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종 35

이비웅(李飛雄)사건: 북송 최대의 사기극

글: 조대반(趙大胖) 1 북송 태평흥국3년(978년) 봄의 어느 저녁, 봉상(鳳翔) 주질(盩厔, 지금의 섬서성 周至縣, 중국발음으로는 盩厔, 周至가 같다)의 관청 마굿간에 관마(官馬)를 탄 남자가 출현한다. 그는 스스로 개봉(開封, 북송의 도성)에서 온 황제의 사자(使者)라고 하면서 변방으로 가서 공무를 집행해야 하니, 말을 몇 필 내달라고 요구한다. 마굿간을 지키는 병사들의 우두머리는 의심이 들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그래서 그에게 문건을 내놓거나 혹은 신분을 증명할 물건을 내놓을 것을 요구한다. 이 사자는 당황하지도 않고 서두르지도 않으면서 품 속에서 조정의 고관들이 사용하는 말끈(馬纓)을 꺼내어 그에게 보여준다.(고대의 말끈은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라, 군수물자였다. 일반백성은 말을 키울 수는 있..

송진종(宋眞宗) 조항(趙恒): 송태종의 셋째아들인 그는 어떻게 후계자가 되었는가?

글: 노황설사(老黃說史) 송태종 조광의(趙光義)에게는 9명의 아들이 있었다. 그는 왜 황장자에게 황위를 물려주지 않고, 황삼자에게 넘겨주었을까? 황삼자 조항은 조광의의 장자도 아니고, 황후소생도 아닌데 어떻게 하여 황위를 물려받을 수 있었을까? 송태조 개보9년(976년) 십월 십구일 밤, 송태조 조광윤(趙匡胤)은 그의 동생 조광의를 불러 술을 마시고, 함께 궁안에서 잠든다. 다음 날 새벽(양력 11월 14일), 조광윤은 만세전에서 붕어하니 향년 50세이다. 송태조가 붕어할 때, 효장황후는 급히 환관 왕계은(王繼恩)으로 하여금 황자 조덕방(趙德芳)을 입궁시켜 후사를 처리하게 한다. 그러나 왕계은은 곧바로 남부로 가서 조광의에게 알리고, 조광의가 급히 입궁하여 등극하니, 그가 송태종이다. 조광윤의 죽음과 조..

북송황제의 장례과정

글: 시습사사(時拾史事) 고대에 황제가 붕어하면, 왕왕 호화스럽고 융중한 장례식을 치른다. 예를 들어, 진시황, 한무제등등이 모두 그러했다. 그렇다면 송나라의 황제는 예외였을까" 당연히, 아니었다. 관가(官家, 황제)는 통치집단의 1인자이다. 중국에서 가장 권력이 있는 사람이다. 사후에 거창한 장례식도 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황제의 지위를 체현할 수 있겠는가? 여기에서 북송황제의 장례과장을 돌아보고, 도대체 어떤 절차를 거쳤고, 얼마나 복잡했는지 알아보기로 하자. 유조(遺詔)를 선독(宣讀)하다 정상적이라면 황제가 붕어한 후 반드시 즉시 신황제를 확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국을 주재할 사람이 없게 된다. 구가기구도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럼 도대체 누가 황제에 올라야 하는가? 바로 이때 유조의..

오대십국시대의 "촉(蜀)"은 왜 단명했을까?

글: 가등영(賈登榮) 당나라말기, 천하는 대란에 빠지고, 사방에서 전쟁이 벌어지며, 여러 영웅들이 나와서 권력을 차지하려고 싸웠다. 일시에 절도사, 자사등은 속속 스스로의 병력을 거느리고, 독립하여 정권을 세운다. 중국대지에 여러 소국이 나타나게 된다. 이 시기에 사천에 있던 왕..

송고종 조구(趙構)가 즉위할 때 다른 종실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글: 만풍모우(晩風暮雨) 정강2년(1127년), 송휘종,송흠종 두 황제가 금나라에 포로로 끌려가며, 북송이 멸망한다. 역사에서 "정강지변"이라고 부르는 사건이다. 송휘종의 적자중에서 유일하게 북으로 끌려가지 않은 강왕(康王) 조구가 황위에 오르는 것은 민심에 맞고, 명정언순(名正言順)..

진박(陳搏): 화산파의 조사로 알려진 그가 진교병변(陳橋兵變)의 기획자인가?

글: 취역사(趣歷史) (진박은 무협지에서 화산파의 조사로 알려져 있다) 사료에서 아주 재미있는 기록을 보았다. <소씨견문록>에 따르면, 진박은 일찌기 흰색나귀(白騾)를 타고 수백명의 떠돌이소년을 데리고 변량성(汴梁城)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도중에 돌연 놀라운 소식이 전해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