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량 vs 이엄 (2): 양자간의 싸움
글: 의사리(衣賜履) 이엄은 원래 유장(劉璋)의 사람이었는데, 유비가 익주를 쳐들어왔을 때, 이엄이 무리를 이끌고 투항했다. 그리하여 유장에게 큰 타격을 준다. 유비는 이엄을 크게 환영했다고 할 수 있다. 그후, 유비는 이엄을 보내 유봉(劉封), 맹달(孟達)을 따라 상용군(上庸郡, 호북성 죽산현 서남의 전가패)을 공격하게 했다. 그후 이엄은 건위군(사천성 팽산현) 태수에 부임하고, 이어서 두 건의 반란을 평정한다. 이는 그가 상당한 군사적 재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에 따르면, 이엄과 제갈량, 법정, 유파, 이적(伊籍)의 다섯 명은 공동으로 촉한정권의 법령을 정비했다. 이는 이엄이 법률전문가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법정은 220년에 사망한다. 그렇다면 이엄은 개략 건위군태수의 직위에서, 겸직으로..
2022. 3. 8.
유비(劉備)가 놓친 4명의 맹장(猛將)
작자: 미상 동한말기, 유비는 무장으로 관우, 장비, 조운, 황충, 마초, 위연등 맹장이 있었고, 문관으로 제갈량, 방통, 법정등 모사가 있었다. 이들은 촉한을 건립하는데 중요한 역량이었다. 그리하여, 조조, 손권등 두 제후와 마찬가지로, 유비의 휘하에도 인재들이 많았다. 그러나, 유비의 일생에서 적지 않은 인재들을 놓쳤다. 필자가 오늘 얘기할 것은 4명의 맹장이다. 이들은 모두 촉한을 위해 일하지 않았으니, 후세인들로서는 안타까울 뿐이다. 1. 전예(田豫) 전예(171년-252년), 자는 국양(國讓), 어양(漁陽) 옹노(雍奴)사람(지금의 천진시 무청구). 출생지로 보면 전예와 유비는 모두 유주(幽州) 출신이다. 그러므로, 동한 말기, 전예는 처음에 유비의 곁을 따랐다. 그러나, 모친이 나이가 많아 항상..
2022. 1.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