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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1351

진시황(秦始皇)이 황후(皇后)를 세우지 않은 이유는? 진시황은 중국 최초의 황제이다. 고대의 황제들은 모두 황후를 두었는데, 진시황은 황후를 세우지 않았다. 이로 인하여 진시황의 능원에는 자신의 묘만 있고, 황후릉은 없다. 진시황은 6국을 멸하면서 6국의 후궁들을 전부 데려와 자신의 후궁으로 삼아 3천이라는 설, 만명이 넘었다는 설등이 있다. 고.. 2005. 8. 15.
순치제(順治帝)와 그의 후궁들 연속극 <<소년천자>>에서 동악비 역을 맡았던 여배우 훠쓰얜(霍思燕) 연속극 <<효장비사>>에서 동악비 역을 맡았던 여배우 슈창(舒暢) 순치제의 시절은 청나라 역사에서 가장 말많은 몇가지 의안(疑案, 진상이 의심스러운 사건)을 남겼다. 태후하가(太后下嫁), 순치출가(順治出.. 2005. 8. 13.
동방의 마타 하리 - 천도방자(川島芳子) 군복을 입고 있는 천도방자(가와시마 요시코) 일본 "제국첩보의 꽃"이라고도 불리우고, "동방의 마타하리" "동방마녀" "난세의 요녀"라고 불리우는 천도방자(일본식으로 가와시마 요시코, 중국식으로 촨다오팡즈)의 인생은 참으로 기구하였다. 그녀는 1906년에 태어나는데, 성은 아이신줴뤄(愛新覺羅)이.. 2005. 8. 12.
모택동(毛澤東)의 유언 모택동이 남겼다는 유명한 말은 화국봉에게 했다는, "네가 일을 처리하면 내가 안심하겠다(니辦事我放心(중국발음으로 니빤스 워팡신)"는 것이다. 모택동이 이 말을 했다는 걸 듣고는 주은래를 비롯한 혁명원로들은 모택동이 화국봉을 후계자로 인정한 것이라고 판단하고, 이후 화국봉을 최고지도자.. 2005. 8. 12.
건륭제(乾隆帝)의 즉위에 얽힌 이야기 건륭제의 이름은 홍력(弘曆)으로, 옹정제의 4째아들이다. 그는 생모가 누구인지, 출생지가 어디인지에 대하여는 여러가지 의견이 있지만, 청나라 황제들 중에서 즉위나 사망에 관하여 별다른 이설이 없는 드문 경우에 해당한다. 옹정제는 모두 5명의 아들을 두었다. 다만, 첫째와 둘째는 모두 요절하였.. 2005. 8. 11.
청태종과 그의 후궁 청태종(1592-1643)의 정실부인은 보통 봉황루(鳳凰樓)의 5대푸진, 일후사비(一后四妃)로 불리우는 다섯 여인이다. 이 다섯 여인은 모두 몽고족이며, 모두 보얼지지터씨이다. 본인이 만주족이면서, 5명의 정실부인을 모두 몽고족으로 그것도 같은 성씨로 취하였다는 점에서 역대의 제왕에게서는 유일한 경.. 2005. 8. 6.
누르하치와 그의 부인들 청태조(淸太祖) 누르하치(奴爾哈赤, 1559-1626)는 황제로 칭하지 않았으므로 그 부인들을 당시에는 황후로 부르지는 않았다. 만주어로 부인은 푸진(福晉)이라고 불렀고, 정실부인을 대푸진(大福晉)으로 불렀으며, 이후 역사서에서는 대비(大妃)로 불리운다. 누르하치의 대비는 전후 4명이 있다. 첫째 정실.. 2005. 8. 5.
중국과 영국의 대면(건륭제와 영국사신 맥카트니) 영국전함 사자호 매카트니가 북경에 머문 곳 서기 1792년 9월 26일, 영국의 황실전함 "사자호"와 "인두스탄호"등 몇 척의 배가 영국을 출발했다. 이것들은 영국왕 조지3세가 파견하는 방대한 중국방문사절단의 선박들이었다. 사절단의 단장은 조지 맥카트니(George McCartney)였으며, 부단장은 .. 2005. 8. 4.
옹정제(雍正帝)의 즉위에 얽힌 이야기 (3) 옹정제의 즉위후의 뒷이야기이다. 그와 대결하였던 형제들의 뒷이야기이다. 1. 황장자 윤제. 황태자를 폐했을 때, 강희에게 윤잉을 자기손으로 죽이겠다고 말했다가 노여움을 사서 작위를 박탈당하고 집에 유폐되었다. 강희제는 패륵 연수등을 파견하여 감시하게 하였으며, 명을 내려 만일 감시에 소.. 2005. 7. 24.
옹정제(雍正帝)의 즉위에 얽힌 이야기 (2) 옹정제의 즉위와 관련하여서는 3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유조계위설(유조에 따라 황위를 승계받았다는 설), 둘째는 개조찬위설(유조를 고쳐서 황위를 빼앗았다는 설), 셋째는 무조탈위설(아무런 유조를 남기지 않았으며 황위를 빼앗았다는 설). 첫째, 유조계위설 이러한 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1) 옹.. 2005. 7.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