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취간역사(趣看歷史)
사중지룡(詞中之龍)이라 불리는 신기질(辛棄疾)은 일찌기 이런 문구를 쓴 바 있다: "소년부지수자미(少年不知愁滋味), 위사신사강설수(爲賦新詞强說愁)"(어려서는 슬픈게 뭔지를 몰라서 시사를 짓기 위하여 억지로 슬프다고 말하곤 했었지). 문인은 세월이 쌓여야 비로소 세상사람들을 놀라게 만드는 뛰어난 작품을 쓸 수가 있다. 시를 위해 시를 쓰다가는 왕왕 역효과가 나는 경우가 많다.
좋은 시사(詩詞)라는 것은 생활을 좀더 높은 수준으로 하기를 원하나, 반드시 화려한 말을 써야만 하는 것이 아니고, 평범한 언어로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철리를 다믈 수 있다.
고대문학가에 있어서 이백(李白)같은 천재급의 시인은 우연히 만날 수는 있지만 억지로 구한다고 생기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수백년에 겨우 한명이 나올까 말까 할 것이다. 여광중(余光中)은 이렇게 이백을 칭찬했다: "술이 위장에 들어가면, 칠푼은 월광(月光)이 되고, 삼푼은 검기(劍氣)가 된다. 입을 열어 내뱉으면, 바로 성당(盛唐)의 절반이다."
듣기에 약간 과장된 듯하지만, 기실 이백은 이렇게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만일 이백이 없었더라면, 당나라의 시단은 많은 광택을 잃었을 것이고, 그의 호방함, 그의 시원시원함은 그의 시가에서 나타나 있다.
어떤 시인은 거의 붓을 손에서 떼지 않고, 수십, 수백의 시가를 창착했지만, 한수도 후세에 널리 전해지는 것은 없다. 그것은 그가 노력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재능과 영감이 부족해서이다. 어떤 시인은 비록 작품의 수량이 아주 적지만, 품질이 너무 높아서, 순식간에 전해지게 되고, 세상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천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경전으로 남아 있다.
예를 들어, 장약허(張若虛)의 <춘강화월야(春江花月夜)>는 심지어 한편으로 전체 당나라를 덮었다(孤篇蓋全唐)이라는 평을 받는다. 그중의 두 구절 "인생대대무궁이(人生代代無窮已), 강월연년지상사(江月年年只相似)"(사람의 삶은 대대로 무궁무진하게 이어지고, 강위의 달은 매년 비슷하다). 겉으로 보기에 평범하기 그지없고, 별달리 뛰어난 점도 없어 보이지만, 읽고나면 뒷맛이 계속 이어진다. 이 시의 수준은 아주 높다고 할 수 있고, 그래서 장약허는 명성을 떨치게 된다.
여기에서 소개하는 송나라때의 한 시인은 장약허보다 작품이 적다. 그는 역사상 가장 게으른 시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일생동안 단지 두구절이 시만을 남겼지만, 천고의 가작으로 남는다. 그 시인의 이름은 소린이다. 아마도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어쨌든 소식이나 이청조와 비교하면 소린의 문학사에서의 명성은 너무나 작다. 거의 무시할 수준일 것이다. 그러나 그이 두구의 시는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람들이 자주 입에 올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단구(斷句)> - 소린(蘇麟)
근수루대선득월(近水樓臺先得月)
향양화목이위춘(向陽花木易爲春)
물에 가까이 있는 누각에서는 달을 먼저 얻고
해를 향하는 꽃과 나무는 봄이 빨리 온다.
원래 이 시에는 제목도 없는데, 후인이 붙인 것이다. 체재형식으로 보자면, 율시에 속하지도 않고, 절구에 속하지도 않는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이 시는 원래 4구인데, 여러가지 연유로 2구만 남게 되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소린이 어떤 상황하에서 영감이 일어나 이렇게 아름다운 시를 짓게 되었을까?
송나라때의 <청야록(淸夜錄)>에는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범중엄은 전당에서 매우 높은 관직에 있었다. 재능있는 사람은 자신과 가깝고 멀고를 가리지 않고 추천했다. 부하들중 열심히 일하고 승진요건에 맞으면 모두 중요한 직위로 발탁되었다. 유독 소린은 발탁되지 못한다. 원래, 소린은 재능이 뛰어났고, 일도 열심히 하지만 그의 업무성격상 일년내내 외지로 파견나가 일하다보니, 범중엄과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던 것이다.
몇년 후, 소린은 원래 자신과 직위가 비슷하던 동료들은 모두 승진하였고, 자신보다 몇단게나 위로 올라갔으며, 심지어 자신보다 능력이 훨씬 부족한 사람도 이미 그의 상사가 되어 있었다는 것을 발견한다. 내심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소린은 체면을 중시하여 직접 자신을 추천해달라고 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이리저리 생각하다가 마침내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낸다.
범중엄은 문재가 뛰어나고, <악양루기(岳陽樓記)>는 천하에 이름을 떨친 명문이다. 소린은 "근수루대선득월, 향양화목이위춘"이라는 시를 지어 바치며 범중엄에게 평가를 부탁한다. 범중엄은 그 시를 보자마자 알아차렸다. 이는 소린이 관료사회에서 불운한 것을 한탄하는 내용이라는 것을. 그래서 한동안 그를 관찰한 후,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를 발탁했다.
근 천년이 흘렀고, 소린이 남긴 14글자의 <단구>는 지금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그 의미는 적용범위를 점점 넓혀가서, 어떤 사람은 애정을 형용하는데 쓰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사업을 형용하는데 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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