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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유방)

유방(劉邦)과 유비(劉備)

by 중은우시 2017. 12. 27.

글: 이치아(李治亞)


중국고대에 유씨성의 황제는 아주 많다. 유방, 유수, 유비, 유유, 유철, 유계, 유지원 등등. 그중 지명도가 가장 높은 개국황제는 아마도 유방과 유비 두 사람일 것이다. 이 두 사람은 밑바닥에서 시작해서 황제에 올랐다. 유비는 사람됨에서 그의 선조인 유방과 매우 비슷하다. 그러나 왜 유비는 중국을 통일하지 못했을까? 상대방인 조조와 손권이 너무 강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고, 유비 자신에게 약점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유방과 비교해보자면 유비의 부족한 점은 더욱 두드러진다.


첫째, 유방은 친구의 범위가 매우 넓었다. 그러나 유비의 친구는 매우 적었다. 태사공 사마천은 이렇게 썼다: "나는 유방의 고향인 패현 풍읍을 가보았다. 거기서 소하, 조참, 번쾌, 하후영등의 옛집을 둘러보고는 깜짝 놀랐다. 그때 그들은 대부분 그저 백정이거나 장삿꾼이었다. 어찌 그들이 나중에 유방을 따라서 하나하나 작위를 받고 재상이 되어 역사에 이름을 남길 줄 알았으랴. 그렇지만 유비는 일반적으로 하찮은 인물들이나 뜻이 크지 않은 인물들을 무시했다. 유비가 허사(許), 유표(劉表)와 천하지사(天下之士)에 대하여 논할 때, 진등(陳登)에 대하여 얘기하면서 허사는 별 게 아니라는 듯이 말한다: "진원룡(진등)은 호해지사(湖海之士)이다. 교만한 기운이 지금까지도 여전하다." 유비는 비록 진등에 대하여 잘 알고 있지만 즉시 허사의 말에 반박하지 않고 방향을 바꾸어 유표에게 묻는다: "당신은 허사의 말에 대하여 맞다고 생각하십니까?" 유표가 말한다: "만일 틀리다고 하자면, 허군은 좋은 사람이고 함부로 다른 사람에 대하여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니 곤란하고. 만일 맞는다고 하면 진원룡은 천하에 이름이 있는 사람이니 곤란하다." 유비는 다시 허사에게 묻는다: "당신은 진원룡이 교만하다고 하는데 무슨 근거가 있는 것인가?" 허사가 말한다: "나는 세상이 어지러워서 하비를 지나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진원룡을 보았습니다. 당시 그는 손님에게 주인의 예를 전혀 갖춰주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나를 본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혼자서 높은 평상에 앉아 있었고, 손님은 낮은 평상에 앉아 있게 했습니다." 그러자 유비가 바로 말을 이어 말했다: "당신은 국가의 선비이다. 현재는 천하가 크게 어지럽고 제왕도 이리저리 떠돌아 다닌다. 원룡은 당신이 국가를 걱정하고 집안일은 다음으로 생각하고 한나라 황실을 다시 세우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런데, 당신은 진원룡에게 집과 전답을 달라고 요구하고 말하는 것에 무슨 새로운 것도 없었다. 그건 진원룡이 아주 싫어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진원룡이 당신과 얘기를 나눈단 말인가? 만일 당시에 나였다면, 나는 분명히 백척높이의 건물에 높이 누워있고, 당신은 땅바닥에 누워있게 했을 것이다. 어디 큰 평상과 낮은 평상의 차이 정도만 둘 것인가?" 유표가 그 말을 듣고는 크게 웃었다. 유비는 이렇게 말한다: "진원룡과 같은 문무를 겸비하고 담략과 뜻이 남다른 준걸은 그저 고대에나 찾을 수 있지 지금 세상에는 아마도 찾기 힘들 것이다." 이를 보면 유비는 뼛속부터 허사와 같은 자들에게 반감이 있었다.


둘째, 유방은 현명한 자를 잘 골라쓰고 재주있는 인물들을 골고루 썼다. 이들은 그가 천하를 얻는데 큰 공헌을 세운다. 한고조 유방은 일찌기 여러 신하들에게 이렇게 물은 바 있다: "내가 왜 천하를 얻었는가?" 신하들이 어떻게 대답해야할지를 몰라서 가만히 있었다. 유방이 다시 말한다: "나의 오늘날이 있게 된 것은 세 사람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장막에서 계책을 세워 천리밖의 승부를 결정짓는 것은 내가 장량만 못하고, 국가를 지키고 백성을 다독이며 군량을 계속 공급하는데는 내가 소하만 못하며, 백만의 군사를 데리고 싸우면 이기고, 공격하면 점령하는데는 내가 한신만 못하다. 세 명은 모두 인걸이다. 내가 그들을 쓸 수 있었다. 그래서 내가 천하를 얻은 것이다." 당연히 유방의 수하에는 문관 무신 장수 모신들이 수두룩했다. 그러나 유비의 수하를 쓸 때 자기와 친한 사람을 썼다. 건국하고서도 마찬가지였다. 그중 뛰어난 인물은 단지 관우, 장비, 조운 정도였다. 모신이래야 제갈량 한 사람 뿐이었다.


셋째, 유방은 냉정했다. 그러나 유비는 기분에 따라 일처리를 했다. 유방은 수하공신들에 대하여도 무정했다. 죽일 사람을 죽였다. 그러나 유비는 관우가 피살되자 계속 비통해 한다. 한신, 팽월, 영포와 같은 인물들은 유방을 따라 남북을 다니며 공을 세웠다. 그러나, 천하가 안정되고 나자, 죽일 사람은 죽였다. 예를 들어, 한신은 초패왕 항우를 오강에서 자결하도록 만들었지만 마지막에는 미앙궁에서 피살당한다. 비록 죽인 것은 여후였지만, 유방의 묵인이 없었다면 어찌 성공할 수 있었겠는가? 유비는 손권이 관우를 죽이자 계속 마음 속에 원한을 품고 결국 전국의 모든 힘을 동원하여 동오를 공격한다. 그리고 조운 등의 정확한 건의도 받아들이지 않고 결국 이릉에서 대패하고 만다.


넷째, 유방은 의지력이 굳건했다. 유비는 마지막에 의지력이 무너져 버린다. 유방은 대한왕조를 건립하고, 마지막에는 흉노를 공격한다. 비록 실패하여 칠일밤낮을 갇혀 있었고, 주력부대와 완전히 연락이 단절되었지만, 나중에 진평의 계모를 써서 모돈선우의 알지(모돈선우의 처)에게 뇌물을 주어 겨우 도망친다. 유비는 이릉지전에서 참혹하게 패배한 후 다시 일어서지 못하고, 병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