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개116 중국으로 돌아온 모리슨문서 글: 이양(李楊) 1894년 2월 11일, 모리슨(George E. Morrison, 중국명 莫理徇, 1862-1920)은 모친이 부쳐준 40파운드를 가슴에 품고, 과피모(瓜皮帽)와 가짜 변발을 하고 상해에서 출발하여 장강을 거슬러 오라갔다. 중국내 첫번째 여행을 시작한 것이다. 이날 그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한 외국인이.. 2013. 11. 10. 청사편찬전전(淸史編纂前傳) 글: 이양(李揚) 1914년 8월, 원세개의 수행비서 오구(吳璆)는 원세개의 친필서신을 가지고 청도(靑島)로 간다. 오구가 이번에 청도에 간 목적은 무창의거후 청도에 은거하고 있던 전임 청 동삼성총독 조이손(趙爾巽)에게 청사(淸史) 편찬을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시간은 몇 달 전으로 거.. 2013. 11. 10. 보과과는 왜 청말난세에 태어나고 싶어했을까? 글: 풍청양(風靑揚) 언젠가 인터뷰에서 보과과는 매체에서 "당신이 가장 살고싶지 않은 왕조는 언제인가?"라는 물음에, 이렇게 대답한 적이 있다: "가장 살고 싶지 않은 것은 왕조이전의 그 시대이다. 실제로 많은 왕조에 나는 모두 가보고 싶다. 특히 청말. 비록 국가는 혼란스러웠지만, .. 2013. 11. 10. 송교인: 중국근대헌정의 최후희망 글: 장천범(張千帆) 나는 개인적으로 미신이 있다. 항상 13이라는 숫자는 불길하다고 믿는다. 백년전의 그 13(1913년)에 과연 불길한 일이 일어났다. 바로 3월 20일 저녁, 상해 기차역에서, 한 발의 총탄이 청넌정치가의 생명을 앗아간 것이다. 죽은 사람은 나이 겨우 32살이었다. 이것은 보통.. 2013. 11. 10. 원세개는 왜 융유태후를 첩으로 삼으려 했는가? 글: 중천비홍(中天飛鴻) 1911년 10월 10일, 국민혁명군이 무창(武昌)의거를 일으킨다. 20일후, 원세개는 청나라정부 내각총리대신이 된다. 다음 해인 1월 25일, 원세개 및 각 북양장령은 전보를 보내어 공화(共和)를 선택한다. 남방혁명정부로부터 대총통의 자리를 보장받은 후, 원세개는 청황.. 2013. 11. 10. 장학량(張學良)에 대한 재판경위 글: 주운(周雲) 만일 1935년 이전에 장학량이 재판을 받았다고 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유언비어일 것이다. 당시의 장학량은 비록 9.18사변이후 권세가 약간 쇠락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중국정계의 중량급인물로, 손아귀에 중병을 쥐고 있고, 영수(장개석)과는 결의형제이다. 그는 말그대로 .. 2013. 10. 8. 이전 1 ··· 7 8 9 10 11 12 13 ··· 2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