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경제42 도광제(道光帝)의 능묘는 왜 3번이나 옮겼는가? 글: 문재봉(文裁縫) 황제가 한 명 사망하면 일생동안 단지 1개의 능침을 건설한다. 이것은 의문의 여지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전혀 예상외에, 도광제는 일생동안 자신을 위하여 3번이나 능침을 건설한다. 즉, 그는 3번이나 능묘를 옮긴 것이다. 제1차 능묘건설. 도광제가 황자(皇子)로 있을.. 2013. 9. 13. 건륭제(乾隆帝)의 후계자선정: 아들을 보지 않고 모친을 보다 글: 자일(子逸) 옹정은 비밀건저(秘密建儲)제의 창시자이다. 건륭은 제도의 첫번째 수익자이다. 그는 즉위한 이후, 여전히 이 제도에 따라 후계자를 지정했다. 건륭은 일생동안 3번 후계자를 선정했다. 이전 두 번은 모두 후계자의 요절로 실패했고, 마지막에 건륭은 황위를 황십오자 영염.. 2013. 4. 13. 청나라말기의 외교관련 에피소드 글: 노위병(路衛兵) 1. 단방(端方)의 기괴한 강연 광서32년(1906년) 칠월, 청나라조정은 예비입헌(預備立憲)의 조서를 내린다. 그리고 오대신(五大臣)을 외국에 파견하여 정치를 살펴보도록 했다. 단방, 대홍자(戴鴻慈)는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간다. 캘리포니아주의 캘리포니아대학에서는 .. 2012. 12. 22. 함풍제는 임종전 십일간 권력분배방안을 어떻게 설계했는가? 글: 역사상나사사(歷史上那些事) 황위계승자문제에 대하여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함풍제는 아들이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즉, 서태후(자희태후)가 낳은 재순(즉, 나중의 동치제)뿐이다. 그러므로, 옹정제때 만든 비밀건저(秘密建儲)도 실시할 필요성과 가능성이 없었다. .. 2012. 9. 18. 청나라 황제들과 티벳불교 글: 낙방진사(落榜進士) 청태종은 티벳의 국면을 아주 중시했다. 당시 중원은 명나라의 통치하에 있었으나, 이미 부패가 극심해서, 전국각지에 농민반란이 연이어 일어났다. 티벳도 당시에 각종 세력이 병존했다. 청태종은 당시 티벳의 세력분포를 감안하여, 달라이라마를 주요한 친구로.. 2012. 6. 9. 서태후가 47년간이나 중국을 통치한 원인은? 글: 왕개새(王開璽) 1861년 11월, 서태후가 공친왕 혁흔과 연합하여 신유정변을 일으킨 때로부터 3번의 수렴청정을 거쳐 1908년 사망할 때까지, 서태후는 중국을 47년간이나 통치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이것은 서태후가 정치권모술수에 능하여, 음험하고 독랄한 독특한 정치수완을 지니고 있.. 2012. 6. 6. 이전 1 ··· 3 4 5 6 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