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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142

EU각국의 중국에 대한 "최혜국대우" 취소의 파장은...? 글: 사전(謝田) 세계가 신축년 9월중순에 들어가면서 국제정세는 거의 매일 신속하게 변화하고 있다. EU등 30여개국가는 조용히 중국에 대한 최혜국관세대우를 취소해버렸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전혀 보도하지 않고 있다. 단지 해관에 조용히 통지를 보냈을 뿐이다. 이는 중국이 WTO에 가입할 대, 미국의 최혜국대우를 받았다고 크게 선전하던 것과는 천양지차이다. 중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가? 각국이 연이어 중국을 버리고 있고, 중국의 WTO가입국이라는 명분은 빈껍데기가 되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중국은 어떻게 하여 돌연 EU각국의 신임을 잃게 되었을까? 아마 중국당국 자신도 잘 모르고 있을 것이다. 중국의 공식적인 반응은 거의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거나, 그저 멍하.. 2021. 11. 5.
중국의 5대전구(五大戰區) (상) 글: 주전(周田) 중국의 5대전구는 각자 서로 다른 공방의 임부를 부여받고 있다. 그러나 전구내에 배치된 군사력만으로는 그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워 실전에서는 반드시 각 전구의 부대를 새로 배치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하나를 움직이면 전체가 흔들린다. 현존하는 전구의 군사력을 일단 대규모로 이동시켜버리게 되면, 즉시 만신창이의 곤경에 처하고 말 것이다. 중국이 소리높여 외치고 있는 타이완해협의 작전방향이건 아니면, 동해, 남해의 작전방향이건, 혹은 중국인도변경의 대치전이건, 혹은 북방의 러시아와 한반도의 위협을 상대하는 것이건, 그리고 중국고위층이 가장 신경쓰는 베이징의 방위이건 어느 한 방향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중국군대는 바로 이동시켜야 하고, 다른 전략방향은 즉시 곤란한 지경에 처하게 될 것이.. 2021. 11. 4.
마르코 폴로는 중국에 온 적이 없다. 글: 살사(薩沙) 대여행가 마르코 폴로는 도대체 중국에 왔던 것일까? 1298년 9월 7일 마르코폴로는 감옥에 갇히고, 루스티첼로와 합작으로 를 쓴다. 마르코폴로는 중국에 온 적이 있을까? 쿠빌라이를 만난 적이 있을까? 지금 보면, 마르코폴로가 중국에 와서 쿠빌라이를 만났다는 것을 증명할 증거는 없다. 원인은 다음과 같다: 첫째, 원나라때의 모든 역사기록에서 마르코폴로를 찾아볼 수 없다. 몽골인들이 원나라를 건립한 후에는 더 이상 유목민족이 아니고, 계통적으로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한다. 마르코폴로여행기에는 그가 여러번 원나라의 대칸 쿠빌라이를 배알했다고 적었다. 1275년 여름, 23살의 마르코폴로는 처음 쿠빌라이를 만났고, 동행한 사람은 그의 부친과 숙부였다. 마르코폴로의 기술에 따르면, 대칸은 젊고 .. 2021. 10. 8.
중국의 호주석탄수입금지조치로 인한 9가지 역효과 글: 왕우군(王友群) 최근 중국은 20여개 성에서 제한송전, 단전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심지어 베이징, 상하이에서도 제한송전통지가 나왔다. 이는 작년 12월 중국이 호주의 양질석탄에 대한 수입을 금지함으로 인해 일어난 일련의 부정적 역효과중 하나이다. 호주는 일찌기 중국의 동력석탄의 최대공급국이다. 호주석탄은 품질이 뛰어나고, 잡질이 적으며, 재가 적고, 유황도 적도, 열랑이 높은 등의 장점이 있다. 그래서 발전효율이 높아 중국의 발전에는 양질의 석탄이 시급히 필요하다. 다만 작년 4월 호주가 '중국바이러스'에 대한 독립적인 기원조사를 해야한다고 요구한 후, 중국은 분노했고, 호주에 대하여 연속적인 보복조치를 취하게 된다. 작년하반기부터 점진적으로 호주로부터의 석탄수입을 감소시켜 12월에는 제로가 되었다.. 2021. 10. 6.
중국이 반도체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글: 역사역시침(歷史逆時針) 2021년 7월 9일, 반도체업계의 '국가대표'청화유니집단(紫光集團)'이 파산구조조정을 신청하며, 국내외의 여러 채권을 부도냈고,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하버드 비지니스스쿨의 경영학교수인 스자오웨이(Willy Shih, 史兆威)는 이렇게 말한다. 중국이 반도체를 자체개발한다는 것은 헛소리이다. 이 목표는 누구에게라도 '완전히 비현실적'이다. 스자오웨이는 조적(祖籍)이 허난(河南)으로 MIT, 버클리에서 여러 학위를 받았으며, 전후로 실리콘밸리의 SGI, IBM, 코닥등 여러 회사에 재직한 바 있다. 2007년, 스자오웨이는 하버드대학 비니지스스쿨로 갔고, 실무경험을 가진 몇 안되는 경영학교수가 된다. 2009년 그는 , 를 발표하며, 제조업이 미국으로 되돌아오도록 해야 .. 2021. 7. 12.
반도체업계의 탈중국화 글: 왕혁(王赫) 반도체는 현대산업의 '양식'이고, 국제적인 경쟁의 촛점이 되었다. 미국, 대만, 일본, EU, 한국, 인도등은 하년으로 각자 야심만만한 반도체발전계획을 내놓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상호협력을 강화하면서 탈중국화를 꾀하고 있다. 6월 22일, 미국, 일본, EU, 대만은 '과기산업글로벌공급체인합작포럼'을 개최했다. 반도체는 핵심의제중 하나이다. 이를 보면, 반도체는 서방이 중국을 공격하는 날카로운 무기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상상해볼 수 있다. 만일 중국이 서방과 전면적인 경제전, 과기전을 벌인다면, 반도체는 주요한 전장이 될 것이고, 중국은 거의 대항할 힘이 없을 것이다. 미국, 대만, 한국 ,일본, EU가 손을 잡고 글로벌반도체공급체인을 새로 조직한다. 2020년 팬데믹이.. 2021. 6. 24.
유태인들은 왜 중국 만주로 몰려들어왔을까? 글: 나일소(那日蘇) 유태인들의 상업적 두뇌는 사람들이 즐겨 얘기하는 주제이다. 과거 중국의 만주는 황량한 땅이라고 여겨졌었다. 유태인의 고향인 중동에서 만주까지는 거리가 수천킬로미터나 된다. 그러나 풍운이 휘몰아치던 근대에 머나먼 공간의 거리에도 불구하고 유태인과 만주는 서로 얽히게 된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지만, 실제로는 연원이 깊다. 19세기말부터 유태인들은 대량으로 중국의 만주지역으로 몰려든다. 그들은 자신의 장사수완을 가지고 만주지역에서 경제기적을 일궈낸다. 하르빈의 길거리에서 유태인들은 한때 상업의 80%를 차지한 바 있다. 그러나 그들은 점점 이 땅에서 사라졌고, 지금은 유태인스타일의 건축과 묘지만이 옛 시절을 기억나게 해주고 있다. 만주의 근대역사는 기본적으로 종횡의 두 철도.. 2021. 4. 16.
중국과 일본이 경제전쟁을 벌인다면....? 글: 왕혁(王赫) 일본의 대중국정책변화를 제약하는 기본요소는 중일간의 경제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만, 만일 중일간의 경제연결은 의존관계이며, 쌍방향이고, 나아가 중국의 일본에 대한 의존도가 일본의 중국에 대한 의존도보다 높다. 그러나, 일본당국은 전략적인 각도에서 이 문제를 완전히 인식하고 있는 것같지는 않다. 다른 한편으로,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으로 쇠락하였으며, 일본의 중국과의 협력은 아마도 '기술적으로는 성공, 시장적으로는 실패'라는 실패의 저주를 벗어나기 힘들다는 논조가 중국의 매체와 온라인에 넘쳐나고,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사실이라고 믿는다. 다만, 이는 중국이 만들어낸 방대하고 정교한 거짓말이다. 중공당국의 대일정책은 아직 어느 정도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2016년 한미간에 .. 2021. 4. 16.
<양주십일기(揚州十日記)>는 위작일까? 글: 화용군(華容君) 는 청나라때 나타났다고 하는 청나라초기 청나라군사들이 양주성을 함락시킨 후, 10일동안 잔혹하게 양주성의 주민들을 도살한 것을 기록한 글이다. 이 글은 역사학계와 애호가들의 논쟁을 불러왔다. 어떤 사람들은 이 글이 청나라군사들이 양주성의 주민들을 마구잡이로 도살한 것에 대한 진실한 증거라고 말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이 글은 모호하고 애매한 내용과 추악한 장면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였고, 이 글이 특정한 역사상황하에서 돌연 나타났다는 것들을 들어 이 글은 작성과 동기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필자는 후자의 견해에 찬동한다. 즉 는 악의를 가지고 쓴 위작이다. 그러나, 필자는 여기서 미리 밝히고 지나가야할 것같다. 필자가 이 글을 쓰는 목적은 청나라군사들이 양주에서 사람을 죽였다는 .. 2020. 11. 18.
제2의 청일전쟁이 일어날 것인가? 글: 심주(沈舟) 1주일동안 중공은 두번에 걸쳐 한국전쟁을 기념했다. 2차에는 많은 군인도 참가하여 마치 무슨 동원대회같았다. 시진핑은 70년전의 대미일전을 높이 평가했다. 다만 핵심요소는 빠트렸다. 그때 중공군대 240만명으로 미군 33만명을 이기지 못했다는 것이다. 중공이 사용한 것은 인해전술이었고, 근본적으로 병사의 목숨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원래 한반도를 통일하고 점령하려 했지만, 결국은 38선을 넘지 못했던 것이다. 오늘날, 중공고위층은 소리높여 미국과 싸우겠다고 한다. 여전히 병사와 백성의 목숨은 신경쓰지 않는다. 그런데 인해전술을 쓸 수도 없다. 아마도 전쟁형태는 주로 해전, 공중전이 될 것이다. 이는 다시 한번 100여년전의 청일전쟁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렇게 하면, 중화민족은 아마도 다.. 2020. 10.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