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촉,오 삼국의 승상제도는 어떻게 달랐을까?
글: 장공성조(長空星照) 삼국이 정립된 후, 가장 먼저 건국하여 황제를 칭한 위(魏)는 승상을 두지 않는다. 그후에 건립된 촉(蜀)과 오(吳)는 처음부터 승상을 둔다. 더욱 재미있는 점은 오나라는 처음부터 끝까지 승상을 두었지만, 촉한은 제갈량이후에 더 이상 승상을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차이가 나타나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위나라. 건안13년 조조가 승상에 오른다. 건안18년에 이르러 조조는 위공(魏公)이 되고, 기주(冀州)내의 10군은 그의 봉지가 된다. 두달 후, 조조는 위나라의 종묘사직을 건립하고, 십일월에 이르러, 상서(尙書), 시중(侍中)과 육경(六卿)을 설치한다. 원래 건안연간에, 조정백관은 모두 조조의 말을 들었고, 승상이 되었으며, 승상부를 두며, 모든 정령은 승상부에서 나왔다. 조조..
2021. 10. 19.
이릉지전(夷陵之戰)의 피해는 어느 정도였을까?
글: 기점문사(起點文史) 이릉지전은 동한말기 3대전투중 하나이고, 또한 최후의 대형전투이다. 이 전투이전에 촉한과 동오의 합작관계는 육손이 관우를 기습함으로써 끝났다. 쌍방은 전우에서 적이 된 것이다. 조위는 그래서 잠시 숨돌릴 기회를 갖느다. 촉한은 이 전투에서 일패도지했고, 명장과 정예병사들의 손실이 참혹했다. 이릉지전을 시작하기 전에, 동오는 위에서 아래까지 촉한에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어쨌든 육손이 한 행위는 군자의 행동은 아니었다. 동맹국이 적국과 싸우는 틈을 타서, 힘을 보태지 않는 것 정도라면 몰라도, 오히려 등뒤에서 칼질을 했다. 그리하여 관우, 관흥 부자는 피살되고, 유비, 유봉부자는 멀어졌으며, 맹달이 촉한에 투항하고, 더더욱 간접적으로 장비의 죽음을 가져온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2021. 2. 27.
촉(蜀)이 멸망한 후 관우의 후손은 모두 죽임을 당하고, 장비의 후손은 살아남았던 이유는...?
글: 원재예(袁載譽) 에서 주유(周瑜)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유비는 효웅의 모습이고, 관우, 장비와 같은 곰,호랑이같은 장수를 가지고 있어, 절대로 오랫동안 남의 밑에 있지 않을 것이다." 관우와 장비는 유비의 결의형제이다. 형님인 유비를 도와 강산을 취할 때, 관우는 적인 오나라군에 의해 살해당한다. 유비가 죽은 후, 관우의 처와 자식은 모조리 원수의 아들인 방회(龐會)에게 살해당하고, 멸문당한다. 그러나 장비는 건안24년에 죽었고, 둘째형인 관우가 죽은후 그리 오래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그의 후손은 관우처럼 참혹하게 죽임을 당하지 않았다. 같은 지위, 같은 처지인데 왜 그의 가족들은 무사할 수 있었을까? 관우는 용맹하고 싸움을 잘했던 인물이다. 큰형 유비도 그를 중용했다. 촉의 대업을 위..
2020. 6.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