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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제갈량)69

제갈량: 미묘한 군신관계로 본 인격분열 글: 호각조(胡覺照) 필자는 <출사표에서 한 것은 황제꿈이다>라는 글에서 이미 제갈량이 황제가 되려고 했다는 근거를 나열한 바 있다: (1) 남정에서 성도로 돌아올 때, 이미 '오석'을 받았다. 즉, 금부월 1병, 곡개 1구, 전후우보거 각 1부, 취고수 각 1대, 호분용사 육십명. 이것은 대신.. 2012. 8. 18.
제갈량의 사후 유선(劉禪)은 어떻게 30년이나 황제로 있었을까? 글: 복녕객(福寧客) 역대이래로 역사의 사건에 대하여는 서로 다른 견해가 존재한다. 이것은 원래 정상적인 현상이다. 예를 들어, 최근 어떤 학자가 수호전의 108명은 모두 토비강도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순식간에 많은 공격을 받는다. 기실 송황제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들이 테러리스트.. 2012. 8. 15.
제갈량이 황제가 되려고 하면 왜 안되는가? 글: 호각조(胡覺照) 2007년에 제갈량의 황제꿈에 대하여 얘기한 이래로 비난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오히려 이들에게 묻고 싶다. 제갈량이 황제가 되려고 하면 왜 안된단 말인가? 전제사회에, 최고통치자가 백성들을 우롱하였고, 대대손손 '하늘의 아래에 왕의 땅이 아닌 것이 없고, .. 2012. 8. 15.
제갈량의 황제꿈 글: 호각조(胡覺照) 제갈량은 황제꿈을 꾸었다. 이 말이 잘못되었는가? 아니면 제갈량을 모욕하는 것인가? 아니다. 여기에 많은 사실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첫째, 구년여동안 보정(輔政)을 하고, 권력을 돌려주지 않았다. 유비가 백제성에서 탁고하였을 때, 유선은 이미 17세였다. 전제사회.. 2012. 8. 15.
제갈량의 약점 글: 차옥민(車玉民) 고전문학의 명저 <삼국연의>는 많은 인물들을 생동감있게 그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제갈량은 천고에 보기 어려운 현상(賢相)의 모범이며, 지혜의 화신이다. 대다수의 연구자들은 모두 이를 충분히 인정하고 찬송한다. 그러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약점이 있다. 제.. 2012. 7. 15.
출사표(出師表): 제갈량의 숨은 야욕 글: 호각조(胡覺照) 악비가 쓴 출사표 후세에 더없이 칭송받는 <출사표>는 도대체 무엇을 나타내고 있을까? 이것은 명확히 살펴보아야 할 문제이다. 후세인들의 화려하나 실속이 없는 칭찬의 말을 배제하고, 고요한 마음으로 그 내용을 분석해 보면,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제갈량이 쓴.. 2012. 6. 29.
제갈량은 어떻게 신격화되었는가? 글: 호각조(胡覺照) 제갈량이 신격화될 수 있었던 것은 먼저 그 본인의 자질에 공로를 돌려야 한다. 즉, 현상(賢相), 염리(廉吏)의 성격을 모두 지니고 있는 그의 신분때문이다. 이는 통치계급에게 필요한 것일 뿐아니라, 전체 사회에서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회의 각종 .. 2012. 1. 7.
모택동은 왜 제갈량의 군사적 재능을 인정하지 않았을까? 글: 유계흥(劉繼興) 역사상 진실한 제갈량은 업적이 출중한 정치가이다. 촉국을 다스리는데 재능이 있었다. 그러나, 군사적으로 뛰어난 점은 많지 않다. <삼국연의>에서 그려진 것처럼 그렇게 용병여신(用兵如神)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삼국연의>는 민간에 영향이 아주 .. 2012. 1. 1.
칠종칠금(七縱七擒) 배후의 진실 글: 호각조(胡覺照) 2년간 준비를 마친 후, 원래는 이엄(李嚴)이나 다른 장수가 담당할 예정이었던 남정(南征)업무를 제갈량은 "여러 장수들의 재능이 나보다 못하다"는 이유를 들어 친히 나서게 된다. 이에 대하여 심복인 왕련(王連)은 글을 올려 반대의사를 표시한 바 있다: "이 곳.. 2011. 10. 27.
제갈량(諸葛亮)의 관작(官爵) 분석 작자: 미상 제갈량: 무향후(武鄕侯), 승상(丞相), 영사례교위(領司禮校尉), 익주목(益州牧), 녹상서사(錄尙書事), 가절(假節) 무향후: 이는 작위(爵位)이지 관직(官職)은 아니다. 한나라때는 성급지방행정단위를 주(州)라고 불렀고, 시급행정단위를 군(郡)이라 불렀으며, 그 아래에 현(縣)이 있고, 그 아래.. 2011. 3.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