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성28 이자성(李自成)과 청왕조(淸王朝) 누가 누구의 덕을 보았는가? 글: 군무차위면(軍武次位面) 1644년 봄, 이자성은 대순군을 이끌고 북경으로 진입하여, 명왕조가 멸망한다. 그러나 겨우 1개월여만에, 이자성은 산해관전투에서 청군에 격패당하여 황급히 북경에서 도망치게 된다. 북경성은 다시 청왕조의 천하로 바뀐다. 이 시기의 역사에 대하여, 많은 .. 2019. 6. 3. 이자성(李自成)은 면전에서 들이받는 유종민(劉宗敏)을 왜 죽이지 않았을까? 글: 금일생활시각(今日生活視角) 유종민은 이자성 휘하여 최고용장이다. 용맹스럽고 싸움을 잘했다. 그는 죽기를 각오하고 이자성을 따라다녔으며, 이자성이 북경을 취하고, 대명왕조를 무너뜨리는데 큰 공을 세운다. 그러나, 유종민은 자주 이자성의 명령을 듣지 않았고, 심지어 여러번.. 2019. 5. 4. 새금화(賽金花)의 임종전 매체인터뷰 글: 반경적(潘京的) 1936년 12월 4일, 새금화가 병사한다. 그녀가 죽기 전에 만주족 언론인인 안의민(顔儀民)은 북평아동신문사(北平亞東新聞社) 사장의 신분으로 그녀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번 인터뷰는 경자지변(庚子之變)과 관련한 항간의 그녀에 관한 모든 소문을 다루었다. 그리고 .. 2019. 3. 8. 사진자료: 마지막 황제 부의가 자금성에서 쫓겨나는 장면 글: 왕남방(王南方) 1924년 11월 5일 오전, 늦잠을 자는 버릇이 있는 부의(溥儀)가 양심전(養心殿)에서 자다가 태감이 부르는 소리에 일어났다. 태감은 그에게 풍옥상(馮玉祥)이 사람을 보내어 궁에서 나가라고 명령했으며, 청나라황실의 인원 전부는 3시간내에 자금성을 떠나라고 했다는 것.. 2019. 2. 25. 태감 위충현(魏忠賢)의 개인숭배운동 글: 위득승(魏得勝) 가난한 집안 출신인 위충현은 스스로 거세를 한 후 관계를 통해 궁으로 들어가 영광스럽게도 도분공(掏糞工)이 될 수 있었다. 십여년후, 그는 바닥을 벗어나 한 재인(才人)의 음식관리업무를 맡는다. 1620년, 위충현이 입궁한지 딱 30년이 되었고, 나이는 이미 52세였다. .. 2018. 10. 27. 청나라말기에 무너진 "천조상방(天朝上邦)"의 꿈 글: 독력견문(讀歷見聞) "천조상방"은 중국고대 일반백성들의 가장 중요한 심리적 우월감이었다. 소위 "천처호상(天處乎上), 지처호하(地處乎下), 거천지지중자왈중국(居天地之中者曰中國), 거천지지편자왈사이(居天地之偏者曰四夷)"(하늘은 위에 있고, 땅은 아래에 있다. 천지의 한가운.. 2018. 6. 7. 이전 1 2 3 4 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