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서제87 융유태후: 1911년 대청제국의 막을 내리다. 글: 진원(陳遠) 1911년은 신해혁명이 일어난 해이다. 수천년동안의 왕조교체와 달리, 도태되는 청황실은 ‘연착륙’을 실현한다. 이뿐아니라, 더욱 중요한 점은, 신해혁명은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성공적인 정치적 변혁을 이루었고, 신구사회집단이 교체하는 가운데 사회변혁도 완성했다는 것이다. 이.. 2010. 12. 29. 영수공주(榮壽公主): 중국의 마지막 공주 작자: 미상 고륜영수공주(固倫榮壽公主, 1854-1924)는 도광제의 여섯째 아들 공친왕(恭親王)의 장녀이다. 함풍4년 이월 초이틀(1854년 2월 28일) 사시(巳時)에 적푸진(嫡福晉, 정실부인) 과얼자(瓜爾佳)씨에게서 태어났다. 함풍11년 십이월초아흐레(1862년 1월 8일), 양궁황태후(동태후, 서태후)는 .. 2010. 4. 13. 만청궁녀회고록: 궁녀들은 서태후를 어떻게 모셨는가? 글: 침묵과담 궁내에서 그녀의 칭호는"영아(榮兒)"였다. 13살때 입궁한 그녀는 서태후를 8년간이나 모셨다. 18세때 서태후가 그녀를 한 태감에게 시집가도록 정해주었다. 그후 세상이 바뀌면서, 그녀의 생활도 이곳저곳을 떠돌고, 더욱 비참하게 되었다. 그녀는 옛날 이야기를 하기를 극도로 꺼렸다. 필.. 2010. 4. 6. 광서황제(光緖皇帝)와 메이지천황(明治天皇) 글: 왕룡(王龍) 중일양국의 근대사상, 광서와 메이지라는 두 역사인물은 하나는 대국의 구오지존인 황제였고, 다른 하나는 협소한 섬나라의 '만계일세'의 천황이었다. 19세기중엽 마찬가지로 서양열강에 의하여 나라의 문을 열도록 핍박받는 위급한 시기에 그들은 변법유신을 실행하여 위기를 만회해.. 2009. 12. 18. 강유위(康有爲)의 세번의 서태후 암살시도 글: 수은하(水銀河) 속담에 "수재조반, 십년불성(秀才造反, 十年不成, 수재가 반란을 일으키려면 십년이 지나도 이룰 수 없다)"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강유위에게 쓰면 딱 들어맞는다. 그는 전형적인 서생이다. 강유위는 정의감과 개인적인 호오를 가지고 일을 처리했다. 서태후와 영록등 실권자들.. 2009. 10. 26. 서태후와 중국혁명 글: 천인합일(天人合一) 영여우방, 불여가노(寧與友邦, 不與家奴) 차라리 우방에게 넘겨줄 지언장, 집안노비에게 넘겨주지는 않겠다. - 서태후 100년전의 오늘 1908년 11월 15일, 서태후가 서거했다. 그녀가 죽기 하루전에 그녀는 광서황제를 독약을 죽였다(자백해둔다. 본인은 역사의 구체적인 상황을 잘 .. 2008. 12. 9. 이전 1 ··· 10 11 12 13 14 1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