다. 그러나 삼국시대 랭킹5위이내의 화살고수를 따진다면, 아래에서 소개하는 다섯 명을 얘기해야 할 것이다. 삼국시대 무장(武將)의 전투력을 비교하자면 많은 사람들은 자연히 백병전을 생각하게 된다. 예를 들어..

조조(曹操)의 죽마고우 4명의 운명은...?

글: 정회역사(情懷歷史) 어렸을 때 친구들간의 우의는 어떤 때는 친형제자매간의 감정에 못지 않다. 고대에, 죽마고우는 일반적으로 부친들도 서로 알고 지내고, 어려서부터 함께 놀면서 자랐으며, 어른이 되어서도 친구가 되었다. 그중 필자가 오늘 얘기하려는 사람은 조조이다. 그에게는 4명의 죽마고우가 있었는데, 모두 동한말기의 역사인물들이고, 출신, 능력이 비범했다. 그렇다면, 문제가 있다. 이들 4명의 운명은 각각 어떠했을까? 1. 채모(蔡瑁) 채모는 형주(荊州) 남군(南郡) 양양(襄陽)의 호족인 채씨집안 출신이다. 고모(姑母)가 동한의 태위(太尉)인 장온(張溫)의 처였다. 큰누나와 둘째누나는 각각 황승언(黃承彦, 제갈량의 장인)과 유표(劉表, 형주목)에게 시집을 간다. : "어려서 위무(魏武, 조조를 가리..

장로(張魯): "조조의 종이 될지언정, 유비의 귀빈은 되지 않겠다!"

글: 소한신시야(笑寒新視野) 삼국의 이야기와 인물은 중국에서 삼척동자도 안다고 할 수 있다. 비록 진실한 삼국시대는 겨우 몇십년에 불과했지만, 그 영향은 아주 컸다. 식사자리에서의 얘기거리가 될 뿐아니라, 그 속의 선악을 통해 민간문화의 형식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역사보급교육을 했다. 민간문화이므로, 전형적인 인물로 그려지게 되고, 인물의 성격을 선명하게 그리게 된다. 그러다보니 검보화(臉譜化)하게 된다. 어쨌든 복잡한 인물로 그리면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렵다. 유비,조조처럼 한명은 충신, 한명은 간신, 한명은 좋은 사람, 한명은 나쁜 사람. 이렇게 해야 사람들이 기억하기 쉽다. 삼국의 이야기는 송나라때부터 시작하여 선악의 구분이 생기게 된다. 유비는 점점 정통으로 되고 좋은 사람으로 그려지는데 반하여 조조..

동한말기 궁중내란의 교훈

글: 서숙형(徐叔衡) 이런 말이 있다. 생물은 스스로 부패한 후 벌레가 생긴다.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경제생활에서, 우리는 수시로 볼 수 있다. 어떤 회사는 요란하게 만들어, 엄청난 돈을 벌고, 대단하게 이름을 날린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부부가 이혼하고, 형제가 반목하고, 친구끼리 싸우는 일이 벌어져 멀쩡했던 회사가 순식간에 와해되어 버리고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되어 보는 사람의 가슴이 아프게 만든다. 여기에서 동한 말기를 살펴보기로 하자. 황궁내란으로 국가가 갈갈이 찢겨진다. 천하통일에서 삼국으로 분열되는 침통한 사례가 있는데, 아마도 우리에게 어느 정도 교훈을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황제가 멍청하여, 화근을 심었다. 동한말기, 한환제는 좋은 신하들을 ..

제갈량 vs 이엄 (2): 양자간의 싸움

글: 의사리(衣賜履) 이엄은 원래 유장(劉璋)의 사람이었는데, 유비가 익주를 쳐들어왔을 때, 이엄이 무리를 이끌고 투항했다. 그리하여 유장에게 큰 타격을 준다. 유비는 이엄을 크게 환영했다고 할 수 있다. 그후, 유비는 이엄을 보내 유봉(劉封), 맹달(孟達)을 따라 상용군(上庸郡, 호북성 죽산현 서남의 전가패)을 공격하게 했다. 그후 이엄은 건위군(사천성 팽산현) 태수에 부임하고, 이어서 두 건의 반란을 평정한다. 이는 그가 상당한 군사적 재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에 따르면, 이엄과 제갈량, 법정, 유파, 이적(伊籍)의 다섯 명은 공동으로 촉한정권의 법령을 정비했다. 이는 이엄이 법률전문가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법정은 220년에 사망한다. 그렇다면 이엄은 개략 건위군태수의 직위에서, 겸직으로..

제갈량 vs 이엄 (1): 이엄축출사건의 수수께끼

글: 의사리(衣賜履) [의사리]: 제갈량의 제4차북벌은 의 기재에 따르면, 위나라병사 3천여명을 참살하고, 거기장군(車騎將軍) 장합(張郃)을 사살하였다. 그러나 군량조달이 제대로 되지 않아, 철군하게 된다. 비록 휘황한 승리를 거두었지만, 한중(漢中)으로 돌아온 후, 제갈량이 한 첫번째 조치는 논공행상이 아니었다. 심지어 논공행상을 전혀 하지 않았고, 당초 그와 함께 유비에게 백제성에서 탁고(託孤)를 받았던 2인자 이엄(李嚴)을 관직에서 축출하는 것이었다. 이 사건은 아주 이상하다. 이엄이 축출된 이유는 황당하기 그지없다. 그리하여 역사가들도 어떻게 설명해야할지를 몰랐다. 예를 들어, 전여경(田餘慶) 선생은 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엄의 거동은 어쨌든 지나치게 괴류(乖謬)하여 상정(常情)에 부합하..

중국바둑역사(3): 바둑이 크게 발전한 양한삼국(兩漢三國)시대

글: 설극교(薛克翹) 천하제일명수 한나라때 바둑의 발전은 비교적 완만했다. 현재 사적에 나타나는 고수는 모두 서한시기이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서한시대에 사람들이 두릉인(杜陵人)이라고 부르는 두부자(杜夫子)는 "천하제일명수(天下第一名手)"였다. 그는 바둑실력이 아주 뛰어나고, 바둑을 목숨처럼 좋아했다. 어떤 사람은 그가 바둑을 두느라고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조롱했는데, 그는 예상외로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바둑의 도리에 정통하다. 이것으로 공자의 부족함을 보완할 수 있다." 봉건시대의 사대부가 이런 말을 하다니, 그는 확실히 바둑을 하나의 예술로 인식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유가경전에서 배울 수 있는 학문으로 연구할 수 없는. 이를 보면, 그는 담량이 있는 사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서한때, 바둑..

사마의(司馬懿)의 스승은 누구일까?

글: 위문한사(魏門寒士) 삼국시대의 사마의는 아마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어쨌든 삼국시대에 사마씨가족은 최대의 승리자이니까. 이는 사마의가 지닌 능력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이렇게 보면 사마의는 분명 명사(名師)의 가르침을 받았을 것같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제갈량, 방통의 두 천재는 모두 사마휘(司馬徽)의 제자이다. 사마휘는 사마의와 관계가 있기는 하지만, 사마의는 사마휘를 스승으로 모시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사마의의 스승은 누구일까? 기실 사마의의 두 아들의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다. 사마의의 가장 유명한 두 아들은 바로 사마사(司馬師)와 사마소(司馬昭) 둘일 것이다. 두 사람은 적출이면서 아주 뛰어난 능력을 지녔다. 두 사람의 이름을 합치면 "사소(師昭)"이다. 그렇다고 사마의의 ..

서원팔교위(西園八校尉): 삼국의 역사를 바꾼 인물들...

글: 재하도장문(在下刀掌門) 교위는 중국역사상 중요한 무관이다. 진나라때 처음 설치하기 시작했고, 한나라는 교위의 전성시기이다. 지위는 장군(將軍)에 바로 다음간다. 다만 교위는 자신이 이끄는 부대가 있도, 장군은 반드시 자신이 이끄는 군대가 있는 것이 아니다. 교위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동한말기 한영제가 설치한 '서원팔교위'이다. 서원은 낙양의 궁원(宮苑)이다. 한영제의 직속 재정관련기구이다. 서원에 임직하는 관리를 "중사(中使)"라고 불렀고, 환관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들은 황제를 위해 재물을 모은다. 관리로서 성공하려면 서원을 거치는 것이 지름길중 하나였다. 하황후(何皇后)를 뒷배경으로 하여 하진(何進)을 우두머리로 하는 하씨일족의 세력이 날고 강해지자, 한영제는 하씨형제들을 꺼려하기 시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