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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민국 후기)

9.18사변에서 누구를 가장 질책해야 하는가?

by 중은우시 2013. 11. 11.

글: 정만군(程萬軍)

 

2013년 9월 18일은 "9.18사변" 82주년이다.

필자는 지금까지, "9.18사변"은 "7.7사변"보다 더욱 큰 치욕이라고 생각해 왔다. 비록 전자로 잃은 영토가 후자만큼 많지는 않았지만, 군대와 그 지도자들의 행동은 적국으로 하여금 완전히 무시하게 만들었기 대문이다.

이 사변에 관하여, 전세계는 이해를 하지 못했다.

왜 2만의 일본 관동군이 7시간만에, 20만의 중국동북군을 몰아내고, 심양을 점령했는가? 동북군의 260대의 독일전투기, 3000여문의 대포, 1만여정의 소총, 5800정의 기관총이 하루아침에 일본군의 손에 넘어갔는가?

 

장학량 동북군이 만든 이 치욕의 역사를 언급할 때마다, 어떤 사학자는 이렇게 말한다. 장학림은 일본인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일본인이 장작림을 두려워했다. 만일 장작림이 있었다면, 이런 결과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정신승리법에 속하는 내용이다. 세상에 어찌 고양이가 쥐를 두려워하겠는가? 무서워하는지 아닌지는 표면적인 태도로 알 수가 없다. 행동으로 증명해야 한다.

비록 중국정부의 효웅인 장작림이 괴뢰로 남을 성겨은 아니고, 남의 말을 듣지 않는 '철혈'의 기풍은 있었다. 다만,일본인의 앞에서, 그는 양봉음위(陽奉陰違), 차도발력(借刀發力)할 수밖에 없었다. 절대로 대항을 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장작림이 일본이 시키는대로 하지 않을 때, 관동군은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놀듯이 죽여버린 것이다. 일본인은 생각했다. 장작림은 그들이 기른 늑대이다. 그를 제거하는 것은 이 늑대의 이용가치가 이미 그다지 크지 않기 때문이다. 장개석에 대적할 수 없었고, 동북이 조만간 국민정부에게 넘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장개석과 장작림이 합치는 것을 보는 것보다는 먼저 '중국동북정복'의 장애를 제거하는 편이 나았다.

 

기실, 이 시기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일본인들이 봉계(奉係)를 너무 높에 평가한 느낌이 있다. 사실이 증명한다. 장작림은 일본인에 반항할 수 없을 뿐아니라, 그의 아들인 장학량은 일본인을 더욱 무서워했다. 9.18사변때 20만 동북군이 2만 일본관동군을 상대하는데, 결과는 상대방이 주머니 속의 물건을 꺼내듯이 손쉽게 동북의 전체 지역을 장악해버린다. 이것은 하나의 천적간의 쟁이다. 쥐는 아무리 대단해도 고양이에게 먹힐 수 밖에 없다.

이 전법으로 보면 백보 양보해서 볼 때, 장작림이 살아있다고 하더라도, 일본이 도와주어서 이루어진 전투력으로 일본에 항거하는 것으로 동북을 지켜낼 수 있을까?

외적의 계속되는 도살과 모욕을 받아온 민족에 있어서,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수단은 왕완 질책이다. 그러나, 설사 질책이라고 하더라도, 가장 비도덕적인 것은 야만적인 침략자가 아니라, 본국국민을 지키지 못한 정부와 군대에 있다. 그러므로, 9.18사변의 최대치욕근원은 혈성을 잃은 장학량이다. 그저 가족실력을 보전할 줄만 알았지, 국가와 민족의 대의는 알지 못했다. 그저 남을 질책할 뿐 스스로를 자책할 줄 몰랐다.

 

일찌기 청일전쟁때, "중국은 일본을 이길 수 없다", 일본의 근대대부 후키자와 유키치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그중 중요한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존엄과 자지지명(自知之明)에서 "굴욕을 당해도 부끄러운 줄 모른다"는 것이었다.

9.18사변후, 일본 육군대장 이타타기 세이시로(板垣征四郞)은 더욱 냉정하게 말한다: 중구은 그저 "자치부락의 지구를 보유한 위에 국가라는 명칭을 더했을 뿐이다"

중국의 미래에 대하여, 그들은 대담하게 예언한다. 중국에 만일 "지사(志士)"가 출현하지 않으면, "우리(일본)의 유신, 국사개진, 정부개혁, 정치개조, 일심일신"하지 않으면, "수년이 지나지 않아 나라는 반드시 망할 것이고, 그 국토는 세계문명제국에 분할될 것이다.

오늘날 이 시기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여전히 경종의 의미가 있다. 싹수가 있는 민족이라면 "침략자에게 오래 기억하라고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오래 기억하는 것"이 낫다. 치욕의 근원을 알고 난 후에 용감하게 노력한다. 역사가 재연될 수 있는지는 침략자의 의지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피침략자의 태도에 달려 있다. 팔십이년전보다 얼마나 발전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