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선진)

한비자의 죽음(3): 죽음의 진상

중은우시 2018. 6. 7. 18:16

글: 연비(燕飛)


앞에서 한비자의 죽음은 사마천이 쓴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한비자의 죽음에 관하여 주로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사질투모해설"입니다.

이 견해는 주로 사마천의 <사기.노자한비열전>의 기록에 근거합니다. 이사가 자신의 재능이 한비자에 미치지 못함을 알고 질투심에 그를 독살했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이미 자세히 분석했지만, 이 이유는 아주 억지스럽습니다.


한비자의 죽음에 관하여 <사기>의 기록을 보면, 그는 무고합니다. 이사와 요가(姚賈)의 박해를 받아 죽었습니다. 그러나, <전국책>의 기록에 따르면 그의 죽음은 그 자신에게도 원인이 있습니다.


하루는 연, 조, 오, 초가 진나라를 합쳐서 공격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진나라는 준비를 충분히 하지 못해서, 조야상하가 모두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요가가 나서서, 그가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진왕은 그의 말을 듣고는 아주 기뻐하며, 그에게 향거보마와 무수한 황금을 상으로 내렸습니다.

요가는 바램을 헛되이 하지 않고, 사국연맹을 와해시켰을 뿐아니라, 선물을 주는 방식으로 사국과 우호적인 관계도 건립했습니다.

요가가 진나라로 돌아온 후, 천호후에 봉해지고, 상경의 직위를 받습니다. 한비자는 무슨 심리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진왕의 앞에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대왕, 이 자는 마음이 고약합니다. 당신의 돈을 가지고, 박에서 사사로이 제후들과 교분을 맺었습니다."

그뿐아니라, 한비자는 요가에 대하여 인신공격까지 합니다. 그는 출생이 비천하여 수문장의 아들일 뿐이니 이런 자와 국가대사를 논의하는 것은 대신들의 체면이 상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진시황 영정은 그의 말을 듣고는 요가를 찾습니다. 요가는 어쨌든 사국을 유세하여 병력이 물러나게 만든 사람입니다 .말솜씨가 아주 뛰어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대왕에게 충성스럽지 않다면, 어찌 임무를 완성하고 돌아올 수 있었겠습니까. 제가 비천하다고 하는데, 그럼 백정일을 한 강태공, 장삿꾼출신의 관중, 겨우 5장의 양피의 가격으로 사온 백리해는 모두 출신이 비천하지 않단 말입니까. 그들은 그래도 군왕의 중용을 받았습니다."


진시황이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전국책>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진왕이 말하기를, "네 말이 맞다." 그리고는 요가를 다시 사신으로 보내고, 한비자를 주(誅)했다.

여기에서 "주"의 의미에 대하여 어떤 사람은 질책했다고 보고, 어떤 사람은 살심을 일으켰다고 본다. 어찌되었건 이 일로 요가와 한비자는 원한을 맺게 된다.


둘을 비교해보면, <전국책>과 <사기>간에 큰 차이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전국책>은 열국사료회폔이어서 상대적으로 객관적이다. 그외에 한비자가 요가를 공격한 말을 볼 때, 확실히 그의 주장에 아주 부합한다.


첫째, 요가는 종횡가이고, 한비자는 종횡가를 오두의 하나로 주장하여 반드시 제거해야한다고 했다.

둘째, 한비자는 '오두'를 제거해야한다고 주장했을 뿐아니라, 반드시 '팔간(八奸)'을 방비해야 한다고 했는데, 바로 8가지 간사한 사람이다. 그중 하나가 바로 '사방(四方)'인데, 국가의 재물을 가지고 대국과 교분을 맺고, 개인세력을 키우는 사람이다. 그래서 한비자가 보기에, 요가가 이번에 4국에 사신으로 가는 것은 바로 '사방'이 되려는 것이었다.

셋째, 한비자의 저작에서 군왕은 권신을 막아야 한다는 내용이 많은데, 한비자가 보기에 요가, 이사는 바로 권신이다.

넷째, 한비자는 한왕의 아들로 출신이 고귀하다. 비천한 출신의 요가를 멸시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사기>와 <전국책>의 다른 점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한비자의 죽음의 진상은 도대체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사기>와 <전국책>의 기록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사기>의 견해에 따르면, 이사와 요가는 질투심에서 한비자를 모함했다. 만일 그들 둘이 한비자를 모함했다면, 어쨌든 시기도 잘 잡고 이유도 잘 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시기와 이유중 어느 하나가 빠져도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진시황이라는 강한 정치인을 어찌 속여넘길 수 있겠는가. 고명한 정객이 가장 신경쓰는 것은 바로 시기를 잘 잡는 것이다. 손을 쓰지 않는다면 몰라도 일단 손을 쓰면 반드시 상대를 사지로 몰아넣어야 한다.


<전국책>의 기록에 따르면, 한비자가 나서서 막 공을 세우고 돌아온 사람을 공격했다. 만일 이사와 요가가 정말 한비자의 정적이라면, 한비자를 무너뜨릴 가장 좋은 시기가 아니겠는가. <전국책>과 <사기>를 결합해서 보면, 전체 사건의 전인후과(前因後果)를 알 수가 있다. <전국책>은 전인을 기재한 것이고, <사기>는 후과를 기재한 것이다.


만일 한비자의 죽음을 개인간의 은원으로만 치부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수박겉핥기 식일 것이다. 무슨 네가 나를 공격해서라든지, 무슨 너를 질투해서라든지, 이것들은 그저 겉모습이다. 필자의 생각으로, 한비자는 기실 3가지 충돌 가운데 죽었다. 이 3가지 충돌은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


첫번째 충돌, 한비자의 정치적 이상과 현실정치간의 충돌


우리는 알고 있다. 법가의 정치이념 혹은 그들의 정치입장은 바로 군왕의 편에 서는 것이다. 나머지 모든 사람은 모두 군왕의 반대편이라고 본다. 통제되거나 정리되어야할 대상인 것이다. 군왕이 반드시 방비해야할 대상이 된다. 그래서 한비자가 요가를 공격한 것은, 법가의 정치적 주장이나 입장에 완전히 부합한다.


그러나, 현실정치는 왕왕 복잡다단하다. 정객들은 대부분 현실주의자이다. 누구라 하더라도, 한비자의 몇 마디 말만 듣고서 금방 국가를 위해 큰 공을 세운 사람을 죽이지는 않는다. 공신을 다독이기 위하여 오히려 그를 공격하는 사람을 죽일 것이다.


두번째 충돌, 한비자와 진나라조정권신간의 충돌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한비자는 법가의 일관된 정치적 입장과 주장에 따라 반드시 이사와 요가라는 권신을 비난할 수밖에 없다. 그가 보기에, 이들 권신은 군왕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된다. 그가 이렇게 한 것은 비록 군주의 장기적 이익을 위한 것이지만, 반드시 현재의 권력자에게 밉보이게 된다. 진시황은 비록 한비자의 이론을 좋아하지만, 얘기하는 중에 '오두', '팔간'의 구체적인 대상이 나오게 되면, 그는 분명 정치의 현실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로 보면, 이사는 진시황에게 중용되고 있었고, 진시황이 미치지 않는 한 이사를 제거할 이유가 없다. 이사는 처음에 한비자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한비자는 여러번 진왕에게 건의하여 권신을 제거하라고 말한다. 이것은 바로 스스로 죽을 길을 간 것이다. 왜냐하면 이사가 최대의 권신인데, 정치적인 안전을 고려하면, 반드시 먼저 손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사는 절대로 무슨 질투를 한 것이 아니다.


세번째 충돌, 한비자는 한나라공자로서 진나라의 모신이라는 이중신분을 가진데서 오는 충돌


한비자가 진나라로 온 것은 진나라가 한나라를 공격하겠다고 위협해서이다. 한나라는 할 수 없이 그를 사신으로 진나라에 파견한다. 그래서 그의 신분은 아주 특수하다. 한편으로, 한나라의 공자이고, 다른 한편으로 진시황의 인정을 받아 그의 모신역할을 한다.


한나라를 먼저 공격할 것인가의 문제를 놓고 한비자는 한나라를 먼저 공격하지 말라고 주장한다. 진시황이 비록 그의 재능을 높이 사긴 했지만, 그에게 의심을 품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다.


결국 한비자의 사상은 비록 음험하고 독랄하지만 그는 아무런 정치투쟁의 경험이 없는 사람이다. 일개 서생으로 어찌 이들 정계의 고수들과 상대할 수 있겠는가.


진시황은 천고에 유례없은 강력한 군주로서 제왕술에 능했다. 그의 정치적 경험으로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한비자는 그저 탁상공론이 ㄹ뿐이고, 그에게 무슨 실질적인 역할을 해줄 수 없다는 것을.


이제 한비자의 사상과 서적은 모두 그가 파악하고 있다. 그러면 한비자의 이론이 조정의 대신들에게 미움을 사고 있다면, 그가 내릴 선택은 분명해진다.

최소한 진시황은 한비자의 죽음을 묵인했다. 그도 아마 아쉽게 생각하기는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저 아쉬워했을 뿐이다.

당시 이사는 형옥을 장악한 정위로서, 왕명을 집행한 것인지, 아니면 공무를 빌어 사원을 푼 것인지는 진시황이 이에 대하여 추궁하지 않았다는 것만 보아도 알 수가 있다.

그래서, 한비자의 죽음은 기실 진왕와 대신들이 공동으로 작용한 결과이고, 정치적 힘겨루기의 결과이다.


개인적으로 한비자의 죽음은 기실 자신의 돌로 자신의 발등을 내려친 것이라고 본다.

이것은 그가 이사와 요가라는 권신을 공격하여 살신지화를 불러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한비자, 상앙과 같은 법가의 사상은 군왕을 도와서 물샐틈없는 군주의 독재철망을 만드는데 있다. 군왕은 완전히 권력의 주재자가 되어 하고싶은대로 하고, 그 누구도 그를 구속할 수 없다.


다른 한편으로, 한비자와 같은 법가는 군왕을 교사하여 아무도 믿지 못하도록 만든다. 군왕에게 폭력과 권모술수를 맹신하게 만든다. 이 자를 죽이거나 저자를 베도록한다. 군왕들은 법가의 사상을 채택하여, 어제는 유생을 죽이고, 은사를 죽이고, 공상업자를 죽이지만, 오늘 왜 너 한비자를 죽이지 못한단 말인가.


사실상 진시황은 한비자의 생사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그는 진시황에게 있어서 초개와 같다 죽어도 아쉬울 것이 없다. 네가 죽든 말든, 정상적이고 공정한 재판을 받았는지 아닌지에 대하여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는 기실 바로 너희 법가의 주장이다. 법술세를 같이 써야 하고, 일체의 수단은 황권을 위하여 봉사한다. 권력이 법보다 크다. 당연히 권력자가 결정하면 그것이 법이다. 권력자가 너를 필요로 하면 네가 살아있을 수 있고, 권력자가 너를 죽이려 하면, 너는 죽어야 한다. 아무리 억울하더라도 죽어야 한다.


결국, 한비자는 이렇게 죽었다. 비록 그는 재능이 뛰어나고, 심지어 진시황으로부터 인정을 받았지만, 그래도 쓸모는 없었다. 난세에 누가 일개 한나라 서생의 죽음에 관심을 가져준단 말인가. 3년후, 한나라는 진나라에 의하여 철저히 멸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