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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무측천)

무측천 사후에 무씨집안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by 중은우시 2017. 10. 17.

글: 자야비설2013(子夜飛雪2013)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무측천이 죽은 후, 무씨가족이라는 이 왕조를 뒤집어엎으려 했던 가족은 바로 멸문을 당했을 것이라고. 그러나, 역사는 가끔 예측불허이다. 사실상 이당황실이 복위한 후, 무씨가족은 여전히 잘 나갔다. 이씨가족보다도 더 잘나갔다!


무씨가족은 무측천의 대부터 시작해야 한다. 무측천에게는 두 명의 동부이모의 오빠가 있었다. 각각 무원경(武元慶)과 무원상(武元爽)이다. 그녀와 그녀의 모친에 대하여 좋게 대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무측천은 황후에 오른 후, 이 두 명의 오빠를 멀리 쫓아보내버린다. 눈앞에 띄지 않으면 신경쓸 일이 없는 것이다.


아마도 쫓아보낸 곳이 너무나 멀고 너무나 황량했던 것같다. 고대에는 여건도 좋지 않았다. 무원경은 막 도착하자마자 죽어버린다. 그의 동생인 무원상은 그보다는 약간 나았다. 정말 약간만 나았다. 무원상은 그곳에 도착한 후에도 이러지리 날뒤었다. 무측천은 그 꼴을 그냥 보고있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를 다른 곳으로 보내버린다. 이어서 그도 죽어버린다. 이제 무측천과 같은 배분의 형제는 한 명도 남지 않는다.


친형제는 없어졌지만 당형제(堂兄弟)도 그냥 두지 않았다. 무측천에게는 두 명의 재수없는 당오빠가 있다. 무유량(武惟良)과 무회운(武懷運)이다. 이들은 무측천의 음모에 희생되엇다. 어덯게 된 일인가? 당시 이치(당고종)는 무측천의 친외조카딸 하란씨(賀蘭氏)를 좋아했고, 무측천은 아주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일석이조로 무유량형제가 하란씨에게 보내는 음식에 독을 넣는다. 이렇게 하여 하란씨를 제거했을 뿐아니라, 눈에 거슬리는 무유량 형제도 없애버린다.걸림돌을 제거했다고 해도 좋은데, 무측천은 이들 형제의 성까지 바꿔버린다. "복(蝮,살모사)"이라고. 


무측천은 이렇게 친정사람들을 싫어했다. 그렇가면 그녀가 황후에 오른 후, 그의 부친 무사확에게 내린 주국공(周國公)이라는 작위는 어떻게 할 것인가? 무측천은 친정은 없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녀의 친언니의 아들인 하란민(賀蘭敏)으로 하여금 양자로 들어가게 하여 주국공의 작위를 승계하게 만든다. 하란민은 일을 잘 처리하지 못하여, 나중에 무측천을 골치아프게 만든다. 그래서 그도 끝장난다.


하란민의 죽음은 바로 무씨집안에 전기를 마련해준다. 하란민이 죽자, 부친의 작위를 계승할 사람이 없어졌다. 그리하여 무측천은 유배지에서 그의 둘째오빠 무원상의 아들 무승사(武承嗣)를 불러와서 주국공의 작위를 승계하게 한다. 이어서 무측천은 한걸음 한걸음 권력을 차지해간다. 무씨가족들도 모두 고위직에 오른다. 무측천이 황제에 오른 후에 이들 크고 작은 무씨집안 사람들은 모두 왕에 봉해진다.


앞에서 말한 무승사는 무측천 둘째오빠의 아들이다. 그는 자신의 친아버지에게 추봉된 위왕(魏王)이라는 작위를 승계한다. 이 위왕은 황태자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무측천이 허락하지 않는다. 마지막에는 우울증에 빠져 죽는다. 큰아들 무연기(武延基)가 위왕을 승계한다. 그도 무측천에게 골치거리였고, '자살을 하게 만든다. 무측천은 무승사의 둘째아들 무연의(武延義)로 하여금 작위를 승계받게 한다. 또 다른 아들인 무연수(武延秀)는 회양군왕(淮陽郡王)이 된다.


대명이 자자한 무삼사(武三思)는 무측천의 큰오빠 무원경의 아들이다. 자신의 부친에게 추봉된 양왕(梁王)의 작위를 승계한다. 차남 무숭훈(武崇訓)은 고양군왕(高陽郡王)에 봉해진다. 무씨의 다른 사람들은 잠시 거론하지 말기로 하자.


이현이 어렵게 황제에 다시 오른 후, 여러 신하들은 무씨집안의 왕의 작위를 취소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현은 무씨집안에 대하여 호감이 있었서 그렇게 하지 않고, 그저 등급을 한단계 내려서, 왕은 군왕으로 군왕은 국공으로 내린다.


무숭훈은 안락공주(安樂公主)를 취한다. 그 결과 나중에 안락공주와 무연수가 좋아하게 되고, 무숭훈이 죽자, 안락공주는 무연수에게 시집간다. 모두 알다시피 안락공주는 무측천의 총애를 많이 받았다. 그래서 처로 인하여 남편도 귀해진다. 무연수는 안락공주를 따라서 잘나가게 된다. 그러나, 안락공주의 친어머니 위후(韋后)가 피살되자 이 부부의 운도 끝이 난다.


무삼사에 대하여 얘기해보자. 그는 더욱 대단하다. 이현의 신뢰를 얻는다. 심지어 이현의 복위를 도운 경휘(敬暉)등도 좌천된다. 그리고 이전에 경휘등에게 쫓겨났던 심복들이 다시 발탁되어 돌아온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를 따르는 자는 흥하고, 나를 거스르는 자는 망한다. 그는 권력이 조야를 뒤흔들었다. 무측천이 살아있을 때와 별 차이가 없었다. 당시의 태자는 이중준(李重俊)인데, 무삼사나 안락공주의 상대가 되지 않아서, 스스로의 지위가 불안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반란을 일으킨다. 무삼사, 무숭훈 및 그의 일당 십여명을 죽이고, 마지막에는 실패하고 죽는다.


친아들이 죽었는데, 이현은 무삼사를 위하여 조정을 5일간 파하고, 무삼사에게 양왕(梁王)의 작위를 추봉한다. 무숭훈은 노왕(魯王)에 추봉된다. 안락공주는 심지어 오빠인 이중준(李重俊)의 수급을 들고 가서 무삼사와 무숭훈을 위하여 제사지낸다. 이현의 조대에 무씨집안은 아주 잘 나갔다.


이단(李旦)이 즉위하면서, 무삼사등은 모역으로 규정되며, 무씨집안사람들의 운이 다하여 피살되고 무너진다. 그러나 그 중에도 두명은 특수하다.


한 사람은 태평공주의 남편인 무유기(武攸)이다. 이단이 즉위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죽는다. 죽은 시기도 잘 잡았고 거기에 대단한 마누라까지 있었다. 그는 정왕(定王)에 추봉된다. 그러나 태평공주가 나쁜 짓을 하면서 그의 봉분도 파헤쳐진다.


또 한 사람은 무유서(武攸緖)이다. 그는 전설적이다. 그는 무측천이 죽인 무유량의 아들이다. 무측천이 재위하고 있을 때, 무유서는 군왕에 봉해진다. 그러나 그는 금방 관직을 버리고 숭산에 은거한다. 이현이 즉위하자, 그를 불러서 관직을 내린다. 그러나 돌아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그는 관직을 버리고 은거한다. 그리하여, 이단이 즉위한 후 무씨집안 사람들에게 손을 쓸 때도, 그는 괜찮았다. 심지어 이단은 명을 내려 그를 칭찬한다. 그는 69세에 천수를 다하고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