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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당)

진자앙(陳子昻)은 왜 무삼사(武三思)에게 죽임을 당했는가?

by 중은우시 2018. 2. 13.

글: 정호청천(鼎湖聽泉)


초당(初唐)의 저명한 시인 진자앙은 아직 이름을 떨치지 못했을 때 다른 사람들을 본받아 상경한다. 고향인 사천(四川)에서 당시의 도성인 장안(長安)으로 간다. 장안에는 문학거장이 많았으므로, 자신도 운이 좋으면 문학계의 거두에게 인정을 받아 이름을 날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장안으로 간다.


진자앙이 막 장안에 도착하였을 때, 그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다행히 그의 집은 사천의 부잣집이었다. 그리하여 장안에 도착하자마자 고급여관에 머문다. 다만 장안의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가 아무리 학식이 많더라도 문학계의 거두를 만날 수도 없었다. 그리하여 매일 술로 외로움을 달래고 있었다. 그러면서 매일 자신이 지은 유명하지도 않은 싯구를 읖조렸다.


하루는, 진자앙이 술을 마시고 나서 할 일이 없어 길거리의 풍경을 구경하러 나섰다. 그런데 갑자기 앞에서 사람들이 가득 몰려들어 있었는데, 가서 보니 금(琴)을 파는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괴이한 일은 분명 보통의 낡은 금인데, 가격은 백만을 부르고 있었다. 당연히 살 사람을 구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낡은 금을 백만에 팔려고 하다니 이것은 확실히 보통 일은 아니다. 설마 이 것이 전설에 나오는 <고산유수>음악을 종자기(鍾子期)에게 들려주었다는 그 백아(伯牙)의 금이라도 된단 말인가? 그래서 이 소식은 온 장안에 퍼져간다. 재미난 구경거리를 좋아하는 장안이 사람들은 속속 몰려와서 이 백만짜리나는 낡은 금을 보러왔다. 그중에는 고관대작의 자제도 있었다. 총명한 진자앙은 여기서 기회를 느낀다.


기회는 항상 준비하고 있는 사람에게 온다. 그리고 진자앙은 그 기회를 잡았다.


그리하여 그는 전혀 망설임없이 이 고가의 낡은 금을 사들인다. 그의 호방한 행위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된다. 그가 바란 것은 바로 그런 효과였다. 과연 여론조작에 능한 매체의 고수같았다. 놀라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는 사람들은 즉시 진자앙이 금을 잘 타는 고수라고 여기고, <고산유수>같은 고아한 음악을 하나 타서 들려달라고 아우성친다. 기실 그는 음악이라고는 전혀 알지 못하는 문인일 뿐이다. 취옹지의부재주(醉翁之意不在酒)이고 양머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파는 식이었다. 사람들이 이렇게 관심을 나타내고 열정적이니 그가 바라던 효과는 이미 이룬 셈이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말한다: "만일 여러분들에게 흥취가 있다면, 내일 의양(宜陽)으로 와서 한번 들어시지요." 그리하여 사람들은 내일을 기약하며 흩어진다.


다음 날, 구경거리를 즐기는 장안사람들은 전날 얘기한 장소로 온다. 진자앙은 먼저 연석을 깔아놓고 좋은 술과 안주를 준비해서 사람들에게 맛을 보게 해준다. 사람들은 모두 감사해하면서 술과 음식을 즐겼고, 분위기는 달아오른다. 


그 후에 진자앙은 시기를 놓치지 않고 백만이나 들여서 산 낡은 금을 탁자 위에 올려 놓는다. 그리고는 말을 시작한다.


"여러분. 저는 진자앙이라고 합니다. 사천에서 꿈을 쫓아 천리 먼 장안으로 왔습니다. 이유는 인정을 받고 싶어서입니다. 여러분에게 솔직하게 말하자면, 저는 음률에 정통한 음악인이 아닙니다. 백축이 넘는 시를 쓴 문학청년입니다. 이번에 장안에 온 것은 지음을 찾기 위해서 입니다. 이 금은 비록 귀하지만, 그저 노래부르는 도구일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같은 문인에게 있어서는 별다른 관계가 없습니다. 이것이 아무리 귀하더라도 우리 문인들에게는 쓸데없는 물건일 뿐입니다. 남겨서 뭘하겠습니까. 짐만 될 뿐입니다." 진자앙은 말을 마치자, 금을 높이 들어서 땅바닥에 내려친다. 금은 즉시 산산조각이 난다. 구경하던 사람들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한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백만짜리 금을 부순 댓가인 것이다. 이어서 진자앙은 쇠뿔도 단김에 뺀다고 일찌기 이름없던 자신의 시문을 광고처럼 길거리에서 모든 사람에게 뿌린다. 이렇게 하여 그는 일거에 이름을 날린다. 모두 그의 시문을 읽고는 고개를 끄덕이고 손뼉을 치며 좋다고 외친다. 이렇게 하여 진자앙은 명성이 올라가고 시단의 총아로 떠오른다.


나중에 그는 무측천의 친척인 건안왕(建安王) 무유의(武攸宜)를 따라 거란을 정벌할 때 이런 시를 쓴다: "전불견고인(前不見古人), 후불견래자(後不見來者), 염천지지유유(念天地之悠悠), 독창연이체하(獨愴然而涕下)" 이는 우의가 깊고 철리가 심원하여 과연 천고절창이 된다.


무측천 성력원년(698년), 부친의 병위 위중하여 38세의 진자앙은 관직을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얼마후 부친은 죽는다.


3년상 기간동안, 성격이 강직했던 그는 여러번 상소를 올려 직언한다.(그는 이로 인하여 좌천된 바도 있었다). 그는 여러 고관대작들을 공격할 뿐아니라, 심지어 무측천의 정책까지도 비난한다. 그리하여 조정의 고관대작들은 모두 그를 눈엣가시로 여긴다. 그리하여 권신 무삼사는 그를 제거하기로 마음먹고, 사홍현령(射洪縣令) 단간(段簡, 내준신에게 처첩을 빼앗긴 그 재수없는 단간과 동일인인지 아닌지는 알지 못한다)을 시켜 죄명을 만들어 엮고, 잔혹하게 박해하여 결국 옥중에서 억울하게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