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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오대십국)

경상(敬翔): 오대십국(五代十國)시기 제일모사(第一謀士)

by 중은우시 2021. 4. 5.

글: 진령일백(秦嶺一白)

 

석일악착부족과(昔日齷齪不足夸) 옛날 힘들게 살 때의 일이야 자랑할 것도 없다

금조방탕사무애(今朝放蕩思無涯) 이제 성공했으니 마음대로 즐기면서 살아야 겠다

춘풍득의마제질(春風得意馬蹄疾) 봄바람에 기분도 좋으니 말을 달려서

일일간진장안화(一日看盡長安花) 하룻만에 장안에서 볼만한 것은 다 둘러보았다.

 

맹교(孟郊)는 두번이나 과거에 실패하고 46세에 비로소 합격하여 당나라의 진사가 된다. 이 고독하고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 못했던 서생은 말을 타고 장안가 거리로 나가 아가씨들과 어울렸다. 그러나 낙방한 서생들은 기운이 빠져 성밖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힘들게 십여년간 공부를 했지만, 그들은 그저 고향으로 돌아가서 애석하다는 말고 조롱을 받아야 할 처지인 것이다.

 

사람의 도리는 손부족이봉유여(損不足而奉有餘) 즉 없는 사람에게서는 빼앗고, 가진 사람에게 더주는 것이다.

 

승리자는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으며, 좋은 자원은 모두 가지지만, 실패자는 그저 뼈다귀를 주워서 탕을 끓여먹으며, 정신과 육체가 극도로 피폐한 상황하에서 겨우겨우 생존해야 하는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저 묵묵히 규칙에 따르지만 굳이 소수의 사람들은 실의를 분노로 전화시켜 불타오르게 하기도 한다. 3명의 과거낙방생은 당나라를 멸망시키는데 큰 공을 세운다.

 

860년, 섬서 화음의 경가대원(敬家大院)

 

경흔(敬忻)은 지팡이를 집도 동원(東院)으로 걸어들어갔고, 아들이 초조해하며 왔다갔다하는 것을 본다. 문과 창은 여전히 꽉 닫혀 있었고 가끔 낮은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경흔은 아들의 마음을 이해했다. 마치 삼십여년전의 자신을 보는 것같았다. 자식을 낳는 것은 단순히 혈맥을 이어가는 것만이 아니라, 정신과 심리적인 전승을 의미한다. 걱정할 것없다. 사람은 모두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부자는 그렇게 돌의자에 나랑히 앉았다. 둘 사이에는 화제가 별로 없었다. 아들은 고개를 돌려 위엄있는 부친을 보았는데, 처음 느낀 것은 많이 늙으셨다는 것이다. 부친은 일찌기 주부(州府)의 2인자였고, 얼굴은 관청도장보다도 엄숙했었다. 판결문에 서명하고 내려보내는 작업을 하면서 스스로를 자사(刺史)의 지위로까지 끌어올렸다.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내고, 세상은 새로운 사람이 옛사람을 대체한다.

 

아들: 아버지, 손자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경흔: 네 아들이니 네가 생각해봐라.

아들: 이건 아버지를 위해 대를 잇는 것입니다.

경흔: 하하, 나중에 손자중 몇명이나 할애비를 기억하겠느냐

아들: 이태수를 보십시오. 오세동당(五世同堂)하지 않습니까.

경흔: 옆집의 장씨는 할아버지 얼굴도 보지 못했다.

아들: 그냥 우리집 얘기나 하시죠.

경흔: 서재에 가서 <설문해자>를 가져오너라.

 

"비불망집(飛不妄集), 상필택림(翔必擇林)"

(하늘을 나는 새는 아무 곳에나 함부로 내려앉지 않고, 적합한 나무를 찾아서 내려앉는다)

경상의 만월연(滿月宴)은 성공적으로 열었다. 주,현의 유명인사들이 줄줄이 찾아와서 축하인사를 건넸다. 직위가 낮은 하급관리들은 문앞에서 인사를 하고 선물을 건네고는 알아서 그냥 돌아갔다. 사람과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하다. 두 어깨 위에 머리 하나를 받치고 있다. 그러나 각양각색의 바깥에서 붙인 표찰은 평등하게 교류하는데 무형의 제약이 된다. 모두가 사람이지만, 반드시 같은 류의 사람은 아닌 것이다.

 

경씨집의 건너편에 사는 왕씨집안도 아들의 만월연을 열었다. 그러나 겨우 친척들이 찾아왔을 뿐이다. 좁은 마당에 두개의 식탁을 놓고, 가까운 친척들만 모여서 축하를 했다. 왕씨는 글을 많이 알지 못했고, 귀한 이름으로 지을지 돈버는 이름으로 지을지 고민했다. 결국 아들의 이름을 '왕발(王發)'로 정한다. 

 

두 새 생명에게 인생의 첫번째 표찰이 붙여진 것이다. 비록 모유를 먹고, 오줌과 똥을 싸는 자세는 전혀 차이가 없지만, 그들은 각자의 부친이 만든 틀 속에서 각자 성장한다. 선천적인 자원을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조음(祖蔭)이라고 부른다.

 

용은 용을 낳고(龍生龍), 봉황은 봉황을 낳는다(鳳生鳳), 그리고, 쥐새끼는 구멍을 판다.

 

경상은 서재에서 글자를 배워 익히고, 할아버지가 골라준 그 나이에 맞는 책을 읽는다. 그는 부친을 본받아 과거에 합격해서 명성을 떨쳐야 했다. 그래야 양대(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쌓아온 자원을 이어갈 수가 있는 것이다. 

 

왕강은 낫을 들고 들판으로 들어갔고, 풀을 베고, 나무를 하면서 동시에 양떼도 보살폈다. 그의 부친은 자신의 힘으로 가난을 벗어났다. 돈을 모아 집을 잘 지어야 나중에 장가보내기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린아이는 아직 아무 것도 모른다. 생활의 고난을 아직은 겪지 않고 있다.

 

경상과 왕발의 집은 아주 가까웠다. 그들 둘은 시간이 있을 때면 함께 놀았다. 그래서 왕발은 학비를 내지 않았지만, 자기의 이름을 쓸 수 있었고, 경상도 점점 보리와 잡풀은 구분할 수 있게 된다. 독서는 정신역량을 키워주지만, 노동은 몸과 기백을 길러준다.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없다. 분배비율이 서로 다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생명이 끝나갈 때이다. 그래서 그들은 의미심장하게 후손들에게 말해주지만, 후손들은 그 말을 그저 시대에 뒤떨어지고, 시대에 맞지 않는 말이라고 여길 뿐이다. 경상이 하루에 공부할 양을 다 하면, 경흔도 그가 왕발과 같이 노는 것을 말리지 않았다. 권세는 영원히 같지 않다. 다만 중생의 인격은 평등하다.

 

경상은 밤을 새워 공부했고, 글은 갈수록 잘 썼다. 왕발은 매일 양을 돌봤고, 규모를 배로 키우는 동시에 강건한 몸도 갖게 된다. 이들이 세운 인생의 목표는 너무나 차이가 컸다. 한 명은 과거에 합격하여 장안의 볼거리를 모두 보고 싶어했고, 한 명은 재산을 모아서 인근 마을의 아가씨 소방과 결혼하고 싶어했다.

 

경상: 장부는 뜻을 길러야 그 날카로움을 빛낼 수 있다.

왕발: 소방의 부친은 양 18마리를 달라고 한다.

경상: 나는 내년에 과거를 치러 갈 것이다.

왕발: 그녀의 부친은 내년이면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했어.

경상: 대장부는 공명을 세우지 못하는 것을 걱정해야지, 처를 얻지 못할 것을 걱정해서는 안된다.

왕발: 아, 골치아프다.

경상: 좀더 생각을 크게 가져야지.

왕발: 그래봐야 먹고 자고 여자를 얻고 자식을 낳는 것 아냐?

 

두 사람은 각자의 방향으로 노력했고, 서로 얘기를 나누는 일은 갈수록 줄었다. 경상은 완전히 책의 바다에 빠져 있었다.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가 붓을 들어 쓰는 문장은 우아하고 신선했다. 그러나, 아마도 하늘이 보기에 경상의 붓과 왕발의 채찍은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다.

 

877년, 18살의 경상은 장안으로 간다.

그는 천년제도가 낯설지 않았다. 어쨌든 장안은 그의 고향에서 이백여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으니까. 다른 점이라면 이전에는 여행객의 신분으로 왔다면, 이번에는 과거시험을 치르러 왔다는 것이다. 경상의 집안조건과 성적은 화음(華陰)지방에서 괜찮은 편이다. 그러나 당나라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으로 들어가보니, 비로소 사람위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는 왕발의 눈에는 경상이었지만, 세가재자들의 눈에는 그가 왕발이었다.

 

조모: 나의 부친은 당금 재상이다. 뭐 별로 자랑할 것은 없다.

전모: 나는 장원이다. 기실 별 거 아니다.

손모: 나의 둘째이모부의 모친이 그냥 공주이다.

경상: 나, 나, 나의 조상은 평양왕(平陽王) 경휘(敬暉)이다.

이모: 경휘가 누구지?

주모: 아마 장간지와 함께 무측천을 압박하여 유언을 고치게한 사람인 것같아.

오모: 원래 신룡정변을 일으킨 오왕중 한명이지.

정모: 듣기로 경휘는 능지처참을 당했다던데, 사실일까?

 

아무렇게나 조상을 들먹이는 건 스스로의 자신감을 북돋워준다. 어쨌든 백년전의 일을 누가 알겠는가. 진정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은 높이 보게 만들려면 스스로 지금 제대로 일을 해야 한다. 경상은 묵묵히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물러난다. 그리고 책을 꺼내서 복습을 한다. 과거에 좋은 성적으로 합격해야만 부친은 장원부친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경상은 생각하면할수록 흥분되었다. 유일한 기회가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이다. 그는 자신감을 가득 가지고 과거시험장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시험답안지에 자신의 청춘과 꿈을 담았다. 그러나 낙방했고, 장안에서 쫓겨난다.

 

경상은 기가 꺽여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는 자신보다 더 기가 죽어 있는 왕발을 발견한다.

왕발은 겨우겨우 18마리의 양을 모았는데, 소방의 부친은 혼인을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남자측이 너무 가난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딸이 나중에 고생할 것을 걱정한 것이다. 왕씨부자는 하루종일 기운이 없었다. 반평생동안 노력해서 겨우 집을 지었고, 착실하게 살았는데 며느리도 맞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점점 세상을 원망하기 시작한다.

 

왕발: 듣기로 황소(黃巢)가 하남으로 쳐들어왔다면서

경상: 농민반란군은 성공하기 어려워.

왕발: 내가 바로 농민인데.

경상: ....

왕발: 듣기로 왕발은 과거에 낙방한 서생이라면서

경상: 나도 낙방서생인데.

왕발: 우리도 참여할까?

경상: 소방과 결혼은 어쩌고

왕발: 대장부가 공명을 세우는 걸 걱정해야지, 처를 얻지 못할 것을 걱정해서는 안되잖아.

경상: 난 안가. 나는 반드시 과거에 급제할 거야.

 

왕발은 짐을 싸들고 집을 나선다. 경가대원의 문앞에는 매파들이 모여있는 것을 본다. 세상의 슬픔과 기쁨은 서로 통하지 않는다. 계층을 초월한 우정이 있어도 어쩔 수가 없다. 경상은 서재에 앉아서 공부를 하고 있었고, 집안에는 거의 경흔의 흔적이 없다. 부친은 다시 초조하게 마당을 오갔다. 절박하게 할아버지라고 불러줄 손자가 필요했다. 경상은 전심전력을 다해서 당시를 공부했고, 많은 작자들이 모두 과거시험에 많이 응시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자신도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 과거급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식과 색은 인간의 본성이다. 제왕장상과 장사꾼 가마꾼도 다 같다.

 

880년, 황소가 화음을 공격한다.

당희종(唐僖宗)은 축국을 하다가 바로 사천으로 도망쳐 버린다. 황제가 앞장서서 도망쳤다는 소식이 흘러나오자 여러 곳의 성을 지키던 수비군들도 방어를 포기한다. 경상의 일가도 밤을 새워 집을 나선다. 그리고 버려진 토방을 구해 빈농으로 변장한다. 하층민의 반란과 상층부의 쿠데타의 차이점이라면 중산계층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있다.

 

경상의 인생신념은 순식간에 붕괴된다. 십여년간 노력한 것을 쏟아부을 곳이 없어진 것이다. 대당의 과거는 성세의 자랑으로 여겨졌었다. 그런데 지금 황제까지도 머리를 싸매고 도망쳐 버렸다. 글을 읽는 것은 사상의 경지를 끌어올릴 수는 있지만, 독립하여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지는 않는다. 노동류의 직업이 아니면 직접적으로 가치를 생산하지 못한다. 공부에 빠지게 되면 근육이 발달하지 못한다. 경상은 미래에 대해 미망에 빠진다. 그때 그는 책 한권의 문구를 떠올린다.

 

"덕이 많으면 멀리 있는 자들이 복속하고, 믿음이 충분하면 다른 의견을 하나로 통합할 수 있으며, 의리가 충분하면 부하를 얻을 수 있고, 재능이 뛰어나면 역사에서 배울 수 있으며, 총명함이 충분하면 부하를 돌볼 수 있다. 이런 사람은 '준걸(俊)'이라 한다.

행동이 올바르면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되고, 지혜가 뛰어나면 의심스러운 점을 해결할 수 있으며, 신뢰가 있으면 약속을 지키게 되고, 염치를 알면 재물을 나눠준다. 이런 사람을 '호걸(豪)'이라 한다.

이런 기준으로 보자면, 황소는 바로 준걸이며, 호걸이 아닌가

 

경상은 집을 나선다. 부친은 그를 격려했는지 아니면 말렸는지 알 수가 없다. 부친의 생명은 거의 끝나가고 있었고, 아들의 인생은 이제 막 시작하는 중이었다. 천하는 난세에 빠져 매일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자신의 의지만으로 해결할 수가 없다. 그래서 몇대의 사람들이 아수라장에 빠졌다. 누가 먼저 깨어나느냐에 따라 그가 선기를 점하게 되는 것이다.

 

경상의 이웃인 왕발은 변주관찰지사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를 찾아간다.

왕발은 열정적으로 문을 나와 맞이한다. 그에게서는 양을 돌보던 시골아이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경상은 마음 속으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월은 흐르는 것이고, 운세는 무상한 것이다.

두 사람의 관계는 미묘하게 변화했다. 왕발은 가슴을 치면서 그에게 일자리를 찾아주겠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났지만 아무런 소식이 없다. 경상은 자신이 마치 짐이 되어버린 것같은 느낌이 든다. 

원래 과거를 보려했던 서생이었으므로, 그는 붓을 들어 글을 써주면서 생활하게 된다. 그의 고객들은 문화수준이 낮았다. 그래서 글도 그에 맞추어 써야 했다.

경상은 학식을 속담으로 전환시켰다. 그래서 좋은 반응을 얻는다. 그는 점차 주변 사람들의 편지를 대신 써주는 일을 독점하게 된다. 기분이 좋을 때는 좋은 글귀를 써주기도 했다. 

변주의 최고책임자 주온은 별로 배우지 못해, 두 자리숫자만 되어도 비서에게 대신 계산하게 했다. 그는 군대내에서 유행하는 경상의 어록을 듣게 된다. 놀란 그는 사람을 시켜 이를 조사시킨다. 금방, 왕발은 주온의 명령을 받게 된다: "듣기로 네 친구가 같이 있다고 한다. 함께 나를 찾아오너라!"

좁은 지방을 차지하고 있던 군벌과 편지나 대신 써주던 서생이 만난 것이다. 그들의 만남은 당나라에게는 상종(喪鐘)이 된다. 운명은 이렇게 기묘하다. 그저 하나의 방향으로 계속 노력하면, 결국은 아주 강대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주온: 듣기로 그대는 <춘추>를 읽었다는데, 거기에는 무엇이 쓰여 있는가?

경상: 제후간에 전쟁을 하는 일입니다.

주온: 병법을 나를 위해 써줄 수 있겠는가?

경상: 병법이라는 것은 응변출기(應變出奇)로 승리를 거두는 것입니다.

주온: 알아듣기 쉽게 말해보라

경상: 춘추에 쓰여진 것은 옛날의 방식이고, 지금 쓸 수는 없습니다.

주온: 너에게 군직을 내릴테니, 나를 따라 전쟁터에 나가도록 하자.

 

주온은 군대를 확충할 준비를 했다. 경상에게 군대모집공고문을 쓰게 한다

경상: 함부로 그런 공고를 써붙여서는 안됩니다.

주온: 우리는 병력이 너무 적다.

경상: 주변이 모두 군벌이므로, 그렇게 하는 것은 스스로의 단점을 드러내는 꼴입니다.

주온: 그럼 어떡해야 한단 말인가

경상: 사람을 모집하면 훈련도 시켜야 합니다. 차라리 담장을 파내는 것이 더 효율적입니다.

주온: 그게 무슨 말인가?

경상: 사병이 도망쳤다고 하면서, 우군들에게 조사에 협력해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주온: 그 후에는?

경상: 그들을 집어삼키는 겁니다.

 

주온은 안팎에서 호응하는 전략으로 주변의 군벌들을 흡수해갔다. 몇달이 지나지 않아 상당한 규모를 이루게 된다. 그러면서 조정에는 자신이 피해자라고 호소했다. 경상의 첫번째 계책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주온은 그를 다시 보게 된다. 예전에 그가 쓴 글을 보고 좋아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수준이었다. 경상도 주온이 정말 좋아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주온은 이때부터 그를 오른팔로 삼았다. 그리고 그를 데리고 그의 왼팔을 보여주었다.

 

이진(李振)은 최근에 빼앗아온 각종 군수물자를 정리하고 있었다. 어지러운 숫자들의 뒤에는 날로 커져가는 강대한 군사력이 있었다. 이진은 대당명신의 후손이다. 그가 당나라를 멸망시키고 싶다는 생각은 주온보다고 강했다. 그가 밥그릇을 집어던지고 신분을 바꾸게 된 것은 여러번 과거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사랑과 미움은 하나의 양면이다. 이진의 과거꿈은 무너졌다. 그렇게 되자 과거에 급제한 동료들을 적대시하기 시작한다. 그는 경상도 낙방생이라는 말을 듣자, 바로 몸을 일으켜 열정적으로 악수했다. 두 사람은 당나라의 교육제도의 혼란상을 비판했고, 자신들이 그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이진은 30여명의 대신을 황하에 던져 물고기밥이 되게 한다. 이를 가리켜 "백마역지화(白馬驛之禍)"라고 부른다.

 

884년, 황소가 낭호곡(狼虎谷)에서 죽는다.

진종권(秦宗權)은 자신의 부하가 많은 것을 믿고 직접 하남에서 황제를 칭한다. 막 장안으로 되돌아온 당희종은 다시 짐을 챙겨 황급히 봉상(鳳翔)으로 도망쳤다. 주온은 당나라의 돈으로 하남에서 자신의 세력을 형성한다. 그런데 돌연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한 것이다. 그래서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한바탕 싸워야 했다. 경상은 일련의 계책과 운용으로 주온이 이 싸움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게 해준다. 

 

어떤 사람은 글을 읽으면서 문구의 뜻에 빠진다.

어떤 사람은 글을 읽으면서 심층논리에 빠진다.

학습의 본질은 두 가지이다: 기능과 사유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두 가지이다: 고기국과 글

 

병법은 배워본적이 없던 서생이, 처음 참모가 되었지만 전투마다 승리를 거둔다. 그는 교묘하게 운용할 줄 알았다. 아마도 이는 그의 넓고 깊이있는 학식때문이었을 것이다. 주온은 진종권의 지반을 빼앗고 그의 부하들도 모조리 거둔다. 그리고, 진종권을 장안으로 보내 상을 하사받을 때, 경상과 이진을 데려가서 관직을 내려줄 것을 요청한다. 두 낙방서생은 인생무상을 느낀다. 과거에 낙방하여 실의에 빠져 있었는데, 이제 황제로부터 칭찬을 받게 되었으니.

 

"경상과 이진을 연희루로 불러서 노고를 치하하고, 경상을 태부경에 임명했다."

 

경상은 자신의 모든 것을 주온에게 건다.

 

"주선(朱瑄)을 기습하여, 병사수량이 오히려 이극용(李克用)을 추월한다.

조광응(趙匡凝)을 대파하며, 영토면적이 각 군벌을 훨씬 넘어선다

이무정(李茂貞)을 쫓아내고, 당소종(唐昭宗)의 사용권을 차지한다.

양나라의 찬탈과 시해는 경상의 계모가 가장 많았다."

 

경상은 계책을 세우고, 주온이 병사를 이끌고 나가 승리를 거둔다. 두 사람의 협력과 묵계는 점점 대당말세의 최강조합이 된다. 주온은 회남을 공격하여 점령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병사들이 일년내내 쉬지 못하고 있어 더 이상의 전투를 싫어하는 심리가 있다는 것을 무시했다. 경상은 말렸다. 그러나, 주온은 부하들을 모아 회의를 하면서 병사들을 질책했다. 그 결과 사기도 떨어지고, 게다가 비가 많이 내려서 공격해 들어갔지만, 오히려 패배했다. 주온은 어쩔 수 없이 군수물자를 포기하고 되돌아오면서 당나라관리들을 모조리 죽여버리는 것으로 화풀이를 했다.

 

경상은 주온의 최고심복이 된다. 그러나 편안함과 가벼움은 느낄 수 없었다. 살벌하고 거친 주군을 모시고 있다보니, 업무보고를 하기 전에는 반드시 마음을 가다듬어야 했다. 어떤 때는 부하가 말 한마디 잘못한 것으로 바로 얻어맞곤 했다. 경상은 문구하나하나까지 신경썼다. 그리하여 주온이 기쁘게 그의 건의를 받아들이게 하였다.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정도가 자신이 성공하는 고도라는 말이 있다. 직업적인 아부는 왕왕 거기에 그친다. 그러나 진정 일을 하는 사람에게 이것은 단지 첫째 단계일 뿐이다. 경상은 학식을 모략으로 전환시킨다. 부분적인 정보를 끌어모아서 주선을 찾는다. 그리고 이론과 현실을 완벽하게 결합시킨다. 그 댓가는 잠시도 쉴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900년, 당소종(唐昭宗)은 태감들에 의해 소양원(少陽院)에 감금된다.

33세의 당소종은 이제 털빠진 봉황이 되어 하루하루를 멍하니 흘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조상의 기업을 회복하려는 꿈은 깨진 것이다. 그러나 더욱 큰 굴욕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온이 병력을 이끌고 장안성을 평정한 것이다. 그리고 당소종을 동도 낙양으로 끌고 갔다.

자산은 분투를 통해 빨리 얻을 수 있지만, 기세는 몇대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했다. 주온은 가난한 하층에서 위에까지 올랐지만, 황제를 만날 때는 여전히 두려움이 있었다. 

당소종이 매번 주온과 얘기를 나누자고 하면, 그는 항상 몸이 좋지 않다는 핑계를 대며 피했다. 그러면 황제는 그대가 오기 싫다면 경상을 보내라고 얘기하게 된다.

 

함께 난관을 돌파하려면 외부의 사물을 정복해야 한다.

마음을 합쳐서 일하려면 반드시 마음 속의 의심을 떨쳐내야 한다.

전자는 방식과 방법을 따지는 것이고, 

후자는 사람의 본성을 억제하는 것이다.

군신간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항상 악착같은 셈법이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다.

흑을 없애고, 백을 남기는 것은 그저 고독한 마음을 달래기 위함일 뿐이다.

 

주온은 경상의 조강지처가 병사한 것을 보고 자신의 여자를 그의 부인으로 보내준다.

신혼날 밤에 경상은 유씨(劉氏)에게 욕을 얻어먹는다. 유씨의 첫번째 남편은 상양(尙讓)인데, 대제정권의 재상 즉 황소의 재상이었다. 시부(時溥)는 황소를 진압한 공으로 대당군왕(大唐郡王)에 오른다. 유씨는 그의 여자가 된다. 그후 시부는 주온의 공격에 패배하여 도망치게 되고, 그녀는 다시 전리품으로 주온에게 거두어진다. 유씨는 이렇게 세번에 걸쳐 남편이 바뀌면서 권세 이외에는 아무런 흥미를 갖지 못하게 된다. 아마도 그들 둘은 서로가 서로를 무시했고, 그래서 아무런 공통의 화제가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경상은 감히 유씨를 건드리지 못했고, 집안에서 꾹 참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유씨는 주온을 모시고 자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사람들에게서 얻어들은 정보를 주온에게 전해준다. 

 

907년, 주온이 당을 멸망시키고 양(梁)을 건국한다.

당왕조는 300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존속했고, 명성은 이전의 진, 한보다 훨씬 컸다. 그들은 분발하고 노력하여 목숨을 연장해왔으나, 돌연 무너진 후에 새로운 싹이 솟아올랐다. 양태조 주온은 추밀원에 대해 제도개혁을 진행하고, 경상은 숭정원의 일인자가 된다. 그의 사무실은 재상의 것보다 컸다. 그것은 그의 충성심에 대한 보답이었다.

 

18세에 과거에 낙방한 후, 그는 미래가 어둡다고 보았다.

48세에 그는 후량의 백관중 우두머리가 된다. 그는 운명이 기묘하다고 생각한다.

20년후, 또 어떤 모습일까? 경상도 그 답을 알지 못한다.

 

경상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주온의 부름을 받는다. 그들은 이극용에게 초청장을 보내지 않았고, 상대방은 한판 붙자고 하는 것이다. 경상은 방안을 마련하면서 초안을 준비할 필요도 없었다. 산천지형과 군비상황은 이미 머리 속에 드러 있었다. 그가 그자리에서 설계한 방안은 다시 주온의 칭찬을 받는다. 

경상은 병부상서, 금란전대학사가 된다.

경상의 직위가 갈수록 많아지면서 말하는 것이나 일처리는 더욱 조심했다. 주온은 회의를 열 때면 친아들에게조차 욕을 해댔다. 이존욱(李存勖)과 비교하자면 개돼지나 다름이 없었다.

이 밑바닥 출실의 황제도 보통사람처럼 생로병사를 겪는다. 그는 자신의 몸이 점점 예전같지 않음을 느낀다. 그래서 자신이 이뤄놓은 패업이 무너질까봐 걱정했다.

이존욱은 이극용의 아들이고, 오대십국의 제일전신(第一戰神)이라 불렸다.

 

912년, 경상은 황궁으로 긴급히 불려간다.

주온은 병석에 누워 숨이 겨우 붙어 있었다. 살벌했던 기세는 온데간데 없었다. 그는 힘을 다하여 팔을 약간 들고, 진심으로 경상에게 자신의 양자를 보좌해줄 것을 부탁했다. 경상은 가만히 눈앞의 그를 바라보았다. 마음 속으로는 아마도 말로는 다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왔을 것이다. 이 이미 백발이 된 남자는 항상 그로 하여금 낯익으면서도 낯선 존재라고 여기게 만들었다. 주온의 두 아들은 강력히 반대했고, 부친을 죽인 후 의형(義兄)도 추살해 버린다.

 

주우규(朱友珪)는 부친을 죽이고 황위를 찬탈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경상과 주온의 관계를 꺼렸다. 그는 이진으로 하여금 숭정원을 이끌게 하고, 경상의 지위를 중서시랑으로 바꾼다. 경상은 자신의 불공정한 대우를 받는 것에 대하여 아무런 불평도 얘기하지 않고, 병을 이유로 정무에 참여하지 않는다. 그는 당에서 후량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너무나 많은 집안이 몰락하는 사례를 보아왔던 것이다.

경상은 병이 없으면서, 집안에서 병치료를 하는 척했다. 할 일이 없으면 서재로 들어가 시간을 보냈따. 그는 서재의 책들을 만지면서, 마치 옛날 경가대원으로 돌아간 듯 느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왕발이 아직 살아있는지도 모르겠다. 소방은 어떤 모습으로 바뀌었을까. 화음의 고향에서 아직 자신을 기억하는 사람이 남아 있을까? 세월은 생명을 여러가지 모습으로 조각한다. 한번 칼을 대고나면 되돌릴 수가 없다. 경상은 점점 인생의 주맥락을 확실히 보고, 놀아운 결과를 얻어낸다. 후량은 주씨집안의 것이지만, 자신의 지분도 있다.

 

반년후 주우정(朱友貞)이 반란을 일으켜 둘째형을 죽인다. 양말제(梁末帝)는 대거 조암(趙巖)등을 발탁한다. 아부를 잘하는 순서에 따라 직위를 주었다. 경상은 비록 후량의 개국공신이지만, 후임황제들과는 교류가 별로 없었다. 경상은 재상 사무실에 있긴 했지만, 황제가 그를 찾아서 얘기를 나누는 일은 거의 없었다. 조암의 사람들이 매번 문앞을 지나갈 때마다 얼굴색은 차갑고 전혀 그에게 잘보이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존욱이 영토를 넓여가면서 점점 후량의 영토를 빠앗아가자, 경상이 죽음을 무릎쓰고 간언하여 비로소 총사령관을 교체한다. 이진은 집에서 병을 핑계로 나오지 않았는데, 그 소식을 듣고는 그저 고개를 흔들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일찌기 그 유명했던 최고의 모사가 저런 수법을 쓰다니. 그들은 사람을 마구 죽이는 주온이 있을 때도 그렇게 꾹 참고 있지는 않았다. 그때는 모두가 같은 목표를 향해 나가고 있었다. 그래서 왕조교체의 대업을 이룰 수가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잘 아는 그 지명들이 하나하나 이존욱의 손에 넘어가고 있었다. 나이 예순에 가까운 경상은 근심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다시 한번 황제에게 자신이라도 나서겠다고 간언한다. 그러나 조암등은 그가 중용받지 못해서 원망의 말을 하는 것이라고 하였고, 그를 기용하지 않았다. 

 

923년, 이존욱이 변주의 교외지역까지 쳐들어 온다.

조암은 바로 도성에서 도망친다. 그리고는 도굴광인 온도(溫韜)에게 의탁한다. 온도는 그가 가져온 금은주보에 감탄한다. 양말제는 아무도 없는 대전으로 걸어들어갔다. 마치 무수히 많은 귀신그림자가 눈앞을 오가는 것같았다. 그는 놀라서 경상을 부른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물어본다

 

말제: 짐이 항상 그대의 말을 흘려 들었는데, 이제 급하게 되었으니, 화내지 마시고, 나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려줄 수 있겠는가

경상: 제가 먼저 나가서 죽겠습니다. 차마 종묘사직이 망하는 것을 눈뜨고 보지 못하겠습니다.

 

군신은 서로 끌어안고 통곡했다.

 

이존욱은 주우정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말을 듣는다. 그리하여 그는 후량의 대신들을 사면하겠다는 공고문을 붙인다. 이진은 아주 기뻐하며 경상에게 말했다: "우리의 죄를 사한다니, 새로운 황제를 모십시다." 경상은 멍하니 서서 옛친구를 쳐다보았다.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는 서재에 앉아서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잠긴다. 그때 노복이 와서 이진은 이미 당장종(이존욱)을 영접하러 갔다고 전한다. 경상은 탄식하며 말한다: "이진은 장부가 아니구나. 무슨 면목으로 다시 양의 건국문을 들어올 수 있겠는가?" 경상은 오랫동안 서재에서 나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뭔가 이상하다 여기고 방문을 부수어 열었다. 그러나 오대십국의 제일모사는 이미 대들보에 목을 매고 죽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