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유병광(劉秉光)
역사의 큰 흐름에는 온갖 일들이 다 벌어졌다. 당경종(唐敬宗)때 아주 웃기는 반란사건이 하나 벌어진다. 그것이 웃긴다고 하는 이유는 우두머리가 문신무장도 아니고, 황친국척도 아니고, 군벌제후도 아니며, 진승, 황소, 이자성, 홍수전처럼 용맹하고 강경한 농민반란지도자도 아니다. 그는 보잘 것없는 염색공장 노동자이다. 그 노동자의 이름이 장소(張韶)이다. 그는 점쟁이인 소현명(蘇玄明)의 말을 듣고, 갑자기 생각이 나서 흥분한 상태로 반란을 일으킨다. 백십여명의 할일없는 자들을 데리고 가볍게 황궁을 장악하지만, 금방 토벌당한다.
이번 반란은 정교하게 기획되지도 않았고, 충분히 준비하지도 않았으며, 심사숙고도 없었고, 그럴듯한 무장역량도 없었다. 그저 두 사람의 재미있는 생각을 하던 사람들이 서로 얘기하는 와중에 떠올린 것이다. 사건의 전후가 하루의 시간도 걸리지 않아 평정된다. 한명의 수문병졸이 죽은 것과 황제가 약간 놀란 것을 제외하면 대당제국에 거의 아무런 상처도 입히지 못했다. 그러나 신구당서에는 이 일을 모두 명확히 기록하고 있다. 사마광은 <자치통감>을 편찬할 때 역시 이 웃기는 반란사건을 기록했다.
소현명과 장소 두 평민은 하나가 '점쟁이'이고 다른 하나가 '염색공장 노동자'이다. 모두 사회의 하층에서 생활했고, 생계는 보장받지 못했다. 삶이 힘들었고, 동병상련의 감정이 있어 둘은 좋은 친구가 된다. 장경4년(824년) 사월의 어느 날, 소현명은 장소에게 말한다: "장소 동생. 내가 너를 위하여 점을 쳐봤더니, 너는 장래 황궁에 들어가서 대전에 올라가서 앉아 나와 함께 음식을 먹고 같이 부귀를 누릴 것이다." 기실 이것은 소현명이 장소에게 농담비슷하게 한 말이다. 그러나 장소는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그럴 것이다"라고 생각한다"(<자치통감>)
궁전에 거주하며 아름다운 음식을 먹고, 황제의 대우를 누려본다. 이런 유혹은 순간적으로 장소의 욕망을 끓어오르게 했다. 장소는 일개초민이지만, 일처리는 과감했고, 시원시원했다. 곧 "소현명과 염색공장의 무뢰배 백여명을 모아서 모의한다" 황궁은 황가금지이고, 경비가 삼엄하며, 고수가 운집해 있다. 그러나 당경종 이담은 즉위후 연회를 여는 것과 격구를 하는데 골몰한다. "주야로 격구와 사냥을 하여 궁안에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자치통감>). 고수들도 대부분 황제를 호송하였고, 성문을 지키는 병사들은 느슨해 있었다. 장소에게는 좋은 기회가 된다.
백십여명을 이끌고, 손에 병기를 들고, 궁으로 쳐들어가면 수문병사들의 눈을 피할 수가 없다. 그리고 겹겹이 이루어지는 안전검사도 통과할 수 없다. 그래서 장소는 방법을 생각한다. 병기를 풀과 장작를 실은 수레에 숨기고, 은대문으로 들어간 다음 밤을 틈타서 난을 일으키려 한다. 그러나 목적지에 도달하기도 전에 들켜버리고 만다. 세심한 궁문의 병사 하나가 그들의 수레가 너무 무거운 것을 의심하여 장소에게 수레를 세우게 해서 조사를 한다. 일이 들통날 위기에 처하자, 장소는 아예 이 궁문병사를 죽여버린다. 그후 일당은 겉옷을 갈아입고 손에는 병기를 들고 소리를 지르며 황궁으로 몰려들어간다.
장소, 소현명이 미리 판단한 것처럼, 당경종은 그날 저녁에 격구를 하고 있었고, 황중에는 몇몇 환관만이 남아서 지키고 있었다. 환관들은 누군가 궁안으로 쳐들어오자, 크게 놀라서, 급히 궁문을 닫고, 황제에게 달려가서 보고를 한다. 장소등은 순식간에 궁문을 부수고 궁안으로 쳐들어간다. 당경종은 이때, 한참 재미있게 놀고 있는 중이었다. 누군가 궁안으로 쳐들어왔다는 말을 듣고, 놀라서 어찌할바를 모른다. 신하인 마존량(馬存亮)이 어쩔 줄 모르는 황제를 업고 우군군영으로 잠시 피난한다. 그리고 대장 강예전(康藝全)으로 하여금 기병을 이끌고 궁으로 가서 반란군을 토벌하게 한다.
장소는 황궁에 들어간 후, "청사전에 올라서 어탑(御榻)에 앉아 소현명과 함께 식사를 한다"(<자치통감>). 이 광경은 소현명이 점을 친 것과 똑같았다. 그래서 장소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소현명에게 말한다. 네 말대로 되었다. 소현명은 장소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란다. 이걸로 다 되었다고? 소현명은 원래 장소가 감히 반란을 일으키려 한 것은 분명히 큰 꿈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장소가 황제에 오르면, 소현명도 그 덕을 보고자 한 것이다. 생각지도 못하게 장소는 단순히 어탑에 앉아서 먹고 마셔보기 위해서 이 일을 한 것이다. 그 정도 수준의 인물이었던 것이다.
소현명이 그렇게 말하자 장소는 머리를 치며 즉시 깨닫는다. 이제 골치아프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고, 그저 도망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큰 일을 벌이다니 삼십육계주위상책이다. 장소등이 아직 도망치기도 전에, 명을 받들어 도적을 토벌하러 온 장병들이 이미 쇄도해 왔다. 이들 오합지중이 어찌 중앙정규군의 상대가 될 것인가. 그 결과 모조리 붙잡하고, 우두머리인 장소등은 참살된다. 웃기는 반란사건은 이렇게 끝이 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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