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유지군(劉志軍)
오삼계를 얘기하자면, 사람들은 당연히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는 반복무상(反復無常)하게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한 인물이다. 먼저 명나라에 배신하고 틈왕 이자성에게 투항했다가, 나중에 다시 창끝을 돌려 청나라에 투항하여, 청나라병사를 산해관으로 끌어들여 함께 이자성을 없앴으며, 다시 마지막에는 청나라에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때는 운이 좋지 않아서, 강희제에게 격패당하고, 천고에 악명을 남긴다. 또 어떤 사람은 오삼계는 애미인불애강산(愛美人不愛江山)한 인물로 충관일노위홍안(沖冠一怒爲紅顔), 즉 진원원 때문에 이자성을 버리고 청나라에 투항하였다고 본다.
정말 그러할까? 필자가 보기에 꼭 그런 것같지는 않다. 오삼계는 그저 사람들에 의하여 역사의 무대로 끌려나온 인물이고, 우리가 그를 무한히 확대화했기 때문이다.
명나라말기, 가장 영향력있는 장수는 원숭환이다. 원숭환이 죽기 전에, 오삼계는 그저 이름없는 인물에 불과했다. 그의 부친과 함께 산해관을 지켰고, 무슨 경천동지할 일을 해낸 것도 아니다. 그러나, 역사는 왕왕 우연이 많다. 원숭환의 죽음은 이미 뼛속까지 병이 도진 명왕조에 또 하나의 치명적인 병인을 추가했다. 조정은 근왕할 수 있는 장수가 급히 필요했다. 국가의 생사존망의 시기에, 무장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하여 젊고 능력있는 오삼계는 순조롭게 명나라군사의 중요한 대들보가 된다. 명나라는 이때 안으로는 이자성의 난이 있고, 밖으로는 청나라의 철기가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국가는 위기일발이었다. 오삼계는 그저 변방을 지키는 수비장수에 불과했는데, 그가 이 국면을 뒤집을 수 있을까? 그러나, 사람들은 그에게 지나치게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래서 전체 사건이 왜곡화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오삼계는 그저 부대에서 태어난 군인이다. 그에게는 정치적 두뇌가 없었다. 더더구나 자신의 이름을 천고에 남기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이 관점에서 출발하면, 오삼계가 당시에 한 여러가지 결정은 한 사람의 기본적인 상리에 들어맞는다. 먼저 이자성에 투항했다가 이자성을 배신한 원인을 보면, 투항할 때는 이자성이 북경에 들어와 있고, 황제 숭정이 매산에서 자살한 때였다.그와 같은 변방의 작은 장수는 언젠가 잡아먹힌다. 그래서 이사성의 투항권유서가 오자 그는 투항을 결정한 것이다. 그러나 귀순하는 도중에 그의 집안이 가산몰수당하고 마누라인 진원원을 이자성의 부하장수가 데려가서 잤다는 말을 듣고 그는 분명히 깨닫는다. 이자성이 투항을 권유한 것은 사기극이다. 천하에 어디 이렇게 예현하사(禮賢下士)하는 법이 있겠는가? 그는 무정하게 버려질 운명이었다.
그는 대노하여 이자성을 배반한다. 그러나 그 자신의 역량으로는 이자성에 대항하기 역부족이었다. 이렇게 되자 그는 도르곤에게 희망을 건다. 그러나 귀신을 부르기는 쉬워도 귀신을 쫓기는 어렵다. 오삼계가 청나라병사와 연합하여 이자성을 물리친 후, 도르곤은 중원을 자신의 집으로 여기고 떠나지 않았다. 이때의 오삼계는 이자성과 결전을 벌인 후 실력이 대폭 약해져 있었다. 청나라의 철기와 대항할 능력이 되지 않았다. 그는 다시 한번 속은 것이다.
다행히 도르곤은 그에게 잘해주었다. 그래서 그는 전심전력으로 청나라에 투항하여, 봉강대리(封疆大吏, 한 지방을 맡아서 다스리는 고위관료)가 된다. 그러나 그의 달콤한 꿈은 오래가지 못했다. 어린황제 강희가 즉위하자 신황제가 부임하면 세 가지 일을 벌인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철번(撤藩)이었다. 이번에도 그는 무정하게 당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목숨까지 잃는다.
오삼계는 역사의 소용돌이에 빠진 보통인물이다.어떻게 반항하든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용당할 운명을 벗어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역사는 승리자만 인정하고, 패배자는 버려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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