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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민국 초기)

장훈복벽(張勛復辟)사건의 진상

by 중은우시 2013. 4. 26.

글: 풍학영(馮學榮) 

 

근대사의 여러가지 사건은 흑막이 겹겹이 쳐져 있다. 장훈복벽사건도 예외는 아니다. 장훈이라는 사람은 중국근대사상 나쁜 놈의 역할을 했다. 그러나 필자가 확보한 원시자료에 따르면 전혀 다른 진상을 찾아볼 수 있었다.

 

첫째, 필자는 먼저 배경을 얘기해야 한다. 1917년초, 제1차세계대전에 참전할 것인지 여부를 놓고, 중화민국의 총통 여원홍과 총리 단기서는 갈들을 빚는다. 역사에서 '부원지쟁(府院之爭)"이라고 부르는 사건이다. 이 분쟁에서, 총통 여원홍은 단기서의 직위를 파면한다. 단기서는 면직된 후, 총통 여원홍에게 보복하기로 결심한다.

 

이것이 이 사건의 중요한 배경이다

 

좋다. 이제 우리는 소석린(蘇錫麟)의 증언을 보자. 소석린이 누구인가. 소석린은 장훈의 부하인 심복맹장이다. 그는 장훈의 정무군(定武軍, 즉 子軍) 의 통령이다. 소석린의 이 증언은 <나의 복벽지역중 친신 경력>이라는 것으로 <문사자료선집제41집>에 수록되어 있다. 핵심내용은 제60쪽-71쪽에 있다.

 

소석린의 장훈복벽사건에 대한 증언은 이렇다:

 

여원홍에 보복하기 위하여, 단기서는 사람을 보내어 장훈에게 병력을 이끌고 북경으로 들어와서 여원홍을 쫓아내라고 권했다.

 

각성의 독군들도 여러 명을 파견하여, 장훈의 주둔지인 서주(徐州)로 왔다. 여기에는 단기서의 심복인 서수쟁, 풍국장을 대표한 호사원, 단기서를 대표한 증육준, 조곤을 대표한 사람, 장작림을 대표한 사람등등의 회의에서 장훈으로 하여금 병력을 이끌고 입경하는 것을 일치하여 추천한다. 여원홍을 몰아내고, 풍국장을 대총통으로 옹립하고, 단기서의 총리직을 회복시키기로 한다.

 

회의에서, 장훈의 비서장인 만승식은 조건을 내건다: 출병하여 여원홍을 무너뜨릴 수 있다. 다만, 전청나라 폐제 부의를 복벽시켜야 한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한동안 대치하게 된다.

 

나중에 (단기서의 심복) 서수쟁, (풍국장의 심복) 호사원등이 협의하여: 먼저 장훈이 제기한 부의복벽조건을 거짓으로 응락해서, 장훈이 입경하도록 하고, 장훈이 여원홍을 몰아낸 후 다시 방법을 강구하여 장훈을 해결한다고 결정한다.

 

그 결과 각성의 독군대표들은 황단자(黃緞子)에 서명하여 장훈이 복벽하는데 동의한다. 장훈은 이것이 계책인줄 모르고, 속는다. 그는 병력을 북경으로 보내어 여원홍을 타도한다. 그리고 당당하게 복벽을 진행한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단기서가 돌연 천진마창에서 병력을 일으켜 장훈을 토벌하겠다고 한다. 소식을 들은후, 장훈은 한스럽게 말했다: "그들이 나를 밀어 복벽하게 한 것이 원래 나를 가지고 논 것이었구나 우리는 이대로 당할 수 없다. 죽음을 무릅쓰고 그들과 끝까지 싸워야겠다. 무서울 게 뭐냐. 나중에 우리는 내부사정을 폭로하자. 설마 나 한사람이 복벽을 하려 했겠느냐?"

 

그래서 장훈은 만승식을 불러서 바로 당시 모두 서명한 황단자를 꺼내오게 해서 세상에 공개하여 전국민이 평가하게 하려 한다. 만승식은 말한다. 황단자는 천진에 두고 왔는데, 지금 가서 가져오겠습니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만승식은 한번 가곤 돌아오지 않았다. 원래 황단자는 일찌감치 풍국장의 심복인 호사원이 20만위안을 주고 사갔던 것이다.

 

긴요한 순간에 왕사진은 사람을 보내어 소석린을 찾았다. 사격하지 마라는 것이다. 장훈을 희생시켜 북경인민이 전화의 도탄에 빠지는 것을 막자는 것이다. 소석린은 말했다: "복벽은 각성 독군들이 서영해서 동의한 것이다. 현재 그들이 마음을 바꾸었다. 장훈을 가지고 놀았다. 그들은 신용이 없다. 현재 장훈은 아주 위험한다. 장훈은 나의 상관이다. 나는 죽을믈 보고 구하지 않을 수 없다. 너는 돌아가 왕사진에게 보고해라. 토역군이 총을 쏘지 않는 한, 나도 절대 총을 쏘지 않을 것이다. 만일 장훈의 인신안전이 보장된다면 나는 더더욱 총을 쏘지 않을 것이다."

 

결국은 총을 쏘게 된다. 그후 네덜란드공사관이 차를 파견해서 장훈을 구하려 한다. 장훈은 가려 하지 않았다. 네덜란드인은 장훈을 억지로 데려가려 했고, 장훈은 다급한 나머지 네덜란드인을 입으로 물기까지 한다.

 

나중에 북경시 공안국장 오병상이 소석린과 함께 네덜란드공사관으로 가서 장훈은 만난다. 소석린은 장훈에게 묻는다: "전투에 졌는데, 부대는 어떻게 할까요?" 장훈이 말한다: "네가 알아서 해라" 그래서 소석린은 변자군의 변발을 잘라버리고, 복장을 바꾸게 하고, 해산비를 지급해서 고향으로 돌아가게 한다.

 

이상이 장훈의 심복 소석린이 사후에 한 증언이다.

 

근대사에서 당연히 한 사람의 일방적인 증언만 믿을 수는 없다. 좋다. 우리는 다시 단기서쪽 사람의 증언을 들어보자.

 

먼저 섭공작(葉恭綽)의 증언을 들어보자. 섭공작이 누구인가? 섭공작은 단기서 토역군총사령부의 교통처장이다. 그의 이 증언은 <나의 장훈복벽토벌참가의 회고>라는 제목이며, <문사자료선집제41권>에 수록되어 있다. 핵심내용은 54-57쪽에 있다.

 

섭공작의 증언은 아래와 같다:

 

"1917년 5월 하순, 여원홍이 명을 내려 단기서 총리의 직무를 면직했다. 안휘성장은 전통을 보내 독립을 선언한다. 이어서 기, 로, 예, 섬, 봉, 절, 민의 7개성이 연이어 독립에 호응한다. 상당히 많은 정객들이 서주로 모여들었다. 당시 상당히 많은 군정인물들은 장훈에게 말했다: 장훈의 복벽에 찬성한다. 장훈은 공을 세울 기회가 왔다고 여겼다. 그러나 생각지 못하게 버마제비가 매미를 잡으려 할 때, 참새가 뒤에 있다(螳螂捕蟬, 黃雀在後)는 격이었다."

 

섭공작의 증언도 각성독군과 정객들이 거짓으로 장훈복벽에 동의하여, 장훈을 속이고 가지고 놀았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다시 두번째 증인의 말을 들어보자. 이 증인도 단기서의 사람이다. 이름은 증육준이다. 그는 단기서의 심복이다. 증육준의 증언은 <억어수필>이고 <문사자로선집제41집>에 실려 있으며 핵심내용은 23쪽이다.

 

증육준의 증언은 아래와 같다:

 

"단기서는 일찌기 말한 바 있다: '장훈이 병력을 이끌고 북경에 들어와 여원홍을 타도한 것은 우리에게 속은 것이다." 서수쟁도 말한 바 있다: "장훈은 복벽을 꾀한다. 먼저 그에게 하라고 하면, 우리에게 기회가 있을 것이다(여원홍이 집권을 타도)"

 

확실히 증육준의 증언도 장훈이 속았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이상의 양측인원의 증언을 종합하면, 장훈복벽사건의 핵심진상이 아래와 같음을 알 수 있다:

 

1. 총통 여원홍이 단기서를 면직시키고, 단기서는 원한을 품고 보복을 꾀했다;

2. 단기서는 풍국장, 조곤, 장작림등 핵심군사역량등과 연합하여, 장훈에게 병력을 이끄록 입경하여 여원홍을 무너뜨리도록 권했다.

3. 장훈은 조건을 내놓았는데, 여원홍을 무너뜨리는 것은 좋으나, 청황제가 복벽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4. 상술한 각 주요군사역량은 거짓으로 동의했고, 장훈의 복벽건의에 찬성하는데 서명한다. 그렇게 하여 장훈이 병력을 출동하도록 유인한다.

5. 장훈은 그것이 계책인줄 모르고, 속는다. 병력을 출병시켜 여원홍을 무너뜨리고 복벽을 꾀한다.

6. 각성대표는 복벽에 동의한 서명기록을 금방 매수하여 없애버린다.

7. 장훈을 다 이용한 후, 단기서는 돌연 병력을 동원하여 토벌하고 장훈은 패전한다. 토사구팽이다 장훈은 신패명열(身敗名裂)한다.

 

이상에서 쓴 바와 같이, 단기서와 여원홍의 정치투쟁에서, 단기서의 심복인 서수쟁이 앞장서서, 충용스러우나 지모는 없는 장훈을 이용하기 위하여, 그가 복벽을 꾀하는데 동의하는 척 하여 그가 출병하여 북경으로 들어가도록 한다. 여원홍을 무너뜨린 후, 다시 각성이 복벽에 동의한 서명록을 없애고, 안면을 바꾸어 병력을 일으켜 장훈을 토벌한다. 장훈이라는 멍청이는 결국 백년동안 악명을 덮어쓰게 된다.

 

이것이 바로 진상이고, 이것이 바로 정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