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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29

경시제(更始帝) 유현(劉玄) 글: 몽고창랑(蒙古蒼狼) 유현(劉玄)은 원래 망명객이다. 유현의 동생이 다른 사람에게 피살당한다. 유현은 복수를 하고 싶었는데, 그 자신은 무공이 없었다. 그래서 협객을 사귄다. 그러나 사람을 잘못만나서, 그 협객은 그를 위해서 복수를 해주지 않았을 뿐아니라, 죄를 범하여 유현까지.. 2013. 4. 13.
유언(劉焉): 동한말 난세의 원흉 글: 섭지추(葉之秋) 동한말기의 난세를 얘기하자면, 일반 사람들은 항상 동탁(董卓)을 떠올린다. 확실히 동탁이 입경하여 한나라황제를 폐위시키고 새로 세운 것은 동한이 쇠망으로 가는 중요한 사건이다. 천하의 제후들은 동탁을 통하여 한 가지 이치를 확실히 깨달았다. 동탁처럼 아무.. 2012. 8. 15.
보이보(薄一波)가 남긴 부정적 유산 글: 여이위(余以爲) 어떤 조직이건 성문(成文), 불문(不文)의 원칙이 있다. 중국공산당의 성문조항은 무시해도 된다. 대부분은 고의로 애매하게 표현하였기때문에 아무렇게나 해석할 수 있기때문이다. 진정 역할을 하는 것은 불문의 원칙이다. 잠규칙(潛規則)이라 부를 수도 있다. 그중의 .. 2012. 3. 27.
광무제의 두 황후: 음려화(陰麗華)와 곽성통(郭聖通) 글: 사문(思文) 서한말기 하남 신야(新野)에 한 거부가 있는데, 성이 음(陰)씨이다. 전해지는 바로는 춘추전국시대의 명상 관중(管仲)의 후예라고 한다. 관중의 칠대손인 관수(管修)가 제나라에서 초나라로 가서, 음대부(陰大夫)에 봉해진다. 이때부터 '음'을 성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진한.. 2012. 2. 4.
유수(劉秀): 그는 어떻게 농민에서 황제로 되었는가? 글: 정계진(丁啓陣) 한나라때 유씨황족에 기인(奇人)이 나타난다. 만일 왕망의 찬탈이 없고, 난세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한고조의 9대손 유수는 일생동안 아마도 약간의 학문을 지니고, 열심히 일하는 농민으로 살았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풍속최미(風俗最美)”, “유학최성(儒學.. 2011. 5. 9.
광무제 유수(劉秀): 중국역사상 전투를 가장 많이 치른 황제 글: 유계흥(劉繼興) 동한(東漢)의 개국황제인 광무제 유수는 강인한 의지와 인간적 매력으로 천하의 군웅을 끌어모아 천하를 차지했다. 그는 일개 평민에서 역사에 빛나는 명군으로 성장한다. 그는 전투에서 아주 용감했는데, 이는 역대제왕중에서 드물게 보는 경우이다. 곤양전투에서는 유수가 솔선.. 2010. 2. 14.
주자(朱子)와 두부(豆腐) 글: 정계진(丁啓陣) 이런 속담이 있다. "사람은 성인이 아닌데, 누가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는가(人非聖賢, 孰能無過)" 필자의 생각으로 이 속담은 문제가 있다. 문제는 바로 성현이라면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고 인정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성현도 잘못을 저지른다. 송나라때의 거유이며 이학가.. 2008. 9. 17.
유수(劉秀): 부드러움(柔)으로 천하를 다스리다 글: 허화강(許禾鋼) 중흥황제 유수는 키가 크지 않았다. 겨우 7척3촌이었다. 그가 살았던 당시에 8척이상이어야 장대한 남자로 보는 기준에 따르면, 그는 '경량급'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경량급인 그는 중량급의 인간적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중국역사상, 그는 논쟁의 여지가 없는 치국평천하의 고수.. 2008. 9. 4.
역사와 전설의 사이에서 글: 소삼(蘇三) 중국은 오래된 나라이고, 중국에는 많은 역사와 전설이 있다. 어떤 때에는 엄숙한 역사도 전설처럼 허망하고, 어떤 전설은 진실한 역사를 담고 있기도 하다. 역사중의 진상과 허망을 가려내는 것은 아주 어려우면서도 재미있는 일이다. 나는 어려서 문화적인 분위기가 아주 농후한 하남.. 2007. 3.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