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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제갈량)

제갈량 vs 이엄 (2): 양자간의 싸움

by 중은우시 2022. 3. 8.

글: 의사리(衣賜履)

 

이엄은 원래 유장(劉璋)의 사람이었는데, 유비가 익주를 쳐들어왔을 때, 이엄이 무리를 이끌고 투항했다. 그리하여 유장에게 큰 타격을 준다. 유비는 이엄을 크게 환영했다고 할 수 있다. 그후, 유비는 이엄을 보내 유봉(劉封), 맹달(孟達)을 따라 상용군(上庸郡, 호북성 죽산현 서남의 전가패)을 공격하게 했다. 그후 이엄은 건위군(사천성 팽산현) 태수에 부임하고, 이어서 두 건의 반란을 평정한다. 이는 그가 상당한 군사적 재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삼국지.이적전>에 따르면, 이엄과 제갈량, 법정, 유파, 이적(伊籍)의 다섯 명은 공동으로 촉한정권의 법령을 정비했다. 이는 이엄이 법률전문가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법정은 220년에 사망한다. 그렇다면 이엄은 개략 건위군태수의 직위에서, 겸직으로 이 일을 완성했을 것이다.

 

유비가 칭제하기 전에, 이엄은 한 가지 일을 한다. 유비를 아주 기쁘게 해주었다. 220년, 조비가 한헌제 유협을 압박하여 선양을 받고, 조비가 칭제한다. 그렇다면 유비는 반드시 칭제하여 한나라의 정통을 이어야 했다. 다만 칭제는 여러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그중 가장 중요한 조건중 하나는 각종 상서(祥瑞)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황제에 오르는 것의 합법성을 얻는다. 혹은 이를 통해 천명이 여전히 유씨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묘하다면 묘하게도 조비가 칭제하기 1년전에 황룡(黃龍) 한 마리가 무양현(武陽縣)에 나타난다.

무양이 어디인가?

바로 건위군에 있다.

건위군의 태수가 누구인가? 

이엄이다.

하하하

 

[의사리] 보라 이엄은 전투에 재능이 있을 뿐아니라, 통치도 잘하고, 법률전문가이기도 하며, 중요한 순간에는 상서를 만들어 바쳤다. 이런 간부를 유비가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외에 개인적으로 이런 생각이 있다. 아마도 이엄은 이미 조비가 칭제할 것이라는 것을 예견했던 것같다. 그래서 미리 유비에게 상서를 바친 것이다. 이 이엄은 정말 얻기 힘든 인재이다.

 

 <화양국지>에 이런 기록이 있다. 한나라가 흥기한 이래, 건위군태수는 더 높은 직위로 승진한 적이 없다. 그러나 이엄은 그 규율을 꺴다.

222년, 상서령 유파가 사망하자, 유비는 이엄을 불러 상서령을 맡긴다.

223년, 유비가 죽기 전에, 두 명의 탁고대신을 지명하는데, 한명이 제갈량이고, 다른 한명이 이엄이다. 이엄은 중도호로 내외의 군사를 통할했으며, 영안에 주둔했다. 유비가 이엄을 탁고대신으로 한 것은 당연히 각 정치집단간의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비가 이엄의 능력과 자질에 대하여 상당히 만족해한 것도 이유가 될 것이다.

다만, 유비도 자신이 죽은 후에 일어날 일을 어떻게 할 수는 없다.

유비가 죽은 후, 제갈량과 이엄의 관계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제갈량은 성도로 돌아가서 일체의 사무를 주재했다. 사서에서는 "정사무거세(政事無巨細), 함결어량(咸决於亮)" 정무에 관한 일이면 크건 작든 모두 제갈량이 결정했다. 이엄은 계속 영안(중경시 봉절현 동쪽, 즉 백제성)에 머물렀다. 이유는 동오의 공격을 방비하기 위함이다. 다만 이는 보정대신의 임무는 아니다. 즉 이엄은 단 1초도 보정대신으로서의 직책을 맡은 바는 없다.

당연히 그가 그것을 맡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고, 그에게는 기회가 아예 없었다.

이엄의 정치적 포부는 실현될 수 없었지만 그에게는 정치적 자산이 있었다. 개인적인 명망과 각종 인맥이외에, 그의 수하에 부대가 있었고, 당연히 2만명이 넘었다. 이 역량도 무시할 수 없다.

226년, 제갈량은 이엄을 전장군으로 임명하고, 이엄에게 "후방사무를 책임져야 한다"는 이유를 내세워 강주(중경시, 파군정부소재지)로 옮겨가게 한다. 그리고 호군 진도를 영안에 주둔시키며, 이엄의 지휘를 받게 한다.

진도가 누구인가?

진도는 자가 숙지(叔至)이고, 여남(汝南) 사람이다. 유비가 예주목으로 있을 때, 진도는 유비에 가담한다. 역사에서 "명위상아조운(名位常亞趙雲), 구이충용칭(俱以忠勇稱)"(이름과 직위가 항상 조운의 바로 다음이었으며, 둘은 함께 충성과 용맹으로 유명했다). 즉, 진도는 형주집단의 인물이다. 이엄과는 같은 집단이 아니다. 바꾸어 말하면, 그는 제갈량의 사람이다. 진도는 나중에 영안도독, 정서장군이 되고, 정후(亭侯)에 봉해지는데, 이는 그가 이엄사건에 연루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진도가 영안으로 간 것은 명목상으로 이엄의 부하이지만, 실제로는 이엄의 손에서 일부분 병마를 빼앗아 온 것이다. 

이엄이 강주로 간 후, 그는 뛰어난 지방통치능력을 보여준다. <화양국지>에 따르면, 일찌기 이엄이 건위군태수로 있을 때, 천두산(天杜山)을 뚫고, 강을 따라 도로를 건설하고, 교량을 놓고, 도하구를 건설했다고 한다. 관리들과 백성들이 모두 좋아했다. 강주로 간 후에 이엄은 강주성을 확장하고, 성벽의 길이를 16리가 되게 늘였다. 그리고 뒷산을 파서, 문강 및 파강으로 연결되게 하려 했다. 그리하면 강주성은 완전히 강으로 둘러싸여, 강 속의 성이 된다. 나중에 제갈량이 그를 한중으로 불러오는 바람에, 산을 뚫는 일은 완성되지 못했다. 어떤 자료에 따르면, 이엄이 산을 뚫으려 했지만, 제갈량은 '백성을 힘들게 하고 실익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허가하지 않았다고 한다. 제갈량이 지지하지 않은 것을 이엄이 혼자 결정해서 진행했는데, 나중에 한중으로 전보되는 바람에 이 일은 완성되지 못했다고 한다.

 

[의사리] 전체적으로 보면, 이엄은 일을 하려고 하고, 일을 잘하고, 일을 해낼 수 있는 관리이다. 어떤 자료에 따르면, 이엄이 이렇게 한 것은 모반의 혐의가 있다고 하는데, 내 생각에 그건 지나친 것같다. 다만 이엄은 제갈량의 말을 잘 듣지는 않은 것같고, 그건 사실일 것이다. 제갈량이 그런 그를 놔두겠는가. 이엄이 오개군(파군, 파서군, 파동군, 부릉군, 강양군)을 묶어서 파주를 만들고, 파주자사를 맡겨달라고 요구했다. 이 요구가 지나친 것일까? 다른 사람이라면 지나치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엄이라면 지나치지 않다. 왜냐하면 그와 제갈량은 모두 탁고대신이기 때문이다. 촉한제국에서 이론적으로 제갈량의 바로 아래는 그이기 때문이다. 다만 유비가 사망한 후, 그는 기본적으로 중용되지 못한다. '내외의 군사를 통할하는' 것은 고사하고, 단 하루도 후주를 보좌하지 못한다. 이엄은 분명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제갈량이 너는 너무 혼자서 하려는 것아니냐. 우리는 둘 다 탁고를 받았는데, 너는 지금 승상을 하고, 익주목으 하고, 상서의 일을 다 맡아서 하며, 황궁, 승상부의 일은 모두 네가 결정하는데, 나는 탁고를 받은 2인자인데, 파주자사를 하는 것이 과분하단 말인가. 만일 이엄이 꼬리를 말고, 제갈량의 말을 고분고분 들었더라면, 아마도 운명은 달라졌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첫째, 이엄의 성격이 그것을 용납하지 못했고, 둘째, 이엄의 나이가 그것을 용납하지 못했다. 이엄은 제갈량보다 나이가 많다. 유비가 죽었을 때, 제갈량은 42세로 장년이고, 이엄은 더 참고 기다릴 수 없었다. 참고 기다릴 수 없을 뿐아니라, 제갈량에 불복했다. 그렇다면 그와 제갈량의 싸움은 피할 수가 없는 일이다.

 

이엄이 강주에 있는 동안 두 가지 사건이 발생하는데, 한건은 제갈량을 자극했고, 다른 한건은 이엄을 자극했다.

제갈량을 자극한 일을 보자.

<삼국지.여예전>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승상 제갈량은 매년 군대를 출동시켜, 각군에서 병력을 징집한다. 대다수의 군에서는 별로 호응하지 않았는데, 파서군(지금의 사천성 낭중시) 태수 여예(呂乂)는 오천명을 모집하여 전방으로 보냈다. 이 오천명을 잘 다독이고 관리하여 도망친 사람이 없었다. 나중에 제갈량은 여예를 한중태수로 임명하고, 영독농(領督農)을 겸직하여 군량의 공급을 맡게 한다.

또 하나의 기록이 있다. 제갈량이 죽은 후, 여예는 다시 광한군(사천성 광한시)태수, 촉군태수가 된다. 촉군은 호구가 많고, 제갈량이 죽은 후, 도망가는 사병이 많았다. 서로 이름을 빌려쓰면서 여러가지 혼란스러운 상황이 발생한다. 여예가 부임한 후, 한편으로 엄히 조사하고, 한편으로 잘 권유하여 몇년만에 새로 호구에 올린 사람이 만여구가 되었다고 한다.

이 일이 이엄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겉으로 보기에는 없다. 깊이 살펴보면 관계가 적지 않다.

첫째, 제갈량이 매년 병력을 동원하여, 많은 지방의 관리들이 제갈량을 지지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병력을 달라고 해도 보내주지 않았다. 둘쨰, 수하에 최소한 2만의 인마가 있었는데, 제갈량이 각군에 부대를 보내달라고 하여도, 이엄은 주지 않았다. 그러므로, 제갈량은 이엄의 병력을 빼앗아야 했다.

 

[의사리] 실제로 여예가 5천명을 파견한 일은 도대체 어느 해에 발생했는가? 그건 확정할 수 없다. 만일 230년이전에 발생했다면, 나의 추단으로는 분명 문제가 없을 것이다; 만일 그후에 발생했다면, 나의 추단은 근거를 가지는 것이 된다. 다만 나는 전자의 확률이 높다고 본다. 왜 그런가? 이유는 우리가 앞에서 제갈량이 이엄을 축출한 상소문을 얘기하면서 거기에 이런 문구가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나는 북벌을 생각한 이래 이엄의 병력을 한중으로 데려와 진주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이엄은 '궁난종횡(窮難縱橫)하면서 결국 보내오지 않았다. 오히려 5개군으로 파주를 성립하여 그가 파주자사를 하고 싶어했다" 위의 '궁난'은 이엄이 각종 어렵다는 이유를 내세웠다는 것이다. '종횡'은 이엄이 여러 사람들과 연락을 주고 받으며 제갈량에 반대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파서군태수인 여예가 제갈량에게 오천의 병사를 보냈을 때, 수하에 2만의 병사가 있던 이엄은 보내지 않았다. 이럴 확률이 크다. 다시 더 깊이 생각해보면, 제갈량이 '각군에서 병력을 징발하고자 했으나, 많은 곳에서 보내지 않았다." 아마도 이엄이 '종횡'한 여러 지방관들일 수 있다. 물론 확정할 수는 없다. 다시 주제로 돌아와서, 각군이 병력을 보내지 않은 것이 이엄이 '종횡'을 했기 때문인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제갈량은 그가 '종횡'했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이제 이엄은 황하에 뛰어들어도 그 죄책을 씻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제갈량과 이엄간의 응어리는 유비가 죽었을 때 이미 맺혀져 있었고, 지금 더욱 심화된다.

 

 230년, 제갈량은 이엄을 표기장군으로 승진시킨다. 당시 조위의 대사마 조진이 여러 로로 대군을 진격시켜 촉을 공격했다. 제갈량은 이엄에게 2만명을 이끌고 한중으로 가도록 명령한다. 그리고 후주 유선에게 상소를 올려, 이엄의 아들 이풍을 강주도독독군에 임명하게 하여, 이엄이 떠난 후의 사무를 책임지게 한다.

이엄을 표기장군으로 승진시킨 것은 허직(虛職)으로 실권이 없다. 목적은 이엄의 2만병력을 한중으로 보내기 위함이다. 이를 통해 이엄의 병권을 빼앗는 것이다.

그러나 이엄은 다시 한번 제갈량의 신경을 건드린다: 그는 개부(開府)를 요청한 것이다.

만일 앞뒤를 따지지 않고 살펴보면 이엄의 요구는 과분하다. 제갈량이 병력을 이끌고 북상하는데, 너는 개부를 요구한다고. 너는 국가대의를 따지지 않느냐. 국가를 위해 헌신한다는 생각은 없는가. 이게 밀고당기면서 거래할 일인가. 사적인 이익을 도모하다니, 너는 말 그대로 정교한 이기주의자이다.

다만, 우리는 이엄의 각도에서 고려해보자. 아마도 느낌이 다를 것이다. 이엄은 계속하여 자신은 탁고대신이라고 생각했다. 지위는 제갈량의 바로 다음이다. 만일 우리가 간단하게 이엄이 개부를 요구한 것이 제갈량과 맞서기 위한 것이라고 본다면 너무나 얕은 생각이다. 제갈량은 이엄에게 군대를 이끌고 한중으로 가도록 했다. 이엄은 돌연 발견한다. 자신이 함정에 빠졌음을. 그리고 그 함정을 벗어날 방법이 없다는 것을.

그렇다면 개부는 무엇을 말하는가?

개부는 자신의 업무기구를 만드는 것이다. 자신의 수하의 관리를 두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내 사람을 둘 수 있는 것이다. 일인지휘관이 아니라. 강주에 있을 때는 개부를 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강주가 이엄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수하에 있는 사람은 모두 그의 사람이다. 다만 제갈량이 그를 한중으로 보내고, "이엄에게 중도호의 직위로 승상부의 일을 처리하도록" 하였다. 즉, 중도호의 신분으로 승상부에서 일하는 것이다. 이건 완전히 다르다. 제갈량은 성도에 승상부가 있고, 자신의 인마가 있다. 한중에도 승상부가 있고, 역시 인마가 있다. 만일 이엄이 개부할 수 있다면, 자신의 팀을 이끌고 한중으로 갈 수가 있다. 그리고 곁에 사람도 있다. 각종 사무를 처리하는데 아주 편리하다. 이엄은 표기장군인데, 표기장군의 신분으로 승상부의 일을 처리하는 것은 좀 이상하다. 그리하여 제갈량은 그에게 중도호의 신분으로 승상부의 일을 처리하게 한 것이다. 중도호는 개부할 자격이 없다.

이렇게 살펴보면,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 개부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이엄에게 있어서 너무나 중요했다. 이엄은 당연히 인식했을 것이다. 한중에 가서, 승상부에 들어가면 깊은 바다에 빠지는 것과 같다는 것을. 몇몇 심복은 데려갈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심복은 편제에 없다. 그저 사적인 막료로 의견을 제시할 수 있을 뿐이다. 일단 구체적인 사무처리에 들어가면, 이들은 아예 참가할 자격도 없다. 즉, 이엄은 명목상으로 승상부의 수뇌이지만, 실제로는 완전히 제갈량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그는 승상부에 '연금'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내가 하는 말이 엉터리라고 할 수있을지 모르겠다. 예를 한번 들어보자. 만일 이엄이 승상부의 어느 간부에게 한 가지 일을 명령했다고 치자. 그런데 그 간부가 거절하면 이엄은 어떻게 해야하는가? 만일 이엄이 제갈량을 속이고 무슨 일을 하려면 그가 할 수 있겠는가? 만일 이엄이 어느 간부와 동시에 제갈량에게 상대방이 법규와 절차를 어겼다고 호소하면, 제갈량은 누구의 말을 들을까? 승상부를 관장하는 것은 장완(蔣琬)은 되지만, 이엄은 안된다. 왜냐하면 장완은 제갈량의 사람이지만, 이엄은 제갈량의 적수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만일 이엄이 죽어라 제갈량을 따른다면,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그렇지 않았고, 그래서 개부를 요구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엄이 파주자사를 요구하고, 개부를 요구하는 것은 욕심이 너무 컸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나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은 역사를 읽으면서, 권력행사의 기본조건과 절차조차도 모르고 있다. 권력을 놓고 다투는 사람들의 심리적인 논리에 대하여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냥 결론을 내리고 입을 벌려 말한다. 그것도 자신만만하게. 하하.

제갈량이 이엄의 개부를 허용할 리가 없다. 그래서 거절한다. 그후 이엄의 아들 이풍을 강주도독에 앉힌다. 이는 이엄에게 체면을 살려준 셈이다.

이엄, 내가 너의 체면을 이렇게 살려주었다. 넌 이제 어떻게 할 거냐.

이때 만일 이엄이 한중으로 가지 않으면 그것은 항명이다. 조정에서 병사를 보내어 잡아들일 수 있다. 동시에 제갈량이 아들에게 강주도독까지 맡겼으니, 최소한 표면적으로 보면 강주는 여전히 너의 것이다. 만일 네가 한중으로 오는 것을 거절하면, 도의적으로도 말이 되지 않는다. 이엄은 실로 방법이 없었다. 앞길이 함정이건 평탄한 길이건 그냥 걸어가야 한다.

앞에서 우리는 제갈량의 상소문을 얘기했다. 거기에 명확히 쓰여 있다: "나는 이풍을 강주도독에 앉히게 하였는데, 그것은 이엄을 다독이기 위한 것이었다" 보라. 두 사람의 한 걸음 한걸음은 모두 함정이다. 이엄은 반란을 일으킬 실력과 박력이 없었다. 그저 한걸음 한걸음 영안에서 강주로, 다시 강주에서 한중으로 결국 중도호의 신분으로 승상부를 관리할 수밖에 없었다.

 

[의사리] 명승암강(明昇暗降). 겉으로는 승진인 것같지만 실제로는 좌천이다. 명상암억(明賞暗抑) 겉으로는 상을 내린 것같지만 실제로는 억누른 것이다. 이는 정치투쟁에서 관용수법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너는 대단하다. 표기장군이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네가 의존하던 실력은 하나하나 박탈당했고, 너는 반대할 방법도 없다. 일단 반대하면, 무수한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 너를 반적이라고 외칠 것이다. 하하. 말라죽은 낙타도 말보다는 크다. 그러나 털이 뽑힌 봉황은 닭보다도 못하다. 이엄은 이빨이 부러져도 그저 피와 함께 삼킬 수밖에 없다.

제갈량의 정치수단은 정말 대단하다.

 

이엄을 자극한 일을 보자.

위나라의 선싱군(新城郡)태수 맹달은 원래 촉나라사람이었다. 나중에 촉을 배반하고 위나라에 귀순한다. 226년, 조비가 죽고, 제갈량은 맹달을 회유한다. 서신도 보내고 옛 이야기도 하여 쌍방의 관계를 가깝게 만든다. 제갈량은 맹달에서 서신 한통을 보냈는데, 그 서신에서 이엄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부분여류(部分如流), 추사망체(趨舍罔滯), 정방성야(正方性也)" 정방은 이엄의 자이다. 이 말의 뜻은 공무를 처리하는데는 물흐르듯하고, 난제를 해결하는데 시간을 끌지 않는다. 이엄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이엄은 이전에 맹달과의 관계가 아주 좋았다. 역시 맹달에서 편지를 보낸다. 나는 제갈량과 함께 탁고대신이 되어 책임이 중대하다. 네가 빨리 돌아와서 우리 함께 대업을 도모하자.

우리는 이렇게 합리적으로 추단할 수 있다: 이엄이 맹달에게 서신을 보낸 것은 제갈량의 책반행동에 협력하는 것이다.

맹달은 그리하여 촉으로 되돌아오기로 결심한다.

이엄은 진심으로 맹달이 돌아오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들은 원래 전우이고, 친구이다. 이엄이 인정한 사람은 많지 않지만, 맹달은 분명 그 중의 한 명이다.

다만, 사마의가 병력을 일으켜 맹달을 칠 때, 제갈량은 고의로 병력을 보내어 구원해주지 않았다. 그리하여 맹달은 성이 함락되고 주살당한다.

맹달의 죽음은 이엄에게 큰 타격이 되었을 것이다. 이엄은 돌연 느꼈을 것이다. 제갈승상은 정치를 가지고 노는데 고수일 뿐아니라, 독수를 쓰는데도 전혀 망설이지 않는다는 것을.

쌍방간의 힘겨루기에서 이엄은 열세에 처했다.

개략 한중으로 가기 전에, 이엄은 다시 하나의 동작을 보인다. 그는 제갈량에게 칭왕하고 구석(九錫)을 받으라고 권한다.

이 일은 <제갈량집>의 <엄여량서(嚴與亮書)>에 나온다. 의미는 이엄이 제갈량에게 구석을 받고 왕을 칭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건의했다는 것이다.

제갈량은 회신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엄, 나는 당신과 안지 오래 되었다. 그런데도 나를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나는 원래 동방의 보통 선비였다. 어떻게 하다가 선제의 눈에 들어 현재의 '위극인신(位極人臣)의 자리에 올랐다. 받은 상사만 백억이 넘는다. 다만 현재는 아직 적을 토벌하는 임무를 완성하지 못했다. 선제의 지우지은에 보답하지도 못했다. 그런데, 제환공, 진문공과 같은 역할을 하겠다고 한다는 것은 너무나 대의를 어기는 일이다. 만일 위나라를 멸망시키고 조예를 죽여, 황상을 낙양의 엣궁으로 모실 수 있다면 나는 여러분들과 함게 상을 받겠다. 설사 십석이라고 하더라도 받아들이겠다. 구석이야 말할 것도 없지 않겠는가.

 

[의사리] 만일 이 일이 사실이라면, 분명 위연이 곽준을 대파한 이후일 것이다. 이엄이 한중으로 가기 전에, 제갈량은 회신에서 자신이 '위극인신(位極人臣)의 자리에 올랐다고 했다. 그건 승상직무를 회복한 이후 즉 230년이후이거나 약간 전이라는 뜻이 될 것이다.

개인적인 느낌으로, 이엄은 아부하는 방식으로 제갈량을 떠본 것같다. 네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을 것이다. 일반인이라면 칭왕하려면 했다. 그러나 제갈량은 그러지 않았다. 내 생각에 제갈량의 인품은 확실히 일반인보다 나았다고 본다. 그리고 제갈량의 신분은 조조, 손권, 유비와는 달랐다. 칭왕을 하면 참월의 혐의가 있게 된다. 양한4백년동안 유방이 최초로 이성왕을 봉한 이래로, 여후가 몇몇 여씨를 왕에 봉한 이외에 단 한명의 이성왕도 없었다. 조조가 스스로 위왕에 봉해질 때까지. 이 금기는 깨지지 않았다. 금방 조씨가 유씨를 대체한다. 그러므로, 봉왕은 모반의 전주라 볼 수 있다. 이엄이 제갈량에게 칭왕하라고 권한 것은 한편으로 제갈량에게 아부하려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 제갈량을 불위에 올려놓고 굽기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내용이 사실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갈량은 아주 조심성이 많은 인물이었는데, 어떻게 '십석이라도'같은 광망한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당시 제갈량과 이엄의 관계는 아직 괜찮았꼬, 사적으로 하는 말에서는 농담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가볍게 이엄의 '음모'를 깨버린 것이다. 만일 제갈량의 정색을 하고 이엄을 질책했다거나 혹은 피하면서 대답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처리하는 것만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후, 제갈량은 이엄을 한중으로 보낸다. 아마도 이엄이 가지고 있던 2만의 부대는 제갈량이 거두었을 것이다.(이엄도 일부분은 강주에 남겨두었을 것이다) 이엄이 한중에 도착하고, 자신은 확실히 제갈량의 적수가 되지 못함을 느꼈던 것같다. 그리고 제갈량을 더욱 두려워하게 된다.

그리하여 이엄은 이름까지 이평으로 고친다.

내가 졌다. 이래도 안되겠느냐는 식으로.

자료를 보면, 이엄은 청고(淸高)하고 고오(孤傲)한 것으로 유명했다(그래서 나는 이엄이 동주집단의 우두머리라고 보는 것에는 동의할 수가 없다). 오만한 사람은 잠시 고개를 숙일 수는 있지만, 오랫동안 그렇게 할 수는 없다.

성격있고 능력있는 강자가 직속상사와 건건이 부딛치고, 그 직속상사는 또한 그보다 더욱 능력있고 더욱 강한 사람이라면 어떻게 그를 대할 것인가. 그리고 어떤 운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