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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1383

정마낙(鄭馬諾)과 심복종(沈福宗): 잊혀진 유럽의 두 중국인, 유럽의 중국붐을 일으키다. 글: 자귤(紫橘)심복종청나라때의 유학생을 얘기하게 되면 대부분은 용굉(容閎)을 떠올린다. 그는 "근대유학운동의 아버지"이다. 그러나 기실 청나라때 해외유학을 최초로 떠난 사람은 정마낙(鄭馬諾)이다. 그는 오랫동안 마카오에서 생활하면서, 포르투갈인들에게 배웠고, 전통한학교육을 받은 지식분자는 아니었다. 청나라때 진정한 최초의 유학생은 강희제때의 심복종(沈福宗)으로 보아야 한다. 정마낙과 심복종의 유학은 중국에 영향을 가져다주지는 못했지만, 유럽에 중국붐을 불러일으킬 수는 있었다.​최초의 유럽유학중국인​습관적으로 우리는 심복종, 정마낙을 최초의 중국유럽유학생으로 보자. 서열상으로도 역시 심복종이 앞서고, 정마낙이 그 뒤를 차지한다. 그러나 시간적으로 보묜, 심복종은 강희제때의 인물이고, 정마낙은 명청교체기의.. 2024. 8. 12.
유흑마(劉黑馬): 원나라때 가장 성공한 한인(漢人), 몽골인은 왜 그를 신임했을까? 글: 자귤(紫橘)​TV드라마 에 나오는 유로(劉路)가 매국노인지 아닌지에 대하여 대부분의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일본국적을 취득한 일본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어쨌든 대화민족(大和民族)이 아니다보니, 일본인들은 그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원(元)나라때의 한족 세후(世侯)집단도 독특한 존재였다. 그들은 혈통적으로 한족이지만, 그들은 내심이나 정신적으로 몽골인이었다. 정치적인 대우에서, 몽골인들은 그들에게 한 지방의 군정대권을 쥘 수 있도록 해주고, 대대로 세습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들 세후(世侯)중 우두머리는 유흑마이다. 그의 가족은 가장 먼저 몽골에 귀순한 한족이고, 계속하여 몽골의 신임을 받았다. 그러나, 이단(李璮)의 난은 양자간의 친밀한 관계를 가.. 2024. 8. 4.
유양(劉襄): 유방의 장손으로 능력이 너무 뛰어나 황제에 오르지 못한 인물 글: 역사전쟁(歷史戰爭)​한문제(漢文帝) 시기에 아주 기괴한 정변이 일어난다. 당시 조정에 큰 혼란도 없었고, 경사의 경위부대도 정상적으로 운용되고 있었는데, 제북왕(濟北王) 유흥거(劉興居)가 거병하여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이런 반란은 기실 자살행동이나 다름없다. 그가 성공할 가능성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유흥거가 설마 미쳤던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가 반란을 일으킨데는 기실 정치적 배경이 있다.​유흥거의 부친은 유비(劉肥)로, 유방(劉邦)의 장남이다. 모친 조씨(曹氏)는 유방이 여후와 결혼하기 전에 만난 애인이다. 유방이 황제로 등극한 후, 유비는 황장자(皇長子)였으나 적출(嫡出)이 아니어서 황위를 계승할 자격이 없었다. 그리하여 제왕(齊王)에 봉해지는데 그쳤다. 유비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는데, 서.. 2024. 8. 2.
아골타(阿骨打): 중국역사상 가장 전설적인 개국역사... 글: 서북낭(西北狼)​1114년, 금태조(金太祖) 완안아골타(完顔阿骨打)는 2,500명의 여진기병(女眞騎兵)을 이끌고 내류수(來流水, 지금의 라린강(拉林河))에서 요(遼)를 정벌하겠다고 맹세한다. 그후 10년이 걸리지 않아, 일찌기 백만대군을 거느리고 있던 동아시아의 강국 대요제국(大遼帝國)은 금군의 공격하게 연이어 패배하다가 결국은 사라지고 만다.​이 역사는 중국의 역대왕조중 가자아 전설적인 창업사이다. 그 중의 하나가 아니라. 후인들은 왕왕 공로를 천조제(天祚帝)의 혼용무능(昏庸無能)과 아골타의 전신부체(戰神附體)로 돌린다. 그러나, 바람은 청평(靑萍)의 끝에서 일어나고, 파도는 미란(微瀾)의 사이에서 일어난다. 여진이 이 날을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는지 아는 사람은 아주 적다. ​소헌개기(昭獻.. 2024. 8. 1.
시중쉰(習仲勛)이 말년에 12년간 선전(深圳)에 거주한 내막은...? 글: 왕우군(王友群)​2023년 10월 15일은 시진핑의 부친 시중쉰의 탄생110주년 기념일이다. 중국대륙에서는 여러 기념활동이 있었다. 여기에서는 시중쉰이 말년에 왜 12년간 선전에 거주했는지라는 이슈를 다뤄보기로 한다.​시중쉰은 중공의 제1대, 제2대 집단지도성원이다. 모택동이 집권했을 때, 시중쉰의 관직은 국무원부총리 겸 국무원 비서장이었다. 등소평이 집권했을 때, 시중쉰의 관직은 중공정치국위원, 전인대 부위원장이었다.​1988년 4월, 시중쉰은 제7대 전인대 부위원장이 된다. 그러나 그는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에 '퇴임'한다.​시중쉰이 선전으로 유배당하다.​전 전임대 법률공작위원회 연구실주임이었떤 가오카이(高鍇)의 회고에 따르면, 1990년 10월 30일, 시중쉰은 마지막으로 전인대 상무위원.. 2024. 7. 24.
안수(晏殊): 북송신동, 15세에 과거급제하고 나중에 재상이 되다. 글: 종횡오천년(縱橫五千年)​15살때,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많은 사람은 아마도 이제 막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것이다. 그런데, 북송때 이 나이에 이미 과거에 급제하여 진사(進士)가 된 사람이 있다. 북송의 과거는 비록 합격자수를 늘였지만, 내용은 극히 복잡했다. 시(詩), 부(賦), 론(論)을 각각 하나씩 써야 하고, 대책오도(對策五道)도 있다. 성년도 십여년이상 힘들게 공부해야 겨우 합격할 수 있다. 그런데 15살짜리 소년이 일거에 합격하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다. 그럼 이 북송의 신동은 누구였을까?​신동중거(神童中擧)​그의 이름은 안수(晏殊)이고, 자는 동숙(同叔)이며, 무주임천(撫州臨川, 지금의 강서성 남창) 사람이다. 안수는 천부적인 재질이 뛰어났다. 7살때 아주 멋질 글을 쓸 수 있었으.. 2024. 7. 23.