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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중엄16

서하(西夏)의 자칭국명 "방니정(邦泥定)" 및 "백상국(白上國)"은 어떤 의미였을까? 글: 오천지(吳天墀) 서하정권의 건립자인 척발원호(拓拔元昊)는 일찌기 북송에 보낸 국서에서 스스로 자신의 나라를 "방니정(邦泥定)"이라 칭한 바 있다. 그 내용은 권485 에 나온다. 그리고 서하는 스스로 "백상국(白上國)"이라 칭했고, 실물증거도 있다. 예를 들면, 감숙성 무위현문화관에 보존된 에는 음각으로 한문을 새겼는데, 첫행의 표제가 "백상호국사양주감응탑지비문(白上護國寺感應塔之碑文)"이라고 되어 있다든지, 1975년 9월 영하박물관은 은천시 서하란산 동록의 서하제릉구에서 2호릉(하인종의 능)의 동서비정(碑亭)을 정리했는데, 이미 부서진 서하문(西夏文) 전체비액(篆體碑額)의 위에 서하문전체와 병합해서 번역된 한문(漢文)은 바로 "대백상국호성성덕지의황제수릉지문(大白上國護城聖德至懿皇帝壽陵誌文)"이라는 .. 2023. 6. 8.
송인종(宋仁宗)의 3대 번민: 인모(認母), 폐후(廢后), 입저(立儲) 글: 원희(元曦) 이런 말이 있다. 청관난단가무사(淸官難斷家務事). 청렴한 관리도 집안 일은 판단하기 어렵다. 천자도 마찬가지이다. 그에게도 골치아픈 집안 일이 있다. 송인종은 일생동안 세 가지 일로 골치가 아팠다. 무슨 세 가지 일인가? 인모(認母), 폐후(廢后), 입저(立儲)이다. 쉽게 말하면, 누가 엄마이고, 누가 마누라이며, 누가 아들이냐는 세 가지 일인 것이다. 보통사람들의 집안 일은 그 자신의 프라이버시이다. 주변 사람들이 간여하기 힘들다. 그러나, 천자는 다르다. 왜 다른가? 어떤 사람은 이렇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천자는 권력이 크므로,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실제는 정반대이다. 천자에게는 프라이버시가 없다. 그의 집안일도 모두 나랏일이 되어 버린다. 대신들도 말을 하고, 언관.. 2023. 3. 8.
송요(宋遼)백년평화시기: 300여차례의 외교활동과 민족의식의 맹아 글: 추산산인(秋山散人) 송나라는 중국역사상 논쟁이 많은 왕조이다. 어떤 학자들은 송나라를 "적빈적약(積貧積弱)"으로 평가하고, 어떤 학자는 상품경제가 발달했다고 찬양한다. 진인각(陳寅恪) 선생은 더더욱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 중국문화의 수천년에 걸친 발전은 조송(趙宋)시대에 최전성기를 맞았다. 이런 서로 다른 평가는 송나라사회의 여러 다양하고 복잡한 특징을 보여준다. 그중 송나라와 요나라간의 외교활동이 특히 눈길을 끈다. 송요간에 어떻게 하여 100년간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송나라는 "사대부와 함께 천하를 다스린다(與士大夫共治天下)"의 정치원칙을 가지고있었는데, 요나라와의 교류과정에서, 이들 사대부들은 어떤 심리를 지녔고, 구체적인 정책에는 또한 어떻게 영향을 미쳤을까? 1. 북송의 북방변방.. 2022. 12. 27.
송인종(宋仁宗) 조정(趙楨): 천고제일인군(千古第一仁君) 글: 진동만(陳東晩) 서언 중화역사 상하 5천년동안 감히 '인군(仁君)' '명군(明君)'이라 칭할 수 있는 황제는 몇 되지 않는다. 진시황은 육국을 통일하였으나 '폭군'으로 불린다. 한고조 유방은 대한의 기업을 건립하였으나 시종 '비조진양궁장(飛鳥盡良弓藏)'으로 공신들을 참살한 오점이 있다. 대당성세 '정관지치'를 실현한 당태종도 안타깝게도 현무문사변의 악과를 벗어날 수 없고, 송태조 조광윤의 '진교병변' '황포가신' '배주석병권'은 사람들을 가슴아프게 했고, 앙문억무(仰文抑武)로 대송을 약국으로 만들었다. 진정 명군, 인군이라 칭할 수 있는 사람은 송나라의 제4대황제 송인종 조정이다. 비극적인 출생 중국의 희곡중에 '이묘환태자(狸猫換太子)'라는 것이 있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로 송인종 조정이다. .. 2021. 4. 17.
송나라때 '문정공(文正公)'의 시호를 받은 인물은? 글: 용가독사(勇哥讀史) 이런 말이 있다: "생진태부(生晋太傅), 사시문정(死諡文正)"(살아서 태부에 오르고, 죽어서 문정의 시호를 받는다). 고대의 무수한 문인들에게 있어서, 사후에 '문정'이라는 시호를 받는 것은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송나라는 문인을 존중한 시기였다. "만반개하품(萬般皆下品) 유유독서고(惟有獨書高)"(모든 것은 하품이고, 오로지 문관이 높다)을 부르짖던 왕조에서 몇명의 대신이 '문정'의 시호를 받았을까? 답안은 9명이다. 평균 34년에 한명씩 배출되었다. "문정"의 시호를 받은 9명의 대신은 사망한 시간을 기준으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이방(李昉), 왕단(王旦), 왕증(王曾), 범중엄(范仲淹), 사마광(司馬光), 황중용(黃中庸), 채변(蔡卞), 정거중(鄭居中), 채심(蔡沈) 이.. 2020. 12. 18.
소린(蘇麟): 송나라때 가장 게으른 시인 글: 취간역사(趣看歷史) 사중지룡(詞中之龍)이라 불리는 신기질(辛棄疾)은 일찌기 이런 문구를 쓴 바 있다: "소년부지수자미(少年不知愁滋味), 위사신사강설수(爲賦新詞强說愁)"(어려서는 슬픈게 뭔지를 몰라서 시사를 짓기 위하여 억지로 슬프다고 말하곤 했었지). 문인은 세월이 쌓여야.. 2020. 2.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