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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143

1959년 주덕(朱德)은 왜 국가주석직을 사양했는가? 글: 생활문적(生活文摘) 1957년 4월 30일, 모택동은 처음으로 당외인사에게 그는 다음번 국가주석을 맡지 않을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각자의 범위내에서 이 소식을 퍼트려주어 '약간의 바람을 일으켜 달라'고 부탁한다. 1959년 4월 2일, 중공8기 7중전회가 .. 2015. 2. 13.
서태후는 왜 "노불야(老佛爺)"라고 불리웠는가? 글: 중천비홍(中天飛鴻) "노불야"는 남성황제에 대한 칭호이다. 그리고 청나라의 역대황제는 모두 특별히 '노불야'라고 칭해졌다. 그러나, 서태후도 "노불야"라고 칭해지지 않았는가? 서태후는 비록 황태후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여류이다. 그런데 왜 청나라의 조야 상하에서는 모두 그녀.. 2015. 2. 10.
김아매(金雅妹): 중국최초의 여자유학생 글: 생활문적(生活文摘) 김아매는 1864년 절강성 영파(寧波)에서 태어났고, 중국근대 최초의 여자유학생이다. 그녀의 성취는 뛰어나서 동시대의 <뉴욕타임즈>에서는 그녀를 가리켜, "전형적인 중국의 진보여성", "당대 가장 오래된 제국의 신여성" 그리고 "당금 세계이 가장 걸출한 여.. 2015. 2. 10.
민국시기 국도(國都)의 변천 글: 유진수(劉振修) 민국시기는 중국역사상 전쟁이 빈번했던 시기이다. 국도가 아직 안정되지 못했으니, 백성들의 생활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중국고대왕조의 흥망성쇠는 모두 도성의 변천을 불러왔다. 그래서 진,당,송,원은 모두 도성이 다르다. 한 왕조가 건립된 후, 수도를 정하는 것.. 2015. 2. 10.
섭정왕 도르곤의 급사에 관한 수수께끼 글: 문방장궤(文房掌樻) 도르곤은 섭정을 한지 7년만에 돌연 급사한다. 그의 사인에 관하여 공식사서에서는 모호하게 얘기한다. 만주족은 처음에 말타고 활쏘는 민족이었다. 귀족은 매를 풀어서 사냥하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한편으로 유락이며 다른 한편으로 무술연습이었다. 교육도 .. 2015. 2. 10.
1685년 야크사(雅克薩)전투: 청과 러시아의 충돌 글: 손월(孫越) 1676년 러시아특사 미리에스쿠는 북경에서 러시아로 돌아와서 짜르에게 보고한다. 빨리 군대를 보내어 중국을 평정하라고. 가히 광망하기 그지없는 자였다. 그후 비록 러시아가 미리에스쿠의 말을 가볍게 믿어 대군을 파견하지는 않았지만, 계속하여 중국흑룡강유역에서 .. 2015. 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