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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태후15

서태후는 자신이 죽은 후의 일을 어떻게 안배했는가? 글: 중천비홍(中天飛鴻) 자희(慈禧), 만주족. 예허나라씨. 안휘 휘냥 지광태도, 증삼등승은공 혜징(惠徵)의 딸. 옥첩(玉牒), 즉 황족족보에 기록된 내용은 이러하다: "예허나라씨. 혜징의 딸" 아명은 난아(蘭兒)이며, 예허나라가족중에서는 그녀가 행아(杏兒)라고 불리웠다. 함풍원년, 즉 1851.. 2018. 2. 19.
동치황후(同治皇后)의 죽음 글: 등해춘(鄧海春) 운명이 비참했던 청나라 황후를 들자면 아마도 사람들은 마지막 황후 완용(婉容)을 떠올릴 것이다. 완용은 확실히 운명이 비참했고, 시신이 어디에묻혔는지도 찾을 수가 없어서 마지막 국구(國舅)인 곽포라 윤기(郭布羅 潤麒)의 동의를 받아 2006년 "초혼"의 방식으로 .. 2017. 12. 21.
한헌제(漢獻帝): 삼국시대 시종 여인들의 보호를 받은 인물... 글: 정정(丁丁) 만일 삼국의 역사를 자세히 읽어보면 알아차릴 수 있다. 이런 남자가 한 명 있다. 그는 절대로 삼국시대의 핵심인물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한때 국가의 영혼이었고, 그의 존재는 하나의 왕조의 존재를 의미했다. 비록 그저 상징일 뿐이지만, 그리고 허수아비로 불리웠지만.. 2017. 1. 25.
하태후(何太后)의 수학문제 글: 조염(趙炎) 삼국난세의 원인에 관하여 후세인들은 대부분 한영제의 "폐사입목(廢史立牧, 자사를 없애고 주목을 둔 것)"과 동탁(董卓)의 시대를 역행한 조치에서 찾는다. 기실, 전자는 황건적의 난때부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것이다. 태상 유언(劉焉)이 한 말처럼 "사방에서 반란이 .. 2015. 11. 2.
[황자쟁위술] 투량환주술(偸梁換柱術) 후전황지패(后傳皇旨牌) 서태후편 청나라말기 중국을 반세기동안 통치했던 서태후 예허나라씨(葉赫納拉氏)는 원래 수녀(秀女)선발로 황궁에 들어가 함풍제(咸豊帝)를 모셨다. 그녀는 총명하여 점차 함풍제의 총애를 받는다. 마침 황후는 아들을 낳지 못하여, 하마터면 함풍제는 대가 끊어질 뻔한다. 함풍제가 아들을 학수.. 2015. 10. 11.
함풍제는 임종전 십일간 권력분배방안을 어떻게 설계했는가? 글: 역사상나사사(歷史上那些事) 황위계승자문제에 대하여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함풍제는 아들이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즉, 서태후(자희태후)가 낳은 재순(즉, 나중의 동치제)뿐이다. 그러므로, 옹정제때 만든 비밀건저(秘密建儲)도 실시할 필요성과 가능성이 없었다. .. 2012. 9.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