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모택동)80 모택동의 비서들 모택동의 몇몇 주요한 비서는 모두 그가 발견하거나 뽑은 사람들이다. 모택동의 비서를 뽑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학문"이 있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 호교목(胡喬木)의 선발은 모택동이 호교목이 <<중국청년>>잡지에 발표한 54운동20주년기념글을 보고서 "교목은 인재다"라고 하며, 직접 이름.. 2006. 5. 30. 모택동의 유산 : 1억3천만위안 모택동을 얘기하자면 그의 원고료수입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모택동의 원고료수입은 계속하여 하나의 수수께끼였고,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수수께끼의 하나였다. 왕동흥(汪東興)에 따르면 당시 모택동의 원고료수입이 얼마인지, 어떤 명의로 어디에 예금되어 있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은 단지 .. 2006. 5. 8. 모택동의 자녀들 양개혜(楊開慧)와의 사이에 태어난 자녀들 모안영(毛岸英) 1922. 10. 24. - 1950. 11. 25. - 호남성 장사에서 출생 - 1930년 10월 양개혜와 함께 감옥에 갇힘 - 1936년 당에서 찾아서 소련으로 보냄. 소련에서 중위계급을 달고 소련군의 대반격에 참가. - 1946년 연안으로 돌아옴. - 1950년 한국전쟁에 참전, 미군비행기.. 2006. 5. 3. 모택동은 왜 북경을 수도로 정했는가? 최근들어 북경의 황사현상이 심해지면서, 심지어 천도를 언급하는 중국인들까지 나타났다. 북경이 왜 중국의 수도가 되었는지? 북경의 장점은 무엇인지? 지금도 수도로 유지할 필요가 있는지를 간단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북경은 화하문명의 북단지역이며, 담장을 넘어가면 오랑캐의 지.. 2006. 4. 25. 모택동 어록중 가장 널리 알려진 10개 1. 창간자이면출정권(槍杆子裏面出政權) : 총부리에서 정권은 나온다. --이 말은 모택동이 1927년 8월 7일, 중국공산당이 호북 한구에서 개최한 임시회의(87회의)에서 얘기한 것이다. 모택동은 제1차 국공합작이 실패한 것을 비판하며, 상급기관은 반드시 하급기관의 보고를 잘 들어야 하고, 역사가 주는 .. 2006. 2. 28. 마오쩌둥(모택동, 毛澤東)의 글씨 2006. 2. 6. 이전 1 ··· 9 10 11 12 13 1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