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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강희제)25

강희제의 마지막 하루 글: 진령신(陳令申) 강희61년(1722년) 십일월 십삼일저녁, 일대명군 강희황제가 마침내 기나긴 인생을 끝마치고, 북경 창춘원(暢春園)에서 세상을 떠났다. 사서의 기록을 살펴서, 강희제의 마지막 며칠을 어떻게 보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청성조실록>>에 따르면 강희61년.. 2010. 12. 25.
강희제의 세 황후: 퉁자씨(佟佳氏) 글: 양진(楊珍) 현엽의 세번째 황후 퉁자씨는 먼저 귀비에 봉해진다. 강희16년(1677년) 팔월 이십사일, 현엽은 예부에 유지를 내려, 퉁자씨를 귀비로 하고, 이씨를 안빈, 왕가씨를 경빈...등으로 임명한다. 이것은 현엽이 후궁을 정식으로 책봉한 첫번째이다. 이전까지는 뉴후루씨를 포함한 .. 2010. 8. 15.
강희제의 세 황후: 뉴후루씨(鈕祜祿氏) 글: 양진(楊珍) 강희16년(1677년) 팔월 이십일, 현엽은 조모의 명을 받아, 어비롱(遏必隆)의 딸 뉴후루씨(鈕祜祿氏)를 황후로 책봉한다. 동시에 퉁궈웨이(佟國維)의 딸 퉁자씨(佟佳氏)를 귀비(貴妃)에 책봉하고, 이씨(李氏)등 7명을 빈(嬪)으로 책봉한다. 이는 강희제 최초의 정식 비빈책봉이다. 뉴후루씨는.. 2010. 8. 15.
강희제의 세 황후: 허서리씨(赫舍里氏) 글: 양진(楊珍) 강희4년(1665년) 칠월, 효장태후는 사대보신(四大輔臣)의 하나인 소니(索尼)의 아들인 영시위내대신 갈포라(噶布喇)의 딸인 허서리씨(赫舍里氏)를 황후로 정하고, 예물을 보냈다. 같은 해 구월 초여드레, 현엽(玄燁, 강희제)은 조모의 명을 받아, 허서리씨와 대혼예식을 거행했다. 신랑의 .. 2010. 8. 15.
강희제, 건륭제와 강남미녀 글: 서광원(徐廣源) 세상사람들은 모두 건륭(乾隆)이 풍류적이었다고 말한다. 여러번 강남을 순행하면서 미녀들을 무수히 거두었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는 것이 이다. 건륭의 이런 '기호'는 바로 그가 무한히 숭배하는 '성조야(聖祖爺)" 강희(康熙)로부터 이어받은 것이라는 것을. 속.. 2010. 2. 10.
강희대제(康熙大帝)와 피터대제(Pyotr Veliky) 글: 왕룡(王龍) 17세기와 18세기의 교차기에 섬광처럼 중국과 러시아의 하늘에, 거의 동시에 놀랍게도 비슷한 두 개의 큰 별이 나타난다. 그들은 바로 고금에 유명한 강희대제와 피터대제(표트르 대제)이다. 그들은 기세가 대단했던 전설적인 군주이다. 한 명은 운주유악(運籌帷幄), 역만광란(力挽狂瀾).. 2009. 12.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