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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66

중국은 세계의 중심이 아니다 글: 주한경(周漢卿) 누군가 블로그글에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 러빠이건 우빠이건 왜 모두 중화빠일까? 내가 이 블로거의 질문에 답을 하겠다. 그 답은 바로, 중국은 세계의 중심이 아니고, 중국인은 더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러시아를 지지하거나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것은 구미사회의 두 가지 정치역량이다. 중국인은 구미사회의 주변인이고, 그저 피동적으로 받아들여야할 뿐이다. 근대이래, 국제질서의 중심은 계속하여 유럽과 서방이었다. 세계의 다른 지역은 그저 피동적으로 서방질서를 받아들여야 했다. 동아시아지역이 특히 대표적이다. 1848년이후, 민족국가는 유럽에서 주류가 되고, 세계의 다른 지방으로 확산하게 되며, 동아시아지역까지 확산된다. 일본은 유럽을 모방하여, 민족국가를 건립했다. 독프전쟁이후, 독일민족이 .. 2023. 10. 5.
근대중국이 쇠약했던 근본원인 글: 시화(施化) 2023년 8월에 발표된 중국경제의 각종 통계지표를 보면, 10여억의 중국인들이 자신만만해 했던 고속경제성장은 돌연 감속하여 저속차선으로 접어들었는데, 원인은 불명하고 전도는 불투명하다. 비록 누군가 나타나서 계속하여 원인을 설명해주고 있지만, 예를 들어 전쟁, 팬데믹, 국제금융위기등등, 들어보아도 믿을만해 보이지 않는다. 모두 알고 있다시피, 중국경제수치통계에는 지금까지 계속하여 허수가 있었다. 좋은 것만 발표하고 나쁜 것은 발표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재 돌연 자세를 바꾸어 더 이상 감추지 않고 있다; 혹은, 수치를 고쳐보아도 사실을 더 이상 감출 수 없게 되어 부득이 남부끄러운 수치를 그냥 발표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수치는 아예 발표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청년실업률등. .. 2023. 9. 6.
미중관계의 기원과 영향 (2) 글: 모해건(茅海建) 3. 유미학동(留美學童)과 배화법안(排華法案) 1844년 미중간에 이 체결될 때, 중국의 인구는 이미 4억에 이르렀고, 해외상업활동과 이민이 일찌감치 시작되었다. 그러나 주로 동남아였다. 미국상선은 서해안에서 중국으로 오는데 항해시간이 50여일이 걸렸다. 두 나라국민은 서로를 잘 알지 못했다. 십년후인 1854년, 용굉(容閎)이 미국예일대학을 졸업하고 학사학위(B.A.)를 받는다. 용굉은 마카오와 홍콩에서 서양식교육을 받았고, 미국에서 7년간 공부했다. 최초로 미국대학을 졸업한 이 중국인이 귀국했을 때, 그의 미국에서 배운 지식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하여 내심 고독을 느낀다. 그는 여러가지 성공적이지 못한 직업을 전전한 후에, 청나라를 도와 미국에서 물품을 수입.. 2023. 5. 2.
류통팡(劉同舫):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몇 가지 의문 [작년(2022년) 12월 21일, 저장대학(浙江大學) 마르크스주의학원 원장 류통팡(劉同舫) 교수는 학원의 교수 학생들에게 "마르크스주의는 어떤 기치인가?"라는 제목의 학술보고를 하였다. 류통팡 교수는 교육부 대학사상정치이론과목 교학지도위원회 위원이며, 저장성 대학마르크스주의이론교육연구회 부회장, 저장성 중국특색사회주의이론체계연구기지 책임자 겸 수석전문가이다. 아래는 류통팡 교수가 보고한 내용의 적요(摘要)이다] 나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하여 심신(深信)에서 회의(懷疑)로 바뀌었는데, 그것은 마르크스주의이론의 연구로 인한 것이 아니었다. 원래 깊이 믿은 것(深信)은 중국의 또래들과 마찬가지로 '양보일간(兩報一刊, , 와 를 가리킴)'에서 읽은 것이다. 해외로 나간 후 처음 읽은 막스 베버의 을 읽고서 깜짝 .. 2023. 4. 5.
중국, 진정한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글: 인멸지성(湮滅之城) 제도의 다툼은 유래가 오래 되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승패가 결정난 것이 아니란 말인가? 군자간의 싸움은 문(文)으로 싸우는 것이건, 무(武)로 싸우는 것이건 "무덕(武德)"을 중시하고, '규칙'을 지킨다. 이긴 사람도 광명정대하게 이기고, 지는 사람도 기꺼이 승복한다. 주변에서 방관하는 사람들도 모두 좋다고 외치고, 아름다운 이야기로 전해지게 된다. 그러나, 깡패 무뢰배는 전혀 다르다. 그들은 자신의 패배를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아Q와 같이, 그들은 싸우는 과정에서 하한선이 없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不擇手段), 일체의 댓가도 마다하지 않는다(不惜代價)". 음험한 수법, 자신이 손해보는 수법도 기꺼이 쓴다.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그리고 입으로는 계속하여 소리친다. 모.. 2023. 3. 27.
"아편전쟁": 중국의 창세신화 글: 고천활해(高天闊海) 이 제목만 보면, 어떤 네티즌들은 '제목으로 어그로'를 끌려는 것으로 여길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렇지 않다. 영국의 역사학자 Julia Lovell(1975-)의 The Opium War: Drugs, Dreams and the Making of China(아편전쟁: 마약, 꿈, 그리고 중국만들기)라는 책에서 이렇게 지적한다: 아편전쟁은 중국의 '창세신화(founding myth)'중 하나라고. 아편전쟁은 중국인들에게 의미가 아주 크다. 중국의 불쌍한 역사교육 속에서, 정부는 이데올로기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아편전쟁을 이러저리 뜯어고쳤다. 그렇게 하여 민족원한(서방국가에 대한)을 선동하고, 중공통치를 유지하려는 목적을 이루고자 한다. 중공이 역사허무주의로 고쳐쓴 중국역사속에서 .. 2023. 3. 13.
"황러시아계획": 러시아의 중국침략야망 글: 종극신앙(終極信仰) 황러시아계획은 후세인들이 날조한 인터넷글이 아니라, 각종 기록이 남아 있다. 정식학술간행물에도 기재되어 있고( 朱哲芳 저), 중국의 지방현지에도 기록되어 있으며(아이훈현지(璦琿縣誌)제8권), 대학학보에도 있다(길림사대학고1979년제4기 등등). 16세기부터, 제정러시아는 동쪽으로 확장을 시작하며, 두 차례의 야크샤전투(알바진전투)이후 1689년 청나라와 제정러시아는 첫번쨰 국경조약 을 체결하여 중러양국의 국경을 정한다. 비록 국경이 정해졌지만, 제정러시아는 조약을 준수하지 않았고, 청나라정부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는 점을 이용하여 실질적으로 중국의 영토를 잠식해 들어간다. 실질적인 점유가 형성되고, 그 토지위에서 러시아인의 인구비율이 우세를 점했을 때, 다시 청나라정부를 압박하여.. 2023. 3. 9.
우크라이나전쟁: 주권과 인권,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글: 불합군(不合群) 러시아-우크리이나전쟁이 1주년이 되었다. 러시아를 지지하는지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지, 사람들의 입장은 갈수록 선명해지고 있다. 나는 전쟁이 막 개시되었을 때는 중립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상황을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1주일의 시간을 들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역사적 연원을 알아보았고, 그후 나는 명확하게 러시아를 지지했다. 당시 절대다수는 우크라이나를 지지했고, 많지 않은 사람들은 우크라이나를 지지하지 않았으며, 러시아를 지지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내가 왜 러시아를 지지하게 되었는가? 이유는 한 가지만이 아니다. 다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전 8년동안 우크라이나는 신나치세력을 부추겨서 우크라이나동부의 러시아계에 대해 대학살을 진행한 사실이다. 이건 내가 이전에는 몰랐던.. 2023. 2. 27.
징기스칸은 중국인인가? 글: 자미도인(紫薇道人) 이건 원래 아주 간단한 문제이다. 그러나 공산당은 천고의 난제로 만들어 버렸다. 징기스칸이 중국인인가 아닌가? 답은 원래 간단하다. 중국의 국가구조는 영국과 유사하다. 몽골인과 중국의 관계는 스코틀랜드인과 영국의 관계와 비슿하다. 스코틀랜드인은 영국인이기도 하면서 영국인이 아니기도 하다. 그건 어느 영국을 가리키는지를 봐야 한다. England인지 United Kingdon인지? 징기스칸이 중국인인가 아닌가? 중국인일 수도 있고, 중국인이 아닐 수도 있다. 원래 중국은 해석권과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다. 영토를 확장하고 싶을 때는 징기스칸을 중국인이라고 할 수 있고, 전략수축때는 징기스칸을 중국인이 아니라고 할 수 있었다. 이렇게 유리한 조건을 공산당은 스스로 깨트려버린다. 공산당.. 2023. 1. 16.
우크라이나의 모터시크 국유화: 왜 중국이 반발하는가. 글: 양녕(楊寧) 2022년 11월 8일, 시진핑은 전체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을 이끌고 군사위연합작전지휘센터를 시찰함으로써, 전쟁을 준비한다는 자세를 드러내어 전세계로 하여금 베이징의 광망을 보게 했다. 이와 동시에, 우크라이나에서 온 한 가지 소식은 베이징을 분노하게 했으며, 심지어 우크라이나정부가 "후안무치"하다고 비난하기까지 했다. 원래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은 11월 7일 SNS에 이미 모터시크(JSC Motor Sich)등 전략적 의미가 있는 기업을 국유로 수용했다고 밝혔다. 11월 9일, 중국의 군대를 배경으로 하는 베이징텐자오(天驕)항공산업투자유한공사는 위챗계정인 "텐자오항공동력"에 글을 올려, 우크라이나국가증권및주식시장관리위원회가 공식 사이트에서 이미 모터시크의 주식을 강제거래로 우크라.. 2022. 1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