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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후151

동치황후(同治皇后)의 죽음 글: 등해춘(鄧海春) 운명이 비참했던 청나라 황후를 들자면 아마도 사람들은 마지막 황후 완용(婉容)을 떠올릴 것이다. 완용은 확실히 운명이 비참했고, 시신이 어디에묻혔는지도 찾을 수가 없어서 마지막 국구(國舅)인 곽포라 윤기(郭布羅 潤麒)의 동의를 받아 2006년 "초혼"의 방식으로 .. 2017. 12. 21.
네덜란드 기자가 쓴 "서태후 장례식" 글: 추월랑(秋月朗) 1908년 11월 9일 대청제국의 자희황태후(慈禧皇太后), 즉 서태후의 장례식이 열린다. 네덜란드 기자인 헨리 보렐은 서태후의 영구가 북경성을 나서는 장면을 모두 목격하고, 일련의 귀중한 사진을 남기며, 이번 중국 최고등급 장례식의 화면을 기록으로 남겼다. 이뿐 아.. 2017. 12. 21.
사업을 하려면 호설암(胡雪巖)을 배우지 말고 장필사(張弼士)를 배워라 글: 정만군(程萬軍) 근세에 살았던 고대의 거상을 얘기하게 되면 아마도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인물은 그 대명자자한 만청의 "홍정상인(紅頂商人)" 호설암일 것이다. 호설암은 확실히 전설적인 인물이다. 19세기 상반기에 청왕조 도광연간의 안휘의 가난뱅이의 아들로 태어났고, 공부를 많.. 2017. 10. 2.
숙순(肅順): 빈사상태의 청왕조를 살려냈지만, 청왕조에 의하여 잔혹하게 처형되다 글: 아방단대장금(我方團隊張嶔) 1840년이후의 청나라말기역사는 쳐다보면 항상 울분이 인다. 특히 그중 함풍연간을 보면 더욱 울분이 일어 피를 토할 지경이다. 남쪽의 태평군(太平軍), 중원의 염군(捻軍), 그리고 조직적으로 밀고 들어오는 영불연합군, 매년 이렇게 고난을 겪고 있었.. 2017. 7. 13.
함풍제는 왜 숙순(肅順)을 중용했을까? 글: 왕개새(王開璽) 북경사범대학 역사학원 교수 역사학자들은 이런 말을 많이 한다. 재원(載垣), 단화(端華), 숙순등은 북경에 있을 때, 함풍제가 중시한 대신들이다. 함풍제를 따라 열하(熱河)로 도망친 후에는 다른 왕공대신들도 없고하니, 재원등 그 중에서도 특히 숙순이 함풍제의 신.. 2017. 3. 29.
동치제: 허수아비로 산 가장 불쌍한 황제 글: 문재봉(文裁縫) 오늘 이야기할 주인공은 동치제이다. 청나라가 산해관을 넘어온 이후 제8대황제이다. 그는 나이 겨우 19살에 병사하였으니, 단명황제이다. 역사의 긴 강물에서는 아주 짧은 일순간이다. 비록 그러하지만, 동치제는 제왕의 존귀한 몸으로 주목을 받는다. 우리는 그의 인.. 2016. 11. 5.
훈령(勛齡): 중국의 나폴레옹 글: 살소(薩蘇)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이홍장(李鴻章)이 비스마르크를 만났을 때, 자신이 동방의 비스마르크라고 칭해진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비스마르크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나는 그러나 서방의 이횽장이라고 불리지는 않습니다." 이 에피소드가 만일 사실이라면, 비.. 2016. 4. 11.
의화단(義和團)사건을 되돌아본다 (2) - 청나라정부 2. 청나라정부 의화단운동 후기는 청나라정부의 지지와 일정한 관계가 있으므로, 당시의 관청도 '구외배외'로 지목받았다. 아래에는 "협애구외(狹隘仇外)'하는 백성이 있고, 위에는 '맹목배외(盲目排外)'하는 고관이 있었으니, 한바탕의 재난은 피할 수가 없었다. 오늘날 의화단운동에 대.. 2016. 2. 29.
"소흥사야(紹興師爺)" 부침록 이홍장글: 기련해(紀連海) "소흥사야"라는 단어의 '소흥'은 청나라때의 소흥부(紹興府)를 가리킨다. 청나라때의 소흥부는 산음, 회계, 소산, 제기, 여요, 상우, 승현, 신창의 8개현을 포함하고, 항주만의 남안에 위치한다. 전체지구는 회계산을 중심으로, 포양강과 조아강을 양날개로 하여, .. 2016. 2. 18.
[황자쟁위술] 이세탈인술(以勢奪人術) 적장신분패(嫡長身分牌) 동치제편(1) 함풍제는 황위계승자문제에 대하여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아들이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즉, 서태후(자희태후)가 낳은 재순(즉, 나중의 동치제)뿐이다. 그러므로, 옹정제때 만든 비밀건저(秘密建儲)도 실시할 필요가 없었다. 함풍제는 조부인 가경제처럼 후계자를 느긋하.. 2015. 10.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