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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139

[황자쟁위술] 투량환주술(偸梁換柱術) 후전황지패(后傳皇旨牌) 여후편 황태후의 임조칭제(臨朝稱制)는 신황제의 나이가 어린 것을 기화로 이루어지며, 신황제가 성인이 될 때까지 지속된다. 임조칭제를 하고 싶어하는 황태후(혹은 신황제즉위후 황태후가 될 황후)나 딴 마음을 품고 있는 대신들은 새 황제를 옹립할 때 자신의 이익 즉, 권력유지나 강화를 고.. 2015. 10. 11.
[황자쟁위술] 이퇴위진술(以退爲進術) 양중득위패(讓中得位牌) 송양공편 황위는 누구나 탐내는 자리이지만 손에 넣기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황위다툼의 매커니즘은 자리를 지키려는 황태자나 그를 빼앗으려는 다른 황자나 너무 황위에 대한 욕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 그들의 위에는 심판보다 훨씬 냉정한 눈으로 내려다보는 황제가 있기 때.. 2015. 8. 13.
[황자쟁위술] 투량환주술(偸梁換柱術) – 교조모위패(矯詔謀位牌) <사기.진시황본기>에 보면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후, 신하들에게 제도를 정하게 명하고, 승상 위관, 어사대부 풍겁, 정위 이사는 백관들과 협의한 후, “….황제의 명은 제(制)로, 황제의 영은 조(詔)로 한다.”는 원칙을 정한다. 그 후 황제의 영은 “조서(詔書)”라 부르고, 특히 그 .. 2015. 7. 27.
상(商)나라 사람들이 미주대륙을 발견했다는 말은 진실인가? 글: 장경위(張敬偉) 중국인이 미주대륙을 발견했다. 이 말은 당신은 믿는가? 주류 역사학자와 엄숙한 문화학자라면 절대로 믿지 않을 것이다. 다만 수시로 이런 류의 뉴스가 터져나오곤 한다. 특히 삼류신문이나 인터넷글에서는 잊을만하면 한번씩 이런 기괴한 글을 올려서 사람의 눈길.. 2015. 7. 13.
전국시대 4명의 변법가 글: 하림여추생(夏臨與秋笙) 전국시대는 풍운이 변환하고 백가쟁명했다. 그리하여 적지 않은 대담한 역사인물을 배출한다. 영웅이라고 말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역사에 이름을 남긴 호걸이라고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얘기할 사람은 전국시대 4명의 변법의 달인들이다. 전국시.. 2015. 5. 6.
여후(呂后): 불행한 가정에는 각자의 불행이 있다 글: 후홍빈(侯虹斌) 1 섬서(陝西) 함양(咸陽) 진도구(秦都區) 교점향(窖占鄕) 부근, 한고조 유방의 능묘인 장릉(長陵)이 있다. 장릉의 동쪽에 200여미터 떨어져서, 여후의 합장릉이 있다. 한나라때 제왕능묘를 살펴보면, 한나라 장릉의 건설은 한나라 제왕능묘중에서 가장 특별하다. 그 .. 2015. 3. 26.
비장군 이광(李廣)이 평생 제후에 봉해지지 못한 이유는? 글: 진사황(秦四晃) 한나라장수 이광은 농서 성기(成紀), 즉 지금의 감숙성 태안 사람이다. 사마천은 그의 조적은 기실 섬서 흥평이라고 했다. 이씨가족의 조상은 전투를 잘 했고, 활쏘기는 가전의 절기였다. 진나라때 유명한명장을 배출하는데,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진나라가 연나라를 .. 2015. 3. 26.
무정(武丁)의 "난처(難處)" 글: 독서삼매(讀書三昧) 무정(武丁)의 지명도는 상(商)왕조의 군주들 중에서 거의 개국군주인 탕(湯)과 망국군주인 주(紂)만이 그에 비견할 수 있을 정도일 것이다. 다만, 주처럼 폭군이 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탕처럼 명주(明主)가 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데, 무정은 바로 그런 명주.. 2015. 2. 24.
제(齊): 춘추전국시대의 상업패주(商業覇主) 글: 양반(梁盼) 한 국가의 인민이 부유한지 아닌지를 알아보려면 경제왕래가 활발한지 여부가 하나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 왜냐하면 수요와 공급이 모두 만족되면, 보편적으로 백성과 상인은 모두 각자가 원하는 것을 얻고 서로 만족하기 때문이다. 경제왕래가 활발한지 여부는 주로 민.. 2015. 2. 10.
장오(張敖): 유방의 사위는 얼마나 힘들었는가? 글: 진사황(秦四晃) 장오라는 사람은 원래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유방의 큰딸 노원공주(魯元公主)와 결혼하는 바람에 많은 주목을 받게 된다. 장오는 자신의 혼인이 부친들끼리 정해준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전혀 근거없는 것이 아니다. 유방, 장이(張耳)는 항상 함.. 2015. 2.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