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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권100

방통(龐統)은 동오(東吳)의 간첩이었을까? 글: 섭시문사판(攝詩文史版) 음모론자들이 보기에 방통이 유비에 귀순한 것은 동오의 사명을 띈 것이라고 한다. 맥락은 대체로 이러하다: "공조(功曹)는 중요한 직무이다. 주유의 공조인 방통을 동오사람들은 왜 스스로 쓰지 않고, 노숙으로 하여금 유비에게 추천하게 했을까? 서천(西川, 사천)을 취하는 것은 제갈량이 제안한 것이다. 그러나, 실행시에 유비는 망설였고, 제갈량도 아무런 입장을 표시하지 않았다. 그런데, 방통은 계속하여 유비에게 자신을 데리고 사천에 들어가자고 권유했을까? 익주로 들어간 후, 유비는 왜 방통의 건의를 거의 듣지 않았을까? 방통은 적진으로 돌진하는 무장도 아닌데, 왜 군진의 앞에 섰다가 죽게 되었을까?" 그렇다면, 방통이 유비에게 귀순한 것은 정말 동오인들의 계획인 것일까? 혹은 방통.. 2021. 4. 20.
이릉지전(夷陵之戰)의 피해는 어느 정도였을까? 글: 기점문사(起點文史) 이릉지전은 동한말기 3대전투중 하나이고, 또한 최후의 대형전투이다. 이 전투이전에 촉한과 동오의 합작관계는 육손이 관우를 기습함으로써 끝났다. 쌍방은 전우에서 적이 된 것이다. 조위는 그래서 잠시 숨돌릴 기회를 갖느다. 촉한은 이 전투에서 일패도지했고, 명장과 정예병사들의 손실이 참혹했다. 이릉지전을 시작하기 전에, 동오는 위에서 아래까지 촉한에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어쨌든 육손이 한 행위는 군자의 행동은 아니었다. 동맹국이 적국과 싸우는 틈을 타서, 힘을 보태지 않는 것 정도라면 몰라도, 오히려 등뒤에서 칼질을 했다. 그리하여 관우, 관흥 부자는 피살되고, 유비, 유봉부자는 멀어졌으며, 맹달이 촉한에 투항하고, 더더욱 간접적으로 장비의 죽음을 가져온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2021. 2. 27.
주유(周瑜)는 적벽대전때 동오(東吳)의 대도독(大都督)이 아니었다? 글: 장공성조(長空星照) 주유는 적벽대전을 주도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그래서 후인들은 '삼국주랑적벽(三國朱郞赤壁)'이라는 말을 하게 된다. 다만 손권은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 양로(兩路)의 부대를 파견했고, 각각 주유와 정보(程普)이고, 좌우독(左右督)으로 임명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적벽대전은 주유가 독립적으로 지휘한 것이 아니고, 주유는 대도독도 아니었다고 말한다. 사실의 진상은 그렇다면 어떠했을까? 대도독이라는 관직이 정식으로 나타난 것은 황무원년(黃武元年)이다. 유비가 촉한대군을 이끌고 오나라를 정벌하러 오자, 손권(孫權)이 육손(陸遜)을 대도독으로 임명하여 유비를 막게 한 것이다. 그가 지휘하는 수하의 장수들은 경력이 더 많고, 공로도 큰 사람들이었다. 예를 들어, 주연(朱然), 반장(潘璋)등이.. 2020. 10. 22.
유비는 왜 항상 다른 제후들과의 합작을 끝까지 유지하지 않았을까? 글: 장공성조(長空星照) 유비는 평원상(平原相)이 된 후, 자립의 기본적인 조건을 갖추게 된다. 그러나, 실력과 당시 천하형세로 인하여, 제후들은 부득이 다른 제후와의 합작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통해 갈등이 첨예한 적을 상대하고, 다른 제후들에게 병합되지 않을 수 있었다. 제후들이 유비와 합작한 경우는 적지 않다. 그러나 유비는 시종 다른 제후들과의 합작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했다.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일까? 유비가 평원상이 된 것은 공손찬때문이다. 공손찬이 원소와 싸우기 때문에, 유비와 청주자사 전해(田楷)는 제(齊)의 딸에 주둔했다. 조조는 서주를 공격했고, 서주자사 도겸이 도와달라고 한다. 전해와 유비는 함께 가서 그를 도와준다. 이때 유비에게는 1천여명의 병사가 있었다. 그리고 유주의 일부 소.. 2020. 10. 20.
주유(周瑜): 그를 폄훼한 것은 나관중이 아니다. 글: 채휘(蔡輝) "주유는 분노가 가슴에 가득 찼고, 말에서 떨어진다. 좌우는 급히 그를 구해서 배로 돌아온다. 그때 병사가 와서 전하기를 현덕, 공명이 산꼭대기에서 술을 마시면서 음악을 즐기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주유는) 장탄식을 하고, 좌우에게 붓과 종이를 가져오게 하여 오후(吳侯)에게 글을 쓴다. 그리고 여러 장수를 불러서 말하기를, '내가 진충보국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하늘이 나에게 준 명이 다했다. 그대들은 오후를 잘 모셔서 대업을 함께 이루도록 하라!" 말을 마치고 혼절한다. 그리고 서서히 깨어나더니 하늘을 우러러 장탄식을 하며 말한다: "어찌 나 주유를 낳고, 다시 제갈량을 낳으셨습니까' 몇번 소리를 지르고는 사망한다. 나이 36세이다." 제36회 에 이 묘사는 너무나 생생하다.. 2020. 9. 27.
삼국시대에 동오(東吳)에서 소년영웅이 많이 배출된 이유는...? 글: 취간역사(趣看歷史) 난세에 호걸이 많이 나온다. 삼국시대도 마찬가지이다. 이 시기에는 명장이 많이 배출되었을 뿐아니라, 나이가 젊을 때부터 군대에 들어가서 지휘를 한 소년영웅들도 많이 배출된다. 그런데, 위, 오, 촉 삼국중에서 어린 나이에 명성을 얻은 명상이 가장 많은 나라는 조위도 아니고, 촉한도 아니며, 동오였다. '강동다영호(江東多英豪)'라는 말이 전혀 지나치지 않다. 그렇다면 왜 소년영웅이 강동에서 많이 배출되었을까? 거기에는 대체로 두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는 '모범'의 역량이다. 강동의 기업은 손책(孫策)이 혼자 힘으로 일궈낸 것이다. 195년 손책은 원술(袁術)에게서 벗어나 장강을 건너 강동을 평정하는 전투를 시작한다. 몇년만에 일거에 강동육군(江東六郡)을 평정한다. 그러나 200년.. 2020. 9.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