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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성74

주원장은 왜 원순제를 도망치도록 놔두었는가? 글: 유려평(劉黎平) 원순제(元順帝)가 도망칠 수 있었던 것은 하나의 수수께끼였다. 일찌기 1368년 칠월, 서달(徐達)의 북벌군은 하북 통주(通州)에 도착한다. 원왕조의 도성에 하루이틀이면 도달할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러나, 기괴하게도, 북벌군사통령 서달은 통주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 2013. 8. 15.
청승명제(淸承明制): 진실한 거짓말 작자: 미상 1644년, 이자성이 북경성을 함락시키고, 숭정제는 자살순국하며 명왕조는 멸망한다. 그후, 오삼계는 산해관을 만청에 바치고, 만청은 중원으로 들어와서 주인이 된다.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흥한다. 명왕조 중말기때 경제, 과기, 문화, 사상과 대외교류의 발전에 따라, 중국.. 2013. 8. 4.
오삼계(吳三桂)는 어떤 인물인가? 글: 유지군(劉志軍) 오삼계를 얘기하자면, 사람들은 당연히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는 반복무상(反復無常)하게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한 인물이다. 먼저 명나라에 배신하고 틈왕 이자성에게 투항했다가, 나중에 다시 창끝을 돌려 청나라에 투항하여, 청나라병사를 산해관으로 끌어들여 .. 2013. 6. 10.
장소(張韶)반란사건: 당나라때의 가장 웃기는 반란 글: 유병광(劉秉光) 역사의 큰 흐름에는 온갖 일들이 다 벌어졌다. 당경종(唐敬宗)때 아주 웃기는 반란사건이 하나 벌어진다. 그것이 웃긴다고 하는 이유는 우두머리가 문신무장도 아니고, 황친국척도 아니고, 군벌제후도 아니며, 진승, 황소, 이자성, 홍수전처럼 용맹하고 강경한 농민반.. 2013. 6. 10.
이자성 생사의 수수께끼: 만청과 남명은 모두 그의 수급을 얻지 못하다 글: 감홍류(闞紅柳) 이자성이 석문협산으로 도망가 선승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호남성의 석문현은 풍양이라고 불렀고, 풍주라고보 불리웠다. 청나라 건륭년간의 <풍주지림>에 수록된 풍주지주의 <이자성전>에 따르면, 이자성은 전투에서 패배하고, 홀로 석.. 2013. 4. 27.
명나라의 4차에 걸친 북경위기 글: 창해일적수(滄海一滴水) 명나라가 건국한 후 276년간(1368년-1644년), 일찌기 3번이나 제국의 심장인 수도를 직접 위협하는 대사건이 벌어졌고, 명나라는 거의 멸망직전까지 갔다. 이 3차의 대사건은 각각 1449년 야선(也先)이 이끄는 와랄(瓦剌)부의 북경포위공격; 1550년 엄달한(俺達汗)이 .. 2013. 4. 13.
숭정제가 자결한 장소는 어디인가? 작자: 미상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崇禎帝)가 경산(景山)에서 목을 매어 자결했고, 그 유적지는 지금도 남아 있으며, 석비(石碑)까지 세워져 있다. 그래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숭정제가 그 곳에서 목을 매어 자결했다는 것을 상식으로 여긴다. 그러나, 사실상, 이 주장은 잘못된 것이.. 2012. 3. 27.
이자성은 보물을 어디에 숨겼을까? 글: 문재봉(文裁縫) 천문산 천문산(天門山)은 해발 1,517.9미터이고, 산아래의 시가지와는 상대표고차가 1300여미터나 된다. 호남서부 장가계시의 남쪽 교외 8킬로미터에 위치하고, 무릉산의 남쪽지맥에서 높은 봉우리의 하나로, 장가계시의 천연벽화이며, 상서제일신산이라는 별칭을 지니.. 2012. 2. 29.
오삼계(吳三桂)의 진실 작자: 미상 나는 현재의 역사뒤집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청사(淸史)의 오삼계에 관한 기록을 보면서, 나는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다. 아래에서는 오삼계와 청나라에 관하여 탐색해보고자 한다. 먼저 얘기할 것은 청나라는 오삼계의 역사문제에 손을 댔다는 것이다. 역사는 .. 2012. 2. 5.
이자성(李自成): 세금없는 나라를 만든 단명황제 글: 유전(劉典) 세수(稅收)는 국가의 운영을 유지하게 하는 중요한 경제적인 보장책이다. 세수라는 말을 둘러싸고, 여러해동안 너무나 많은 희비극이 벌어졌다. 오늘날의 우리가 어찌 생각할 수 있겠는가? 역사상 이런 황제도 있었다. 백성들에게 세금을 내라고 하지 않고, 세수가 .. 2012. 2.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