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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정제61

주원장은 왜 원순제를 도망치도록 놔두었는가? 글: 유려평(劉黎平) 원순제(元順帝)가 도망칠 수 있었던 것은 하나의 수수께끼였다. 일찌기 1368년 칠월, 서달(徐達)의 북벌군은 하북 통주(通州)에 도착한다. 원왕조의 도성에 하루이틀이면 도달할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러나, 기괴하게도, 북벌군사통령 서달은 통주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 2013. 8. 15.
청승명제(淸承明制): 진실한 거짓말 작자: 미상 1644년, 이자성이 북경성을 함락시키고, 숭정제는 자살순국하며 명왕조는 멸망한다. 그후, 오삼계는 산해관을 만청에 바치고, 만청은 중원으로 들어와서 주인이 된다.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흥한다. 명왕조 중말기때 경제, 과기, 문화, 사상과 대외교류의 발전에 따라, 중국.. 2013. 8. 4.
오삼계(吳三桂)는 어떤 인물인가? 글: 유지군(劉志軍) 오삼계를 얘기하자면, 사람들은 당연히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는 반복무상(反復無常)하게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한 인물이다. 먼저 명나라에 배신하고 틈왕 이자성에게 투항했다가, 나중에 다시 창끝을 돌려 청나라에 투항하여, 청나라병사를 산해관으로 끌어들여 .. 2013. 6. 10.
이자성 생사의 수수께끼: 만청과 남명은 모두 그의 수급을 얻지 못하다 글: 감홍류(闞紅柳) 이자성이 석문협산으로 도망가 선승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호남성의 석문현은 풍양이라고 불렀고, 풍주라고보 불리웠다. 청나라 건륭년간의 <풍주지림>에 수록된 풍주지주의 <이자성전>에 따르면, 이자성은 전투에서 패배하고, 홀로 석.. 2013. 4. 27.
봉건시대의 연호(年號) 이야기 글: 조기잡담(兆基雜談) 연호(年號)는 해를 표기하는 것이고, 그것은 봉건사회시대의 표지이다. 중국역사상 수백개의 연호가 있고, 통계에 따르면, 한무제가 처음 연호를 만들었을 때부터, 청나라가 멸망할 때까지, 2천여년동안, 정통왕조만 317개의 연호가 있었다. 연호를 처음 만든 것은 .. 2012. 9. 18.
숭정제가 자결한 장소는 어디인가? 작자: 미상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崇禎帝)가 경산(景山)에서 목을 매어 자결했고, 그 유적지는 지금도 남아 있으며, 석비(石碑)까지 세워져 있다. 그래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숭정제가 그 곳에서 목을 매어 자결했다는 것을 상식으로 여긴다. 그러나, 사실상, 이 주장은 잘못된 것이.. 2012. 3.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