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우126 제갈량은 위연을 어떻게 배척하고 탄압했는가? 글: 호각조(胡覺照) 위연은 유비집단의 철간(鐵杆)중 하나이다. 일찌기 유비가 탁주(涿州)에서 무장을 조직하여 황건적의 난을 진압할 때, 위연은 바로 그 중의 한 명이었다. 즉 유비집단의 철간중 한 명이다. 이는 유비의 임명에서도 엿볼 수 있다. 219년, 유비는 스스로 한중왕(漢中王).. 2015. 1. 14. 제갈량이 건립한 형주적(荊州籍) 방파체계 글: 호각조(胡覺照) 형주(荊州)의 패배와 이릉(夷陵)의 패배라는 두 번의 타격을 입은 후, 서촉(西蜀)은 인재결핍이 더욱 두드러진다. 제갈량이 국가를 운영하는 초기에 이로 인하여 골머리를 앓는다. <화양국지>의 기록에 따르면, 서촉은 일찌기 성도의 남쪽에 높은 누대를 지어 사방.. 2014. 12. 16. 장비와 조운은 누가 더 강한가? 글: 이치아(李治亞) 모두 삼국의 명장이지만, 어떤 사람은 장비와 조운중 누가 강한지를 묻기도 한다. 답안은 마치 나와 있는 것같다. 조운이 강하다고. 왜냐하면 역대이래로 이런 말이 있기 때문이다: 일여이조삼전위(一呂二趙三典韋), 사관오마육장비(四關五馬六張飛). 1위가 여포, 2위.. 2014. 12. 12. 황건적의 난 이후의 5년(1): 의의 글: 낙극(洛克) 장각(張角)이 이끄는 '황건적의 난"은 난을 일으킨 해에 동한정권에 의하여 진압된다. 이 점에 있어서 이전 두 왕조말기의 농민의거와는 확실히 다르다. 진말과 서한말기(정확히 말하면 왕망의 신말기)의 농민의거는 모두 난이 일어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원래의 정권이 .. 2014. 12. 12. 유비는 '적벽대전'을 이용하여 어떻게 자신의 세력을 키웠는가? 글: 동호소주(東湖少主) 유비의 가장 열정적인 시기는 적벽대전을 전후해서일 것이다. 이전에 그는 아무 것도 지닌 것이 없고, 어느 곳도 머물 곳이 없었다. 사방을 돌아다니면서 이사람 저사람에게 의탁했으며,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면서 살아야 했다. "황숙'이라는 명분은 그럴 듯하기.. 2014. 6. 23. 관우의 "참안량주문추(斬顔良誅文醜)의 배후사정 글: 동호소주(東湖少主) 이런 말이 있다: "예고인담대(藝高人膽大)" 기예가 뛰어나면 담량이 커진다. 전투를 함에 있어서는 첫째는 무예에 의존하고, 둘째는 담량에 의존해야 한다. 특히 단병접전때 동등한 무예실력인 상황하에서는 좋은 심리소질을 지니는 것이 최종승리를 거두는 결정.. 2014. 5. 30. 이전 1 ··· 11 12 13 14 15 16 17 ··· 2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