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50 조어대(釣魚臺) 국빈관의 역사 글: 홍촉(洪燭) 나의 어린 시절은 남방에서 보냈다. 머나먼 북경의 두 곳은 나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하나는 중남해(中南海)이고 다른 하나는 조어대이다. 중남해는 조국의 심장이고, 모주석이 그 곳에 있으면서, 강산을 다스렸다. 조어대 국빈관은 많은 각국원수를 접대했다 .이 두 지명.. 2012. 10. 3. 광서제(光緖帝)의 죽음: 누가 원흉인가? 글: 하약청(何躍靑) 서태후는 영록(榮祿)의 딸 과르자씨(瓜爾佳氏) 유란(幼蘭)을 순친왕(醇親王) 재풍(載灃)과 결혼시키는데, 여기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순친왕부가 가장 미워하는 사람이 두 사람이다: 하나는 원세개(袁世凱)이고 다른 하나는 영록(榮祿)이다. 왜냐하면 원세개의 뒷배.. 2012. 9. 19. 청나라 유신(遺臣): 투항할 것인가 말 것인가? 글: 김만루(金滿樓) 청나라황제의 퇴위조서가 발표되는 날, 황권청등(黃卷靑燈) 아래, 두 전통적인 사대부인 정효서(鄭孝胥), 운육정(惲毓鼎)은 서재에 앉아서 통곡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날, 정효서는 "새벽같이 일어나서, 침상에서 일어나서 좌불안석하며, 식사를 해도 맛을 느끼지 .. 2012. 9. 18. 청나라 황실의 후손들 글: 마용(馬勇) <황실우대조례>에 따르면, 중화민국정권은 대청국이 계속 존재하는 것에 동의했고, 북경의 황궁에 거주하도록 해주었다. 그래서 중화민국시대에 들어선 후 중국에는 이런 풍경이 벌어진다: 민국정치가들은 혹은 의회에서 평화논쟁을 벌이거나, 혹은 전쟁터에서 계속 .. 2012. 7. 12. 서태후가 47년간이나 중국을 통치한 원인은? 글: 왕개새(王開璽) 1861년 11월, 서태후가 공친왕 혁흔과 연합하여 신유정변을 일으킨 때로부터 3번의 수렴청정을 거쳐 1908년 사망할 때까지, 서태후는 중국을 47년간이나 통치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이것은 서태후가 정치권모술수에 능하여, 음험하고 독랄한 독특한 정치수완을 지니고 있.. 2012. 6. 6. 육윤상(陸潤庠): 청나라말기 어느 장원의 비극적 운명 이야기의 주인공은 영기발랄했던 한 소년이다. 그는 청포장삼(靑布長衫)을 입고, 변발을 하고, 약상자를 들고, 부친을 따라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병을 치료해주었다. 강남의 청산녹수 사이를 돌아다니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가 마음 속으로 품은 이상은 부친과 마찬가지로 평생동.. 2011. 4. 6. 이전 1 ··· 4 5 6 7 8 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