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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187

조자룡은 아두(阿斗)를 구했는가? 글: 유려평(劉黎平) 유선(劉禪)은 유비(劉備)의 장남이고, 조운이 보호해왔다. 그러나 당시의 사서 <위략(魏略)>에는 전혀 다른 내용이 적혀 있다: 유선은 유비가 소패(小沛)에 주둔할 때 낳았고, 장판파에서 유비와 헤어진다. 나중에 서쪽으로 가 한중에 들어가는데, 사람에게 노비로 .. 2015. 2. 10.
유비는 왜 관우에게 작위를 주지 않았을까? 글: 생활문적(生活文摘) 고대의 제왕들은 인심을 얻고, 심복의 충성심을 얻어내고, 위엄을 보이고, 은총을 보여주기 위하여 왕왕 가관(加官), 진작(晋爵), 봉후(封侯)등등을 유효한 수단으로 자주 쓴다. <삼국지.촉지>를 뒤적여 보면 알 수 있다. 유비의 서촉에서도 적지 않은 사람들을 .. 2015. 2. 10.
"칠종칠금(七縱七擒)"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글: 호각조(胡覺照) 2년을 준비한 후, 원래 이엄(李嚴)이나 다른 장수가 맡으려던 남정(南征)업무를 제갈량은 "여러 장수들의 재능이 나만 못하다"는 것을 이유로, 친히 나서기로 결정한다. 이에 대하여, 심복인 왕련(王連) 마저도 상소를 올려 제지한다: "이곳은 불모의 땅이고, 전염병이 .. 2015. 2. 10.
3건의 사례로 본 제갈량의 "법치" 글: 호각조(胡覺照) 제갈량의 치국에 대하여 자고이래로 평가가 아주 높다. 진수는 <삼국지.제갈량전>에서 이렇게 썼다: "개성심(開城心), 포공도(布公道), 충성을 다하고 이로운 일을 한 자는 원수라도 반드시 상을 내렸고; 법을 어기도 태만히 한 자는 친하더라도 반드시 벌을 주었다.. 2015. 2. 10.
소년 제갈량은 조조의 손에 죽을 뻔했다 글: 유려평(劉黎平) 제갈량이 띠집(茅廬)을 떠나기 전에 조조와는 거의 만난적이 없는 것같다. 그러나, 소년시대에 제갈량의 목숨은 한때 조조의 손에 달려 있었다. 이는 한헌제 초평4년(193년)부터 얘기를 시작해야 한다. 그 해, 조조의 부친 조숭(曹嵩)은 전란을 피해, 산동 낭야일대에 거.. 2015. 2. 10.
제갈량을 도와준 4명의 조언자 글: 복녕객(福寧客) 역사는 제갈량을 신기묘산(神機妙算)의 인물로 썼다. 그러나 제갈량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최주평(崔州平), 서서(徐庶), 동화(董和), 호제(胡濟)의 4 사람은 "시종 사이좋게 지냈고, 성의있고 진심으로 잘못된 것에 대하여 직언을 했다." 그래서 이 4사람은 그로 하.. 2015. 2.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