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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신45

"애국자"와 "깡패삼철칙" 글: 풍만만(風慢慢) ​ 1 ​ 노신(魯迅)은 라는 글에서, 깡패의 기원을 "묵자의 제자(墨子門徒)"들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즉, "협(俠)"이다. "협"이 되려면 요구조건이 까다롭고, 사망율도 높고, 보답은 낮았다. 그래서 강도로 변신한다. 그렇지만 계속하여 "체천행도(替天行道)"라는 깃발은 여전히 들고다닌다. ​ 나중에 협기(俠氣)가 있는 사람들이 점차 사라지면서 노예근성이 주류로 된다. 그리하여 강도짓을 해서는 안전하지 않으므로, 깡패로 변신하게 된다. ​ 깡패들이 평소에 무슨 일을 하는가? 노신은 이렇게 설명했다: ​ "스님들이 술을 마시면 그가 때린다, 남녀가 간통을 하면 그가 붙잡는다. 매춘을 하면 그가 능욕한다. 그것은 선량한 풍속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시골사람이 조계의 규정을 모르면 그.. 2024. 3. 13.
중국은 세계의 중심이 아니다 글: 주한경(周漢卿) 누군가 블로그글에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 러빠이건 우빠이건 왜 모두 중화빠일까? 내가 이 블로거의 질문에 답을 하겠다. 그 답은 바로, 중국은 세계의 중심이 아니고, 중국인은 더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러시아를 지지하거나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것은 구미사회의 두 가지 정치역량이다. 중국인은 구미사회의 주변인이고, 그저 피동적으로 받아들여야할 뿐이다. 근대이래, 국제질서의 중심은 계속하여 유럽과 서방이었다. 세계의 다른 지역은 그저 피동적으로 서방질서를 받아들여야 했다. 동아시아지역이 특히 대표적이다. 1848년이후, 민족국가는 유럽에서 주류가 되고, 세계의 다른 지방으로 확산하게 되며, 동아시아지역까지 확산된다. 일본은 유럽을 모방하여, 민족국가를 건립했다. 독프전쟁이후, 독일민족이 .. 2023. 10. 5.
원위시(袁偉時): 진실된 말을 하고, 자기의 말을 하라. 원위시, 중산대학 철학과 은퇴교수, 중국근대사 전문가. 2010년 12월 15일, 중산대학 철학과 은퇴교수 원위시의 80세 생일이었다. 자칭 "80후"라는 이 노소년은 자신의 생일에 이런 말을 남겼다: "소간진효(笑看塵囂), 해설취설(該說就說)!"(소란스런 속세는 웃어넘기고, 해야할 말은 하도록 하자). 원위시는 같은 세대의 지식인들과 마찬가지로 인생의 후반부에 이르러 정신과 사상의 각성을 하게 되었다. 그는 처음에 경제학을 공부했고, 그후 철학을 공부했다. 그후에는 근대사상, 근대사를 연구했다. 한걸음 한걸음 분야를 개척하면서, 목소리를 냈고, 최종적으로 학계내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 원위시의 진정한 학술생애는 '문혁'이후부터 시작된다. 는전체 사상문화사분야를 개척한다. 은 전통학계의 근현대사.. 2023. 5. 4.
모벽강(冒辟疆): <홍루몽>의 진정한 작자 글: 주한경(周漢卿) 먼저, 가장 먼저 모벽강이 의 작자라고 주장한 사람은 계림재자(桂林才子) 증절명(曾節明) 선생이다. 증절명 선생의 문학적 소양은 아주 뛰어났다, 그는 의 내용을 통하여 모벽강이 진정한 작자라고 판단했다. 필자는 비록 십여년전에 의 작자가 모벽강이라고 추측했지만, 필자는 교과서에 도전할 용기가 없었다. 오늘 증절명 선생이 필자와 거의 비슷한 견해를 가진 것을 보고나서, 이 글을 쓸 용기가 생겼다. 필자는 증절명 선생을 높이 평가한다. 그는 사람됨이 정직하고, 인생의 추구가 있으며, 오성(悟性)이 아주 뛰어나다. 필자가 모벽강이 의 작자라고 판단한 것은 논리로 추론하여 얻어낸 것이지, 문학을 통한 것이 아니었다. 필자의 문학적 소양은 증절명 선생의 십분의 일에도 못미친다. 필자가 을 읽.. 2023. 4. 22.
강청의 전남편 당납(唐納): 신비한 신분의 수수께끼 (1) 글: 하월명(賀越明) 2012년 8월 23일은 당납 선생의 기일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지 꼬박 24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당납"이라는 이름은 알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사인방"이 타도되면서, 나라를 떠난지 오래되고 이름없이 살아가던 그가 다시 중국인들의 시야에 들어왔고, 보통민중들이 화제로 올리는 인물이 되었다. 일찌기 "사랑때문에 목숨을 버리려 했다" 1970년대말부터 현재까지, 신문잡지에는 당납을 소개하는 글이 적지 않았다. 수가 많아서 일일이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총괄해서 말하자면, 이들 글 중에서 이전에 당납과 함께 일한 적이 있는 몇몇 언론종사자들의 회고한 내용을 제외한 나머지 글들은 대부분 포풍착영(捕風捉影)하거나 다른 사람의 글을 베낀 수준이었고, 적지 않은 글들은 .. 2023. 3. 4.
중국은 세계관을 바꿀 수 있었던 4번의 역사적 기회를 모두 놓쳤다. 글: 갈조광(葛兆光)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복단대학의 교수 갈조광입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과 얘기할 주제는 고대의 중국인들은 어떻게 세계를 인식했는지, 이런 세계인식의 관념과 방법이 역사상 바뀌어질 기회는 없었는지, 이런 관념과 방법은 오늘날의 중국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입니다. 간단하게 얘기해보면, 고대에 특히 선진(先秦, 진시황의 천하통일이전)시대에 이미 고대중국인들은 중국을 인식하는 약간의 특색이 나타났습니다. 처음 고대 중국인의 상상 속에서 천하는 구주(九州)와 그 주변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구주는 소위 기주(冀州), 연주(兖州), 청주(靑州), 서주(徐州), 양주(揚州), 형주(荊州), 예주(豫州), 양주(梁州), 옹주(雍州)이다. 대체로 현재 중국의 핵심지역혹은 주로 한족인 중국인.. 2023. 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