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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삼사19

적인걸(狄仁傑)의 남다른 말년 글: 이숙금(李淑琴) 적인걸(630-700), 당나라때 병주 태원(지금의 산서성 태원시) 사람이고, 자는 회영(懷英)이다. 당고종, 무측천의 두 황제시대를 거치면서 일생동안 관료생활을 하였고, 청렴하며, 사람을 잘 기용하고, 사건을 잘 처리했으며, 간악한 자들을 제거했다. 원래 혼란스러웠던 .. 2015. 2. 10.
무측천은 왜 다섯 오빠를 모두 죽였는가? 글: 무만란강(霧滿攔江) 당나라역사를 아는 사람이면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무측천은 일찌기 이당(李唐)의 천하를 무주(武周)의 천하로 바꾼 바 있다. 그녀에 대하여 잘 모르고 있는 것은 무씨집안을 위하여 천추기업을 닦고자 했던 무측천이 무씨집안의 그녀와 같은 배분의 5명의 남자.. 2015. 2. 10.
무측천은 왜 이씨에게 천하를 돌려주었는가? 글: 위석아(危石兒) 재초2년(690년) 구월 초구일, 많은 여론조작을 통하여 분위기를 형성한 후에, 무측천은 백관과 황실, 종실인척등 육만여명이 보는 가운데 황제의 보좌에 오른다. "신성황제"라 칭하며, 국호를 당(唐)에서 주(周)로 바꾸여 이당의 황권을 끝이 난다. 그리고 이현은 황위후.. 2015. 1. 14.
딩니라때 사람들은 상관완아(上官婉兒)를 어떻게 평가했는가? 글: 조염(趙炎) 차문도장리(借問桃將李), 상란욕하여(相亂欲何如) 이것은 무주(武周)시대 여관 상관완아의 응제시(應制詩)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1300년이 지난 오늘날, '당고소용상관씨묘(唐故昭容上官氏墓)'가 발굴되면서, 우리는 마찬가지로 묻고 있다. 상관완아, 도대체 어떤 여인인가?.. 2014. 4. 4.
무측천은 임종전에 무엇을 하였는가? 글: 복녕객(福寧客) 생명의 마지막 순간에, 무측천의 심정은 처량했을 것이다. 그녀가 여황제로 있을 때, 모든 것은 더할 나위없이 신비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무측천은 자신이 하늘과 통한다고 여겼고, 할 수 없는 일이 없다고 여겼다. 어찌된 일인지는 몰라도, 사서에서는 무측천이.. 2013. 12. 8.
무삼사(武三思)의 처세명언: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다" 글: 독서삼매(讀書三昧) 무삼사가 한 처세명언이 있다: "(나는) 좋은 사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그저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다(不知何等名作好人, 唯有向我好者, 是好人耳)"(<구당서.무삼사열전>). 그의 말을 들으면, 아주 실제적이다. 어떻게 들어도 조조의 그.. 2013. 11. 10.
이융기(李隆基)가 상관완아(上官婉兒)를 살해한 역사진상 글: 중천비홍(中天飛鴻) 상관완아는 당고종때 조정중신인 상관의(上官儀)의 손녀이다. 14살때 총혜선문(聰慧善文)으로 일대여황 무측천에게 중용되어, 궁중의 문서업무를 여러해동안 관장하며, "건괵재상(巾幗宰相)"으로 불린다. 당중종때, 소용(昭容)에 봉해지고, 권세가 중천에 뜬 .. 2013. 4. 13.
당중종: 세명의 여인에게 시달린 가여운 천자 글: 중천비홍(中天飛鴻) 천자(天子)는 하늘의 아들이다! 손에는 천지를 욺켜쥐고, 앉아서 천하를 호령한다.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어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으며, 더더구나 삼천미녀가 곁에서 시중을 든다. 고대에 황제의 보좌에 오르는 것을 꿈꾸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역대왕조에서 왕이 .. 2008. 10. 10.
신룡정변(神龍政變): 무측천의 최후의 나날 (II) 5 소위 "남총(男寵)"은 바로 면수(面首)이며, 자신의 몸을 가지고 권세를 가진 여자를 기쁘게 하는 남자를 말한다. 무측천도 정상적인 생리적 욕구가 있고, 거대한 심리적 압력을 받았다. 복잡한 정무를 처리한 후에는 그녀도 안위가 필요했다. 누군가 곁에 있어주어야 했다. 나이가 들면서, 무측천은 권.. 2008. 10.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