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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극용15

황소(黃巢)는 왜 실패했는가? 글: 청풍명월소요객(淸風明月逍遙客) 안사의 난(安史之亂)이후 당의종(唐懿宗)은 황음사치(荒淫奢侈)하고, 지취금미(紙醉金迷)하며, 환관이 권력을 농단하고 ,번진이 지방에 할거했으며, 탐관오리가 횡행하여 각지에서는 반란이 여기저기서 일어났고, 결국 대규모의 황소의 난(黃巢起義)이 일어난다. 황소는 875년에 거사하여, 884년 죽을 때까지 전후로 10년간 활약했다. 이 십년간은 881년 황소가 장안에서 황제를 칭한 시점을 기준으로 나눌 수 있다. 앞의 6년간은 황소의 반란군이 기본적으로 파죽지세로 연전연승을 거두었지만, 뒤의 4년간은 황소의 반란군이 병패여산도(兵敗如山倒), 즉 산사태가 난 것처럼 무너져서, 궤불성군(潰不成軍), 궤멸하여 제대로 싸울 수 있는 군대가 아니었다. 와 의 기록을 보면, 황소는 교.. 2023. 3. 16.
당나라의 멸망은 얼마나 참혹하였는가. 글: 사설신어(史說新語) 중국고대에 가장 명성이 높은 왕조는 당나라일 것이다. 대당의 태평성세때 팔방에서 조공을 바쳐 동방의 주인 내지 세계에서 가장 강성한 국가로서 존경을 받았다. 당나라의 황제는 아주 개명하여, 천하의 현사들을 불러모았다. 출신이나 국적을 가리지 않았고, 재능만 있다면 모두 대당을 위해 공헌하도록 남겨서 일하고 생활하게 했다. 지금까지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은 대당이 번영했을 때의 모습이다. 그러나 대당이 멸망하는 참상에 대하여는 별다른 인상이 없다. 실제 당나라의 최후는 참열(慘烈)이라고 형용해도 지나치지 않다. 907년, 당나라는 막다른 골목에 부닥친다. 선무군절도사(宣武軍節度使), 양왕(梁王) 주온(朱溫)이 권력을 찬탈하면서, 이씨의 당왕조정권은 붕괴하게 된다. 두 명의 당나라황제.. 2022. 12. 26.
경상(敬翔): 오대십국(五代十國)시기 제일모사(第一謀士) 글: 진령일백(秦嶺一白) 석일악착부족과(昔日齷齪不足夸) 옛날 힘들게 살 때의 일이야 자랑할 것도 없다 금조방탕사무애(今朝放蕩思無涯) 이제 성공했으니 마음대로 즐기면서 살아야 겠다 춘풍득의마제질(春風得意馬蹄疾) 봄바람에 기분도 좋으니 말을 달려서 일일간진장안화(一日看盡長安花) 하룻만에 장안에서 볼만한 것은 다 둘러보았다. 맹교(孟郊)는 두번이나 과거에 실패하고 46세에 비로소 합격하여 당나라의 진사가 된다. 이 고독하고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 못했던 서생은 말을 타고 장안가 거리로 나가 아가씨들과 어울렸다. 그러나 낙방한 서생들은 기운이 빠져 성밖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힘들게 십여년간 공부를 했지만, 그들은 그저 고향으로 돌아가서 애석하다는 말고 조롱을 받아야 할 처지인 것이다. 사람의 도리는 손.. 2021. 4. 5.
후당(後唐) 실패의 교훈: "방향이 노력보다 중요하다" 글: 엽서도(獵書徒) 당왕조가 멸망한 이후, 제국판도내의 수십개 할거세력중 어느 하나도 다시 한번 전국을 통일할 실력이 없었다. 그래서 한동안 서로간의 전쟁을 벌인 후, 상대적으로 우세한 지위를 지닌 할거정권이 속속 자신의 소조정(小朝廷)을 세운다. 그중 중원지구에 도읍을 정한 5개의 정권이 있다. 바로 후량(後梁), 후당(後唐), 후진(後晋), 후한(後漢), 후주(後周). 우리는 이들 5개 정권을 통칭하여 오대(五代)라 부른다. 그리고 중원외에 존재했던 할거정권은 전촉(前蜀), 후촉(後蜀), 남오(南吳), 남당(南唐), 오월(吳越), 민(閩), 초(楚), 남한(南漢), 남평(南平, 荊南), 북한(北漢)은 통칭하여 십국(十國)이라 부른다. 그리하여 후세의 사학자들은 이 분열시기에 대하여 '오대십국"이라고.. 2020. 7. 25.
야율아보기는 어떤 길을 걸었는가? 글: 만독역사(漫讀歷史) 당나라말기, 환관과 번진세력들이 창궐했고, 황제는 허수아비로 된다. 그리하여 변방에 대한 통제력이 약화되었으며, 이런 상황하에서, 거란부락의 일대영웅 야율아보기는 그의 영웅의 길을 시작한다. 당나라 천복원년(901년), 거란부락의 연맹수령 흔덕근칸(痕德.. 2019. 7. 11.
사타집단(沙陀集團): 당나라말기이후 국면을 주도한 집단 글: 흥체경(興替鏡) 중국 고대역사상 거의 모든 중원왕조는 북방으로부터의 압력에 시달렸다. 수,당시기 돌궐정권이 북방에 웅거하고 있었고, 중원왕조의 안전을 위협했다. 사타인(沙陀人)은 돌궐부락의 일부이고, 돌궐군대전투의 스타일을 그대로 계승했다. 돌궐군대는 경기병(輕騎兵).. 2019. 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