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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후와 의화단 (2) 글: 이신우(李新宇)​4​세계전쟁사상, 이건 유일한 전쟁사례이다: 선전포고를 하고, 공사관을 공격목표로 삼는다. ​상식적으로 보면, 이렇게 하는 전쟁은 쉽게 승리를 거둘 수 있다. 왜냐하면 공사관은 자신의 영토내에 있기 때문에, 독안에 든 쥐나 다름없다. 마땅히 즉시 성공을 거두어야 한다. 당연히 전쟁이 여기에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이로 인하여 진정한 전쟁이 뒤이어 발생하게 될 것이다. 다만 곤혹스럽게도, 6월 20일부터 공격을 시작했는데, 8월 14일 팔국연합군이 북경에 들어와 포위망을 풀 때까지, 50여일동안 대사관을 공격하는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지 못한 것이다.​원래, 각국 공사는 청나라조정의 통첩을 받고, 즉시 철수할 준비를 했다. 다만 6월 20일 독일공사가 피살되자, 각국 공사관은 깜짝 놀.. 2024. 10. 27.
사서태후와 의화단 (1) 글: 이신우(李新宇)​1900년 여름, 북경에서는 많은 일이 일어난다. 겉으로 보기에는 우연히 일어난 일들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이를 통해 드러난 것은 왕왕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가장 주목을 끌었던 일은 의화단으로 인해 일어난 일련의 사건이다.​권민(拳民)들이 교당(敎堂)을 불태우고, 선교사를 죽이고, 교민(敎民, 신도)을 죽여 열강으로부터 강력한 항의를 받는다. 그들은 대청국에 보호를 요구했고, 조정은 거절하지 못했다. 그러나 효과는 없었다. 그리고 사정은 갈수록 악화되었다. 그리하여, 열강은 대청제국이 외국교민을 보호할 능력이 없다면, 우리가 파병하여 보호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하게 된다. 외국병사들이 오고 또한 북경으로 진입을 요구한다면, 그것이 소수라 할지라도 결코 범상한 일이라고 .. 2024. 10. 27.
의화단(義和團)의 시말(始末) 글: 장명(張鳴)​모두 의화단은 산동(山東)에서 나왔다고 말한다. 그건 맞는 말이다. 다만, 일반적으로 대륙학자들은 의화단의 뿌리가 백련교(白蓮敎)같은 류의 민간종교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건 근거가 없다. 의화단내에 민간종교의 신도들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의화단은 확실히 이들 종교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대만학자는 의화단의 기원을 향단(鄕團)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것도 근거는 그다지 없다. 그저 의화단의 전성기에 향단이 참여했다는 것이지, 그들이 의화단의 기원은 아니다. 그래서, 미국학자인 주석서(周錫瑞)는 아예 19세기말 20세기초의 산동사회 및 문화를 의화단의 기원으로 본다. 이렇게 말하면 안전하기는 안전하지만, 그러나 확실한 대답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실망스럽다.​의화단은 초기에 신.. 2024. 10. 25.
중국은 이미 "전소련함정(前蘇聯陷穽)"에 빠졌는가? 글: 왕단(王丹)20241022​중국경제는 개혁개방이래 장기간의 고속성장을 경험했다. 그러나, 근년 들어 사상유례없는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최근 중국정부는 계속하여 경제부양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데, 구체적인 경기부양방안 혹은 조치는 공표하지 못하고 있어, 외부에서는 격렬한 토론과 억측이 나돌고 있다. 중국의 경제문제는 성장완화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더욱 심층적인 구조적위기이다. 실업문제부터 소비약세까지 이런 문제는 소련이 붕괴하기 직전 겪었던 곤경을 연상하게 만든다. 중국도 "전소련함정"으로 향해가는 것이 아닐까?​소련해체는 여러가지 원인이 겹쳤다. 그 중 관건적인 요소는 바로 재정자원의 고갈이다. 재정압력이 계속 증가할 때, 소련지도층은 절약과 증산으로 난관을 넘기고자 시도했다. 그러나 체제에 내.. 2024. 10. 25.
역사연구와 정치선전: 항전사기록의 병폐 (3) 글: 강극실(姜克實) 6. 사상(死傷), 섬멸(殲滅), 소멸(消滅)의 의미 군사사(軍事史) 연구에서 "사상(死傷)"은 전과를 형량하는 기준이다. 그러나, 사망, 부상을 섞어서 얘기하면, 쉽게 허위전공을 이용하는 정치적 용어가 된다. 특히 양국이 대립하는 전쟁이 진항하는 과정에서 서로간에 국민을 고무시키거나 기만하는 선전전이 벌어진다. 이런 문필의 싸움과정에서 숫자를 과장하는 동시에 "사상" "폐상(斃傷)", "섬멸" "소멸"도 자주 보이는 용어이다. 예를 들어, 공산당의 공식 항일전쟁전과선전을 보면, 일본군을 전사시킨 명확한 숫자가 나오지 않는다. 사용하는 것은 거의 대부분 "사상" "폐상" "섬멸" "소멸" 혹은 "적인" "일위군"등 정의가 모호한 용어들이다. 목적은 아주 명확하다. 선전을 위해 전과를.. 2024. 10. 25.
역사연구와 정치선전: 항전사기록의 병폐 (2) 글: 강극실(姜克實)군신 기쿠치 고헤이(木口小平)동상(하마다시 호국신사). 1918년 심상소학교 1학년 수신교과서. 3. "군신(軍神)"과 "영웅(英雄)"​​​정치선전이 전사기록(戰史記錄)면에서 나타나는 특징중 하나는 극단적인 영웅이미지를 창조하고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목적은 민족정신, 애국주의, 영웅사적교육을 통하여, 특정조직에 대한 충성, 헌신정신을 선전하고, 이를 통해 정권을 공고히 하려는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전쟁전의 일본은 국민으로 하여금 천황제국가의 침략전쟁에 헌신하도록 내몰기 위하여, 선전수법으로 대량의 군신(영웅)을 창조했다. 예를 들어, 청일전쟁때의 나팔수 기쿠지 고헤이(木口小平), 러일전쟁때 여순항구봉쇄전투의 히로세 다케오(廣瀨武夫) 중좌, 태평양전쟁때 진주민기습한 구군신(九.. 2024. 10.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