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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삼국)

장비와 조운은 누가 더 강한가?

by 중은우시 2014. 12. 12.

글: 이치아(李治亞)

 

모두 삼국의 명장이지만, 어떤 사람은 장비와 조운중 누가 강한지를 묻기도 한다. 답안은 마치 나와 있는 것같다. 조운이 강하다고. 왜냐하면 역대이래로 이런 말이 있기 때문이다: 일여이조삼전위(一呂二趙三典韋), 사관오마육장비(四關五馬六張飛). 1위가 여포, 2위가 조운, 3위가 전위, 4위가 관우, 5위가 마초, 6위가 장비라는 것이다. 기실 이것은 모두 소설의 이야기이다. 역사의 이야기는 아니다. 삼국시대 실제상 두 무장이 직접 말을 타고 대진하면서 1 대 1로 싸우는 것은 아주 적었다. 삼국연의에서 관우의 무공은 절정이고 수도 없이 많이 싸우면서 용맹하며 무적이었다. 백만대군 가운데에서도 적장의 수급을 취할 수 있었다. 실제역사에서 실제역사에서 1:1로 싸운 경우는 거의 없었다. 고증해보면 적군무장과 1:1로 싸운 것은 딱 1번 있었고, 거기서 이겼다. 그리고 후작의 봉호를 얻는다. 그 재수없는 피해자인 상대방 적장은 바로 안량(顔良)이다. 그외에 상국시대에는 등자가 없었다. 그래서 무장들은 한손으로 고삐를 잡아야 비로소 말 위에 안정적으로 앉아있을 수 있었다. 그래서 대도(大刀), 사모(蛇矛)와 같은 장병기는 쓸 수가 없었다. 그저 검(劍)만을 쓸 수 있었다. 앞의 두 가지에 비추어보면 상당히 실망적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전신은 그다지 용맹무쌍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사에 기록이 없으니 그럼 소설이라도 보자:

 

삼국연의 전기의 무장은 확실히 무위가 대단했다. 많은 경우 모두 만인적(萬人敵)이다. 일찌기 사망한 여포 외에, 조조 편에는 장료, 허저, 전위, 서황, 하후돈, 하후연, 장합이 있고, 유비 편에는 관우, 장비, 조운, 마초, 황충, 위연이 있다. 손권 편은 약간 뒤떨어지는 것이지만 내놓을 만한 사람으로는 태사자, 감녕이 있다. 그 뒤에는 황개, 정보, 능통, 한당이 있다. 확실히 여포가 공인된 천하제일인 것을 제외하고, 가장 유명한 무장을 고르라면 바로 유비의 오호상장일 것이다.

 

관우: 안량, 문추를 참하고, 과오관참육장을 하고, 청룡언월도 한 자루로 천하에 이름을 울렸다. 그의 무력은 모두가 알고 있다. 조조가 자신의 휘하의 장수들이 그렇게 많음에도 오로지 그를 좋아하지 않는가.

 

장비: 그는 절대로 허풍으로 만들어진 사람이 아니다. 원래 그는 도살집안출신이다. 그래서 장점이 있다. 피를 보는데 익숙하고 담량이 크다. 매번 가장 용맹하고 가장 큭 소리친다. 모습만 봐도 겁이 날 정도이다.그래서 단기로 조조 수하의 대장을 놀라자빠지게 만들었다. 조조 본인조차도 그의 십여만대군과 함께 놀라서 죽어라 도망쳤다. 그외에 장비는 사람들에게 포위만 되면 눈이 벌개져서 포위망을 뚫을 때면 도망친다기보다 죽이러 뛰어든다고 하는 편이 나을 정도이다. 장팔사모 한 자루를 들고 파죽지세로 밀고 나간다 싸우면싸울수록 용맹해진다.(이 점은 조운과 같다. 모두 두려움이 없다. 다른 두 나라(특히 조조의 만인적 장군)들처럼 한번 패전하면 무력이 급격히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책에서는 이렇게들 쓴다: 교전 몇번을 한 후 상대가 되지 않으면 말을 때려서 도망친다). 그래서 관우는 조조에게 말한다: 나의 셋째동생 익덕이 백만군대 속에서 적장의 수급을 마치 주머니속에서 물건을 꺼내듯이 한다. 왜냐하면 장비는 두려움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외에 장비는 싸움을 좋아한다. 특히 다른 사람과 1:1로 싸우는 것을 좋아한다. 그와 1:1로 싸워본 장군들은 모두 대단한 장수들이다. 예를 들어, 장합과는 오십회합을 싸웠지만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마초와는 더욱 심했다. 며칠을 싸웠지만 승부를 가리지 못한다. 더욱 과장된 것은 장비가 스스로 여포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 서주에서 여포에게 빼앗긴 후 하루종일 그가 1:1로 붙자고 소리질러댔다. 목숨을 내놓고 덤비는 사람이 가장 무서운 법이다.

 

조운에 대하여는 먼저 그의 무력을 얘기하지 말고 외모를 보면 가장 잘 생겼다. 품성도 흠잡을 데가 없다. 그리고 마음씀도 정밀하고 지모도 비범하다. 제갈량이 가장 마음에 들어한 장수이고, 가장 많이 썼던 장수이다. 일생동안 무수한 전투를 벌였지만, 그의 몸에는 상처 하나도 없다. 가히 완벽한 사람이라고 할 만하다. 그럼 조운의 무력을 보자. 아마도 나관중은 조운을 특별히 좋아했던 것같다. 삼국연의를 보면, 조자룡이 유비를 따라다닌 후에 두 가지 특징이 있는 것같다.

 

1. 무릇 조운이 말을 타고 나서서 적장과 1:1을 하면 3회합내에 적장은 말에서 떨어지거나 황급히 도망친다.

2. 조운이 다른 장수와 함께 출정하면, 항상 어떤 장수가 잘못을 저지른다. 마지막에는 대부분 조운이 극력 손실을 만회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상승장군이라고 부른다. 그는 혼자서 다른 오호상장의 모든 장점을 가진 듯하다.

 

첫째, 담량이 크다. 확실히 조운은 담이 크다. 조운의 일생은 담대무수(膽大無數)라고 할 수 있다. 자주 단기로 만군을 상대한다. 특히 장판파에서 조조의 군대와 대적하면서 단기필마로 주인을 구한다. 생각해보라 모두가 죽어라 도망치는데, 그는 혼자서 돌아가서 소주를 안고 칠진칠출하며 조조군대의 유명한 장군 50여명을 죽인다. 마치 조조의 백만대군을 무인지경처럼 드나들었다. 조조는 다시 그를 좋아하여 자신의 장수들의 안위를 생각지도 않고 조운을 산 채로 잡으라고 소리친다. 그 결과 조운은 도망칠 수 있었고, 조조의 계획은 어긋난다. 장수들이 죽거나 상처를 입고, 보검을 빼앗긴 것은 놔두고라도, 수하맹장들이 조운에게 적지 않게 놀랐다. 조운은 부끄럽지 않은 만인적이다.

 

둘째, 대국을 고려할 줄 알았다. 조운은 특히 대국관이 있었다. 일처리에서 사람들이 믿고 맡길만했다. 그는 천성적인 좋은 인재이다. 동오에서 손부인을 속여 아두를 빼돌릴 때, 단창필마로 오나라배에 뛰어오른다. 손부인의 책망도 무시하고 오나라장수도 죽이면서 아두를 빼앗아 온다. 유비를 위하여 다시 한번 아들을 구해준 것이다.

 

셋째, 무력이 비상했다. 앞에서 필자는 조운이 3회합만에 승리한 상승장군이다. 나중에 늙어서도 강하기 그지없었다. 황충보다 더 했다. 조운이 죽기 1년전, 조운은 제갈량을 따라 북벌에 나선다. 위나라사람들이 맹호라고 부르던 한씨오장을 물리친다. 

 

종합적으로 대비해보면, 기실 삼국연의의 본뜻은 조운, 관우, 장비, 마초의 무력은 모두 동등하다고 보는 것이다. 황충은 약간 떨어진다. 다만 책에서의 묘사를 보면, 상대적으로 관우의 명성이 비교적 높고, 장비는 비교적 용맹하고, 마초는 기예가 뛰어나다. 조운은 그들보다 약간 더 강한 것같다. 어떤 점에서 좀 더 강했을까? 바로 전투기교이다. 조운은 거의 완벽하다. 담량은 장비처럼 크고, 전투기교가 뛰어난 것도 대단하다. 그가 쓴 것은 창이다. 공격과 수비가 모두 가능한 무기이다. 빈틈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조운은 전투기교를 사용하는데 뛰어나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분석일 것이다. 그래서 그는 백만군중에서 무인지경처럼 임무를 완성할 수 있었떤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저 소설이다. 정사로 돌아와서 여러 사람들의 장비와 조운에 대한 평가를 보자. 진수(陳壽)는 이렇게 말한다: "관우, 장비는 모두 만인지적이라 부를 만하고 호신(虎臣)이다."; 곽가(郭嘉)는 이렇게 말한다: "유비는 웅재를 지니고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다. 장비, 관우는 모두 만인적이며 그를 위해 목숨을 내놓았다." 정욱(程昱)은 이렇게 말한다: "유비는 영명이 있다. 관우, 장비는 모두 만인적이다." 동소(董昭)는 이렇게 말했다: "유비는 용맹하고 뜻이 크다. 관우, 장비는 그의 날개이다." 유엽(劉曄)은 이렇게 말했다: "제갈량은 다스리는데 밝아서 재상이 되었다. 관우, 장비는 용맹하기 삼군에 으뜸이어서 장수가 되었다." 부간(傅干)은 이렇게 말한다: "유비는 관대하고 인자하며 도량이 있어 그를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는 사람을 얻었다. 제갈량은 나라를 다스리는데 변화를 알고 모략이 있어 재상이 되었다; 장비, 관우는 용맹하고 의리가 있으며 모두 만인지적이어서 장수가 되었다." 주유(周瑜)는 이렇게 말했다: "유비는 효웅의 모습이고, 관우,장비는 웅호지장(熊虎之將)이다. 반드시 오랫동안 다른 사람의 아래에 있을 사람이 아니다." 촉서 양희전에는 양희가 조운을 평가한 내용이 있다 거기에는 "맹장지열(猛將之烈)"이라는 네 글자가 있다. 그러나 촉한을 제외하고, 조운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앗다. 이를 보면 역사의 평가에서는 조운이 장비에 비하여 손색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