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함12 명십삼릉의 정릉(定陵): 가장 참혹한 고고학적 비극 글: 이상국(理想國) 지나간 세월에서 고고학은 일찌기 영웅의 사업이었다. 그리고 일찌기 적막한 사업이었다. 대다수의 고고학자들은 휘황한 인생경력을 누릴 수 없다. 그래서 하나의 중대한 고고학적 발견은 그들에게 있어서, 상상할 수 없는 흡인력이 있다. 이런 감정은 많은 기적을 만.. 2018. 9. 27. 문혁때 자살한 여류명인 글: 노리람사(老李覽史) 1. 상관운주(上官雲珠, 1920. 3. 2. - 1968. 11. 23.) 강소 강음 장경진 사람. 여성, 이름은 균락(均犖). 자는 초군(超群). 아명은 아제(亞弟) 위아군(韋亞君)이라고도 함. 중국의 저명한 영화예술가. 중국영화협회 회원, 상해영화협회 상무이사, 상해시 정협 제1기, 제2기 .. 2014. 10. 6. 호유용은 일본과 결탁하여 모반하려 했는가? 글: 정만군(程萬軍) 대명의 개국황제 주원장에 의하여 <간신록>에 들어가게 된 호유용은 주원장이 제거한 중국의 마지막 승상이다. 호유용은 주원장이 전우를 도살하는데, '한마공로(汗馬功勞)'를 세운다. 그러나, 결국 그도 '토사구팽'의 운명을 벗어나지 못했다. 권력야수 주원장은 .. 2013. 11. 23. 모택동은 위구르혈통인가? 글: 양기창(楊其昌) 서역 Vighur는 고대 중국인들이 "회호(回胡)"(이 두 글자는 고대나 오늘날 남중국방언에서는 모두 Wei Wu-웨이우-라고 읽는다)라고 불렀다. 이 글자의 근원은 몽골어계의 "실위(室韋)", "호랍이(呼拉爾)"에서 유래하는데, 그 뜻은 '연맹(聯盟)'이다. '회호'는 고대 중국인들이 .. 2012. 7. 8. 요문원(姚文元): 잉크병안에서 기어올라온 정계고위층 글: 하국승(夏國勝) 요문원의 일생은 붓으로 사람을 공격하는 것이었고, 해를 입은 사람들이 아주 많다. 그는 사람을 해치더라도 잘 해쳤고, 명리(名利)를 다 거둔 것은 3번이었다: 첫번째는 호풍을 비판하여 두각을 드러냈고, 둘째는 <영이비고(靈以備考)>로 새로운 스타가 되.. 2012. 1. 11. 정릉(定陵): 차마 돌아볼 수 없는 고고발굴의 비애 글: 악남(岳南) 정릉(定陵)의 발굴은 1956년부터 시작한다. 북경시부시장 오함(吳晗)은 주은래 총리에 보고를 해서, 명십삼릉을 발굴하겠다고 하였다. 오함은 유명한 명나라역사학자이다. 문혁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모두 이 인물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가 쓴 <<해서파관(海瑞罷.. 2009. 12. 24.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