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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50

원세개는 왜 융유태후를 첩으로 삼으려 했는가? 글: 중천비홍(中天飛鴻) 1911년 10월 10일, 국민혁명군이 무창(武昌)의거를 일으킨다. 20일후, 원세개는 청나라정부 내각총리대신이 된다. 다음 해인 1월 25일, 원세개 및 각 북양장령은 전보를 보내어 공화(共和)를 선택한다. 남방혁명정부로부터 대총통의 자리를 보장받은 후, 원세개는 청황.. 2013. 11. 10.
경친왕(慶親王) 혁광(奕劻): 만청제일탐관 글: 유계흥(劉繼興) 마지막 황제 부의는 혁광이 신해년에 한 행위에 대하여 가장 날카롭게 평가한 바 있다: "(혁광)은 원세개의 돈을 받고, 태후에게 나라를 넘기라고 권했다. 대청 이백년의 천하는 혁광의 손에 끝장났다." 혁광은 만주 상남기 사람으로, 애신각라씨이며, 건륭의 열일곱째 .. 2013. 8. 15.
청나라 역사연대의 5가지 견해 글: 두두리유연(兜兜里有煙) 우리가 청말민초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아주 기본적인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청왕조는 중국역사상 도대체 몇 년이나 존재했는가> 이 문제는 여러가지 설이 있고, 학계에서도 충분히 중시하고있다. 첫번째 견해: 267년(1644-1911) 1. 페어뱅크(費正淸)은 <미.. 2013. 5. 21.
청나라말기 두 건의 "일어성참(一語成讖)" 글: 유계흥(劉繼興) 궤이한 역사는 항상 사람을 웃지도 울지도 못하게하는 점이 있다. 청나라말기에 발생한 2건의 '일어성참'의 이야기는 생각할수록 신기하다. 첫째 이야기는 서태후와 관련되고, 둘째 이야기는 부의와 관련있다. 서태후는 청나라말기 동치, 광서 두 황제의 재위기간동안.. 2013. 5. 18.
누가 부의(溥儀)를 자금성에서 쫓아냈는가? 글: 풍학영(馮學榮) 중국근대사 애호가라면 아마도 1924년 풍옥상(馮玉祥)이 부의를 자금성에서 쫓아낸 이야기를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에는 더욱 깊은 내막이 숨어 있다. 우리는 먼저 풍옥상 자신이 어떻게 얘기하는지 들어보자: "나는 국민군을 이끌고 북경정변을 일으켰다. .. 2013. 5. 18.
장훈복벽(張勛復辟)사건의 진상 글: 풍학영(馮學榮) 근대사의 여러가지 사건은 흑막이 겹겹이 쳐져 있다. 장훈복벽사건도 예외는 아니다. 장훈이라는 사람은 중국근대사상 나쁜 놈의 역할을 했다. 그러나 필자가 확보한 원시자료에 따르면 전혀 다른 진상을 찾아볼 수 있었다. 첫째, 필자는 먼저 배경을 얘기해야 한다. 1.. 2013. 4. 26.
조어대(釣魚臺) 국빈관의 역사 글: 홍촉(洪燭) 나의 어린 시절은 남방에서 보냈다. 머나먼 북경의 두 곳은 나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하나는 중남해(中南海)이고 다른 하나는 조어대이다. 중남해는 조국의 심장이고, 모주석이 그 곳에 있으면서, 강산을 다스렸다. 조어대 국빈관은 많은 각국원수를 접대했다 .이 두 지명.. 2012. 10. 3.
광서제(光緖帝)의 죽음: 누가 원흉인가? 글: 하약청(何躍靑) 서태후는 영록(榮祿)의 딸 과르자씨(瓜爾佳氏) 유란(幼蘭)을 순친왕(醇親王) 재풍(載灃)과 결혼시키는데, 여기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순친왕부가 가장 미워하는 사람이 두 사람이다: 하나는 원세개(袁世凱)이고 다른 하나는 영록(榮祿)이다. 왜냐하면 원세개의 뒷배.. 2012. 9. 19.
청나라 유신(遺臣): 투항할 것인가 말 것인가? 글: 김만루(金滿樓) 청나라황제의 퇴위조서가 발표되는 날, 황권청등(黃卷靑燈) 아래, 두 전통적인 사대부인 정효서(鄭孝胥), 운육정(惲毓鼎)은 서재에 앉아서 통곡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날, 정효서는 "새벽같이 일어나서, 침상에서 일어나서 좌불안석하며, 식사를 해도 맛을 느끼지 .. 2012. 9. 18.
청나라 황실의 후손들 글: 마용(馬勇) <황실우대조례>에 따르면, 중화민국정권은 대청국이 계속 존재하는 것에 동의했고, 북경의 황궁에 거주하도록 해주었다. 그래서 중화민국시대에 들어선 후 중국에는 이런 풍경이 벌어진다: 민국정치가들은 혹은 의회에서 평화논쟁을 벌이거나, 혹은 전쟁터에서 계속 .. 2012. 7.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