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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187

한영제(漢靈帝): 부자가 되고 싶었던 황제 글: 섭지추(葉之秋) 한영제를 얘기하자면 많은 사람들은 제갈량의 <출사표>에 나오는 구절을 떠올릴 것이다: "선제(유비)께서는 한환제, 한영제에 대해 탄식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先帝未嘗不嘆息於桓靈也)". 제갈량이 보기에, 그리고 많은 역사학자들이 보기에, 한나라가 쇠망한 것.. 2012. 3. 31.
제갈량은 어떻게 신격화되었는가? 글: 호각조(胡覺照) 제갈량이 신격화될 수 있었던 것은 먼저 그 본인의 자질에 공로를 돌려야 한다. 즉, 현상(賢相), 염리(廉吏)의 성격을 모두 지니고 있는 그의 신분때문이다. 이는 통치계급에게 필요한 것일 뿐아니라, 전체 사회에서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회의 각종 .. 2012. 1. 7.
모택동은 왜 제갈량의 군사적 재능을 인정하지 않았을까? 글: 유계흥(劉繼興) 역사상 진실한 제갈량은 업적이 출중한 정치가이다. 촉국을 다스리는데 재능이 있었다. 그러나, 군사적으로 뛰어난 점은 많지 않다. <삼국연의>에서 그려진 것처럼 그렇게 용병여신(用兵如神)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삼국연의>는 민간에 영향이 아주 .. 2012. 1. 1.
삼국시대 저평가된 4명의 명장 글: 백마진일(白馬晋一) 옛말에 틀린 것이 없다. 장군이 되려는 생각이 없는 병사는 좋은 병사가 아니다. 삼국시대는 전민개병(全民皆兵)의 전쟁시대에 우수한 장수들이 속속 나타난 것은 이상할 것도 없다. 우리는 무장의 실력을 근거로 "일여이조삼전위(一呂二趙三典韋), 사관오.. 2011. 11. 11.
칠종칠금(七縱七擒) 배후의 진실 글: 호각조(胡覺照) 2년간 준비를 마친 후, 원래는 이엄(李嚴)이나 다른 장수가 담당할 예정이었던 남정(南征)업무를 제갈량은 "여러 장수들의 재능이 나보다 못하다"는 이유를 들어 친히 나서게 된다. 이에 대하여 심복인 왕련(王連)은 글을 올려 반대의사를 표시한 바 있다: "이 곳.. 2011. 10. 27.
삼국시대의 사대은사(四大隱士) 글: 육기(陸棄) 역사상 제갈량만이 원래 난세에 목숨을 부지하기를 바라고, 제후가 되기를 원하지도 않았는데, 결과적으로 생각지도 못하게 천고일상(千古一相)에 오르고 유방백세(流芳百世)하게 된다. 역사상 오직 유비만이, 허리를 숙이고 무릎을 꿇어 삼고초려를 통하여 군신간의 아름다운 이야기.. 2011. 7. 13.
제갈량(諸葛亮)의 관작(官爵) 분석 작자: 미상 제갈량: 무향후(武鄕侯), 승상(丞相), 영사례교위(領司禮校尉), 익주목(益州牧), 녹상서사(錄尙書事), 가절(假節) 무향후: 이는 작위(爵位)이지 관직(官職)은 아니다. 한나라때는 성급지방행정단위를 주(州)라고 불렀고, 시급행정단위를 군(郡)이라 불렀으며, 그 아래에 현(縣)이 있고, 그 아래.. 2011. 3. 29.
제갈량의 “칠종칠금”은 역사상 존재했는가? 글: 문재봉(文裁縫) “칠종칠금(七縱七擒)”은 <삼국연의>에서 대서특필한 부분이고, 역대이래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 내용은 동한 말기, 위, 촉, 오의 삼국이 천하를 셋으로 나누어 가졌는데, 촉의 승상 제갈량은 유비로부터 자식을 부탁한다는 임종유언을 받아 북벌을 하여 한실을 부흥시키기로.. 2011. 3. 21.
중국은 바보시대에 진입했는가? 글: 장명(張鳴) 이런 말이 있다. 중국인은 현재 이미 바보시대로 접어들었다고. 멍청이가 너무나 많다고. 이 말은 맞는 점이 있다. 장오본(張悟本) 사건이 끝난지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또 한 명의 '신의(神醫)'가 나타났다. 그는 진맥도 필요없고, 문진도 필요없다고 한다. 한번만 보면 약방을 내놓는다... 2011. 1. 23.
용인불의 의인불용(用人不疑 疑人不用) 글: 유흥우(劉興雨) 역사를 읽다보면, 더 명확해 지는 것이 있는가 하면, 더욱 모르겠는 것도 있다. 왜 그런가? 각각의 견해는 모두 일련의 증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것을 믿어야할 지를 모르게 하는 것이다. 사람을 쓰는 것에 대하여 얘기해보자. 어떤 사람은 사람을 쓰면서 의심하면 .. 2011. 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