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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광서제)

광서제(光緖帝)의 죽음: 누가 원흉인가?

by 중은우시 2012. 9. 19.

글: 하약청(何躍靑) 

 

서태후는 영록(榮祿)의 딸 과르자씨(瓜爾佳氏) 유란(幼蘭)을 순친왕(醇親王) 재풍(載)과 결혼시키는데, 여기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순친왕부가 가장 미워하는 사람이 두 사람이다: 하나는 원세개(袁世凱)이고 다른 하나는 영록(榮祿)이다. 왜냐하면 원세개의 뒷배경이 바로 영록이기 때문이다.

 

영록은 좋은 가문출신이다. 청나라초기 개국5대신중 페이잉동(費英東)의 후예이고, 서태후와의 관계도 보통이 아니었다.

 

처음에 영록의 관직은 높지 않았다. 호부에서 은고(銀庫)를 관리하는 원외랑(員外郞)이었고, 그것도 후보(候報)였다. 부정부패로 하마터면 숙순(肅順)에 의해 목이 날아갈 뻔하기도 했다. 나중에 서태후가 그를 공부상서로 승진시킨다. 그후 다시 부정부패로 외직으로 쫓겨난다. 그러나 결국 다시 병부상서, 직예총독, 군기대신이 되고, 몇 개의 직을 겸직한다. 이것은 당시에 아주 보기 드문 일이었다.

 

서태후는 왜 영록을 이렇게 도와주었는가? 왜냐하면 그들은 어려서부터 알고 지냈기 때문이다. 이 두 사람은 소꼽친구이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두 사람은 나중에 애인관계를 유지했다고도 한다. 이것은 헛소리가 아니다. 마지막 황후인 완용(婉容)의 동생인 윤기(潤麒)가 직접 나에게 말해준 적이 있고, 노태감 손요정(孫耀庭)도 나에게 말해준 적이 있다. 나는 부의(溥儀)의 가족과 나근정(那根正) 선생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들도 모두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은 있지만, 증명할 수는 없다고 했다.

 

인터뷰과정에서, 나는 더욱 놀라운 주장도 듣게 된다. 서태후와 영록은 몰래 아들을 하나 낳았는데, 그가 바로 광서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과학적 검증이 필요하고, 소문에 의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유란과 재풍의 혼인관계는 원만하지 못했다. 재풍은 성격이 유약하여, 어릴 때 동생 재순(載洵)과 싸우다가 앞이빨이 부러졌다. 그는 계속 울면서 이제 어떡하면 좋으나 밥도 먹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하였다. 가족이 그에게 괜찮다고 말하면서 밥을 못먹으면 죽을 먹으면 된다고 하자, 그는 눈물을 닦고 웃음을 보였다고 한다. 이를 보면, 재풍은 아주 착실한 사람이다.

 

유란은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서태후의 양녀이다. 한번은 영록이 궁내에서 서태후와 얘기를 하고 있는데, 유란이 궁으로 들어왔다. 서태후에게 할 말이 있다는 것이다. 서태후는 이렇게 말한다: 그녀는 아무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심지어 나까지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부의는 이렇게 말했다. 재풍이 그에게 준 가장 깊은 인상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말을 빨리 하려도 하면 더듬는다는 것이도, 다른 하나는 모자 뒤의 변발이 항상 움직였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이 말만 하면 고개를 끄덕였기 때문이다.

 

부걸(溥傑)의 회고에 의하면, 하루는 유란이 재풍과 식사를 하다가 화를 낸 적이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탕을 가져오는 태감이 하나같이 지저분하고 옷도 엉망이어서 보기에 역겨운데다가, 나중에 손가락을 탕 속에 넣고 들고오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풍은 아주 맛있게 먹고 있었다.

 

유란은 성격이 강열했다. 부의가 궁에서 쫓겨난 후, 그녀는 도처를 돌아다니며 '복벽'을 협의했고, 결국은 자살로 생을 마친다.

 

학자 종리만(鍾里滿) 선생은 이런 검사수치를 내놓은 바 있다. 광서제의 머리카락에서, 비소의 함량이 융유(隆裕)의 머리카락에서 나온 비소의 함량의 261배에 달했다. 광서제의 유골, 의복, 위장검사결과를 보면, 모두 비소화합물이 높게 검출된다(바로 민간에서 말하는 '비상'이다). 과학적으로 추산해보면 광서제의 체내에 들어있는 비상의 양은 치사량에 상당한다고 말할 수 있다.

 

마지막 태감인 손요정은 이렇게 말했다. 당시 광서제의 죽음에 대하여는 3가지 견해가 있었는데, 첫째는 서태후가 죽였다는 것이고, 둘째는 이연영(李蓮英)이 죽였다는 것이고, 셋째는 원세개가 죽였다는 것이다.

 

광서제의 기거주관(起居注官)인 운육정(惲毓鼎)은 <숭릉전신록>을 썼는데, 그는 위의 첫째 견해에 동의한다. 왜냐하면 서태후는 광서제보다 먼저 죽고싶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덕령(德齡)이 쓴 <영대읍혈기>에서는 둘째견해를 취한다; 부의의 <나의 전반생>은 셋째 견해에 치우쳐 있다.

 

필자는 부의의 가족을 인터뷰해본 적이 있다. 그들은 순친왕부의 사람들은 계속하여 원세개가 보내온 몇 첩의 고약(膏藥)(어떤 사람은 내복약이라고 한다)으로 광서제의 병세가 돌연 악화되었고, 중독으로 사망했다고 얘기한다.

 

<나의 전반생>에서 부의는 노태감 이장안(李長安)이 하는 말을 들었는데, 원래 광서제는 잘 서서 있었고, 목소리도 컸는데, 다음 날 원세개가 보내준 약을 먹고는 돌연 사망했다고 한다.

 

세 가지 견해중에서 어느 것이 더욱 이치에 맞을까?

 

먼저 서태후를 보자. 그녀는 광서제와 여러 해동안 대립했고, 원한이 깊었다. 그러므로 사건을 저지를 동기가 있다. 그러나 그녀가 광서제를 없애려면 힘들지 않은 일이었다. 독수를 쓰려면 일찌감치 썼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부의를 허수아비로 만들어 자신이 계속 수렴청정하려고 생각했다. 이를 보면 그녀는 자신이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므로 광서를 죽일 필요가 없었다.

 

다음으로 이연영을 보자. 일반적인 견해에 따르면 이연영은 서태후의 편에 서서 오랫동안 광서제를 괴롭혔다. 그러나 노태감 신수명(信修明)의 일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서쪽으로 도망가는 도중에, 이연영은 광서제가 옷을 조금만 입고 있는 것을 보자, 자신의 의복을 꺼내서 광서제에게 주었다. 광서제가 말하였다; '이안달(李安達), 너는 춥지 않으냐?' 이연영이 대답한다: '노재(奴才)야 만번을 죽어도 뭐가 아쉽겠습니까.'" 이 일은 광서제를 감동시킨다. 광서제가 병이 위중할 때, 융유황후가 그를 보러 갔을 때 그는 두 가지 밀지를 구술했다고 한다. 첫째는 원세개를 죽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이연영에게 잘 대해주라는 것이다.

 

그리고, 원세개를 보자. 순친왕부든 부의든 모두 일치하여 원수는 원세개라고 말한다. 그러나 궁중에는 법도가 있다. 누구든지 약을 만들면 먼저 맛을 보아야 한다. 손요정은 말한다. 이것은 "저체양사(猪替羊死, 돼지가 양을 대신하여 죽다)". 프로세스를 거치지 않을 수는 없다. 원세개가 광서제를 해치는 것은 기본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19.5시간이내에 광서, 서태후가 연이어 세상을 떠났는데, 그들은 같은 사람에게 모해를 당한 것일까?

 

이렇게 하려면 4가지 조건이 들어맞아야 한다: 첫째, 자유롭게 궁중을 드나들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서태후의 침궁을 자유롭게 드나들어야 하고, 서태후와 잘 알아야 한다. 셋째, 광서제의 거처를 자유롭게 드나들어야 하고, 그와 잘 알아야 한다. 넷째, 태감을 자유롭게 조종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 태감 손요정은 말한다. 동시에 이 네가지 조건을 갖춘 사람은 오직 한 명이다. 바로 이연영이다. 광서제가 연금된 기간동안, 그는 광서제와 서태후간의 전령역할을 해왔다. 그만이 광서제와 서태후를 해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기묘한 것은 서태후, 광서제가 죽은 후, 이연영도 돌연 사망한다. 그리하여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남긴다.

 

이연영의 묘소는 현재 해정구 21세기학교 부지내에 있다. 이 묘는 원래 이연영의 것이 아니다. 그의 전임태감우두머리인 소덕(蘇德)의 것이다. 소덕은 신유정변때 큰 공을 세운다. 서태후와 혁흔의 사이에 적지 않은 소식을 전달했다.

 

신수명의 일기에 따르면, 소덕은 함풍제의 어전태감으로 서태후와 비교적 친했다. 그의 별명은 "소노아자(蘇老牙子)"이다. 궁내에 인간관계가 좋았다. 서태후는 여러번 고민한 끝에, 서신을 전달하는 중임을 그에게 맡긴다. 소덕은 반나절을 생각해보고는 서태후가 그에게 준 서신을 동그랗게 말아서, 담뱃대에 불을 붙이는 종이처럼 하고는 담뱃대를 입에 물고 당당하게 서신을 전달했다.

 

신유정변이 성공한 후, 소덕은 일거에 중용된다. 은제장의 풍수를 좋게 보아 묘지로 선정하고 패방을 세웠을 뿐아니라, 양쪽에 옹중을 만들어 황가의 규격을 모방해서 고발을 당한다. 감찰부서는 사적으로 소덕에게 소식을 전하고, 소덕은 사람을 시켜 밤 사이에 이 분묘를 철거하고 묻어버린다. 이렇게 하여 이 일은 조용히 수습뇐다. 이연영이 태감대총관이 된 후, 이 땅을 좋게 보았다. 그가 사망한 후, 융유는 그 땅을 이연영에게 하사한다.

 

'문혁'때 파사구(破四舊)로 이연영의 묘가 파헤쳐진다. 그런데 머리부분이 없었다. 확실히 이연영은 비명에 간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이연영을 죽였단 말인가? 그의 죽음은 광서제, 서태후와 관련이 있을까? 필자 개인의 생각으로는 이것은 아마도 연결된 사건일 것이다. 이연영이 배후에는 아마도 원세개가 있을 것이다. 이연영이 서태후와 광서제를 독살하고, 나중에 원세개에 의하여 살인멸구를 당한 것일 것이다. 당연히 이것은 개인적인 추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