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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912

장즈강(姜志剛): "J20전투기의 아버지", 부패혐의로 체포되다 글: 망이(網易) 들어가는 말: "장즈강 맞죠. 물건 챙겨서 우리와 같이 갑시다!" 2023년, 장즈강은 집에서 막 은퇴후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이떄, 의외의 방문객이 그의 문을 두드렸다. 장즈강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는 중앙기율검사위가 아무런 이유없이 그를 찾으러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의 마음 속은 불안과 공포로 가득했다. 그는 이들 낯선 사람들을 말에 따라 승용차에 올랐다. 차량은 알지 못하는 곳으로 향했다. 장즈강은 차에 타고 있는 동안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는 머리 속으로 자신의 일생을 되돌아보았다. 중국의 5세대 J20전투기의 주요설계자로서 그는 국가의 국방사업에 필생의 정력을 바쳤다. 그리하여, "J20의 아버지"라는 칭호까지 얻게 되었다. .. 2023. 5. 18.
전랑외교(戰狼外交)의 내재적 논리 글: 오국광(吳國光) 5월 8일 캐나다는 중국외교관 자오웨이(趙巍)의 추방을 선언했다. 그는 베이징을 비판한 캐나다의원과 그 가족을 협박하려고 시도한 혐의를 받고 있다. 몇 주 전에는, 중국의 주프랑스대사 루샤야((盧沙野)는 전소련국가의 주권지위에 대한 의문을 표시하여 유럽각국의 분노를 산 바 있다. 루샤야는 최근 본국으로 소환되었다고 하며, 어떤 사람은 당국이 앞으로 그가 공개장소에 나타나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더 많은 사람들은 루샤야의 견해가 중국의 국가이익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만일 이 두 가지 견해를 모아보면 그것은 한가지 관점을 은연중에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중국당국은 외교에서 국가이익을 아주 중시한다고. 일찌기 "행패부리는 발언"은 개인적인 승진을 노리고.. 2023. 5. 10.
아직도 대만무력통일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글: 시화(施化) 한동안 중문여론권에서 가장 많이 거론된 화제는 의심의 여지없이 '대만'이다. 인상 속에서 인기검색어 1위가 아니더라도면 2위에는 올라 있었다. 예를 들어, 미국과 서방은 어떻게 대만을 핑계로 삼아 중국을 포위탄압하는지, 대만독립분자들이 어떻게 창궐하며, 미국아버지의 군사역량을 빌어 호가호위하는지, 대만의 신생대(新生代)는 대륙과 점점 멀러지고 있는지,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이 대만을 무력으로 해결하는데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든지, 시진핑 신정권이 손을 쓸 것인지 아닌지, 대만해협전쟁은 언제 시작할 것인지. 등등.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현재만 그런 것이 아니다. 내가 어려서부터 클 때까지, 청년때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의 수십년동안, 중국대륙에서 대만 이슈의 열기는 식은 적이 없었다. 초.. 2023. 5. 9.
중국의 "남해주권(南海主權)"에 대한 국제법적 분석 글: 조굉위(趙宏偉) 2010년이래, 미국은 중국의 남해주권에 대하여 도발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외교와 군사적으로 미국의 도발에 굳건하게 대응하고 있다. 중국의 주류의견은 주로 고유영토라고 말하거나 역사영토라고 말하는 것에 그친다. 그러나, 근대이래, 영토, 해역주권은 관련국제법규에 근거하여 주장해야 한다. 1. 청-프랑스의 청프전쟁이후, 1887년 6월 26일 중국과 프랑스령인도차이나는 남해해상의 국경선에 관하여 를 체결하였다. 이에 따르면, "광동계무는 양국 감계대신(勘界, 국경조사대신)이 국경선이외 망가(芒街)이동 및 동북일대의 모든 미정인 곳은 모두 중국관할로 국경선을 결정했다. 해중각도(海中各島)에 대하여는 양국 감계대신이 홍선을 그어 남으로 이어서 긋는다. 이 선은 차고사(茶古社) 동쪽 산을 .. 2023. 5. 3.
"탈중국화"가 가장 철저한 4개 국가는...? 글: 지호(知乎) 근대는 서방의 침입으로, 중화문화가 쇠퇴의 길을 걸었다. 사방의 주변국가들도 점점 탈중국화를 시작하게 된다. 그렇다면, "탈중국화"가 비교적 엄중하게 진행되고 있는 나라들은 어디일까? 사실상 이들 국가에는 한국, 몽골, 베트남, 싱가포르가 포함된다. 이들 국거에서는 거의 중화문화와 관련된 요소를 볼 수 없게 되었고, 한 나라는 완전히 서구화되었다. 그들은 어떤 나라들일까? 1. 한국: 불교에서 기독교로 이 나라는 현재 중국과 여러가지를 다투고 있다. 예를 들어 무슨 명절, 문화, 유명인사등등. 그러나, 한국은 이전에 거의 중국을 그대로 따라했었다. 당시에는 연호조차도 숭정제의 연호를 그대로 썼으니, 한국의 한화(漢化)정도가 얼마나 심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이전에 중국의 한자.. 2023. 5. 2.
미중관계의 기원과 영향 (2) 글: 모해건(茅海建) 3. 유미학동(留美學童)과 배화법안(排華法案) 1844년 미중간에 이 체결될 때, 중국의 인구는 이미 4억에 이르렀고, 해외상업활동과 이민이 일찌감치 시작되었다. 그러나 주로 동남아였다. 미국상선은 서해안에서 중국으로 오는데 항해시간이 50여일이 걸렸다. 두 나라국민은 서로를 잘 알지 못했다. 십년후인 1854년, 용굉(容閎)이 미국예일대학을 졸업하고 학사학위(B.A.)를 받는다. 용굉은 마카오와 홍콩에서 서양식교육을 받았고, 미국에서 7년간 공부했다. 최초로 미국대학을 졸업한 이 중국인이 귀국했을 때, 그의 미국에서 배운 지식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하여 내심 고독을 느낀다. 그는 여러가지 성공적이지 못한 직업을 전전한 후에, 청나라를 도와 미국에서 물품을 수입.. 2023. 5.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