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엄20 유파(劉巴): 유비가 전중국을 쫓아다녀 가장 힘들게 얻은 인재 글: 모운서(慕雲舒) 사람들은 유비가 제갈량을 얻기 위하여 "삼고초려"한 사실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유비의 수하에 있는 인재중에서 얻을 때의 난도로 따지자면 제갈량의 삼고초려는 첫째가 아니다. 첫째는 당연히 유비가 중국의 거의 절반을 돌아다녀서야 겨우 얻은 유파라고 해야할 .. 2018. 5. 10. 제갈량은 자신에 황제에 오르려고 생각한 적이 있을까? 글: 뇌정직(賴正直) 제갈량은 역대이래로 충신의 대표인물로 받들어져 왔고, 천고에 모범으로 인정된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다른 견해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제갈량은 간신이고, 야심가이고, 음모가이며, 왕망, 조조 내지 나중의 사마소, 유유(劉裕)와 일구지학(一丘之ญ.. 2017. 12. 1. 삼국시대 가장 용맹했던 5개의 정예부대 글: 복녕객(福寧客) 난세삼국에 각지의 세력은 아주 복잡했고, 군대도 아주 많았다. 이름을 날리고 후세에 이름이 전해지는 부대도 적지 않다. 오늘 얘기할 이 다섯 개의 정예부대는 대부분 유비와 관계가 있어서, 아마도 한켠으로 치우친 것같다는 오해를 받을 소지가 있다. 그러나 생각.. 2015. 5. 3. "칠종칠금(七縱七擒)"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글: 호각조(胡覺照) 2년을 준비한 후, 원래 이엄(李嚴)이나 다른 장수가 맡으려던 남정(南征)업무를 제갈량은 "여러 장수들의 재능이 나만 못하다"는 것을 이유로, 친히 나서기로 결정한다. 이에 대하여, 심복인 왕련(王連) 마저도 상소를 올려 제지한다: "이곳은 불모의 땅이고, 전염병이 .. 2015. 2. 10. 제갈량은 위연을 어떻게 배척하고 탄압했는가? 글: 호각조(胡覺照) 위연은 유비집단의 철간(鐵杆)중 하나이다. 일찌기 유비가 탁주(涿州)에서 무장을 조직하여 황건적의 난을 진압할 때, 위연은 바로 그 중의 한 명이었다. 즉 유비집단의 철간중 한 명이다. 이는 유비의 임명에서도 엿볼 수 있다. 219년, 유비는 스스로 한중왕(漢中王).. 2015. 1. 14. 제갈량이 건립한 형주적(荊州籍) 방파체계 글: 호각조(胡覺照) 형주(荊州)의 패배와 이릉(夷陵)의 패배라는 두 번의 타격을 입은 후, 서촉(西蜀)은 인재결핍이 더욱 두드러진다. 제갈량이 국가를 운영하는 초기에 이로 인하여 골머리를 앓는다. <화양국지>의 기록에 따르면, 서촉은 일찌기 성도의 남쪽에 높은 누대를 지어 사방.. 2014. 12. 16. 이전 1 2 3 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