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때 사람들은 "무측천시대"를 언제부터 언제까지로 보았는가? 글: 독사품생활(讀史品生活) 모두 아는 바와 같이, 무측천의 인생궤적은 여러 중요한 시간들이 있었다. 638년 입궁하고, 649년 감업사로 출가하였으며, 655년 황후에 오르고, 674년 천후(天后)에 올랐으며, 다시 683년 임조칭제(臨朝稱制)하고, 690년에는 처음으로 황제를 칭한다....이렇게 말할 .. 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무측천) 2019.05.28
중국의 사자(獅子): 중국에 사자는 살지않는데, 석사자(石獅子)를 만든 이유는? 글: 노하(老何) 수문사자(守門獅子)는 중국전통건축에서 빠질 수 없는 조각이다. 그러나, 중국에는 사자가 살지 않는다. 역대장인들은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이를 만들게 되었을까? 현존하는 사자의 조형을 보면, 진실한 사자와는 거리가 멀다. 둘 사이에 공통점이 없어서, 의문이 든다: .. 중국과 문학/중국의 전설 2019.02.07
명십삼릉의 정릉(定陵): 가장 참혹한 고고학적 비극 글: 이상국(理想國) 지나간 세월에서 고고학은 일찌기 영웅의 사업이었다. 그리고 일찌기 적막한 사업이었다. 대다수의 고고학자들은 휘황한 인생경력을 누릴 수 없다. 그래서 하나의 중대한 고고학적 발견은 그들에게 있어서, 상상할 수 없는 흡인력이 있다. 이런 감정은 많은 기적을 만.. 중국과 문화/중국의 고고 2018.09.27
돈황학(敦煌學)이란? 글: 자주군(煮酒君) 많은 사람들은 여추우(余秋雨)의 문화고려(文化苦旅)를 읽어보았을 것이므로, <도사탑(道士塔)>에 대하여 기억이 생생할 것이다. 그래서 왕도사(王道士)에 대하여는 불만이 클 것이고, 그는 민족의 패류(敗類)라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문학창작과 역사진상이 반드.. 중국과 문화/중국의 고고 2015.12.14
정릉(定陵): 차마 돌아볼 수 없는 고고발굴의 비애 글: 악남(岳南) 정릉(定陵)의 발굴은 1956년부터 시작한다. 북경시부시장 오함(吳晗)은 주은래 총리에 보고를 해서, 명십삼릉을 발굴하겠다고 하였다. 오함은 유명한 명나라역사학자이다. 문혁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모두 이 인물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가 쓴 <<해서파관(海瑞罷.. 중국과 문화/중국의 과거 2009.12.24
돈황 막고굴 : 100년전에 한 영국인이 다녀가다 1907년 6월, 고고탐험가인 스타인(Stein)은 돈황의 장경동에서 29개의 큰 상자에 문화재를 담아서 가져갔다. 스타인이 돈황을 떠날때의 광경은 장경동 문화재가 흩어질 운명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스타인은 이미 그가 유럽으로 돌아가면 그가 꿈에도 그리던 명예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예감하고 있었.. 중국의 지방/중국의 명소 (북부) 2007.03.23
황소(黃巢)의 죽음에 얽힌 이야기 황소는 최치원의 <<토황소격문>>으로 우리에게는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런데, 그의 죽음에 관하여 오래전부터 여러가지 서로 다른 기록이 남아 있다. 우선은 당나라역사에 대하여 적은 <<신당서>>와 <<구당서>>의 기재가 서로 자살과 타살로 다르게 기재되어 있.. 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황소) 2006.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